(2) 화석연료 쓰면서 잊고 있던 것…‘해를 보며 사는 이치’에 눈뜨다

2016.10.14 21:15 입력 2016.10.14 21:19 수정

‘에너지 독립’ 태양광 주택

경기 양평군에 있는 ‘에너지독립하우스’. 최우석씨가 사는 1호집(왼쪽)과 최씨의 여동생 가족이 사는 2호집 지붕과 벽면에 태양광 전지판이 설치돼 있다.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경기 양평군에 있는 ‘에너지독립하우스’. 최우석씨가 사는 1호집(왼쪽)과 최씨의 여동생 가족이 사는 2호집 지붕과 벽면에 태양광 전지판이 설치돼 있다.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경기 양평 시내에서 남한강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너른 들판에 인가가 드문 작은 마을이 나온다.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꼬불꼬불한 골목을 따라 들어가니 지붕과 벽면이 유난히 하얗게 빛나는 집들이 나타났다. 빛을 내고 있는 것은 창문이 아니라 태양광 전지판(패널)이다. ‘에너지 독립’을 꿈꾸는 최우석씨(45)와 그의 여동생 부부가 살고 있는 주택들이다.

최씨는 매일 아침 하늘을 바라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햇빛이 쨍하게 비치는 날이면 더할 나위 없지만, 날이 흐려도 큰 걱정은 없다. 최씨의 집을 찾은 지난 1일은 구름이 많은 날이었지만 집 안에 전등이 하나도 켜있지 않았다. “일조량이 평소보다 적은 날이어서 ‘긴축’을 하고 있는 거예요.”

‘에너지독립하우스’의 집주인 최우석씨는 “원자력과 석탄화력 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를 쓰지 않기 위해 한국전력과 전기 계약을 맺지 않았다”고 말했다.

‘에너지독립하우스’의 집주인 최우석씨는 “원자력과 석탄화력 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를 쓰지 않기 위해 한국전력과 전기 계약을 맺지 않았다”고 말했다.

물을 데우고 요리를 하고, 환기와 냉난방을 하는 데 필요한 전기는 모두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기로 충당한다. 그래서 최씨의 생활 주기는 태양에 맞춰져 있다. 궂은 날에는 불필요한 전기는 쓰지 않는다. 급하지 않은 빨래는 하루 이틀 미루고, 미리 해둔 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다. 가전 중 전자레인지, 그중에서도 오븐 기능은 전기를 제법 잡아 먹는다. 그래서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고 전기가 많이 생산돼 남아돌 정도가 되는 날은 오븐으로 빵과 감자를 구워먹는 ‘에너지 사치’를 부리기도 한다. 곰탕이나 감자탕처럼 조리 시간이 긴 요리도 주로 햇빛이 풍부할 때 즐기는 ‘특별식’이다. 가스레인지 대신 전기 인덕션을 사용하니 가스 값도 들지 않고 실내 공기가 탁해질 일도 없다.

2층 침실의 커다란 창문을 통해 햇빛이 가득히 비치고 있다.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2층 침실의 커다란 창문을 통해 햇빛이 가득히 비치고 있다.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집 밖에 설치된 전지판이 햇빛을 받으면 일반 인버터를 통해 직류를 교류로 변환한다. 이어 독립 컨버터를 이용해 당장 필요한 전기를 사용하고 여분의 전기는 납으로 된 축전지(배터리)에 저장한다. 햇빛이 드문 날엔 축전지에서 전기를 끌어다 쓴다. 하루 평균 10kwh의 전력을 사용하는데, 완충된 축전지 전력으론 하루 정도를 지낼 수 있다.

축전지에 남은 전력이 계량기에 표시되긴 하지만 오차가 커 그간 체득한 경험으로 남은 전기량을 가늠한다. 그런 만큼 기상청의 날씨 예보에 민감해진다. 최씨는 “올해는 비가 온다고 했는데 정작 맑은 날들이 많아 별 피해는 없었다”고 했다. 기상청의 잦은 비소식 오보가 크게 나쁘지 않았던 셈이다.

“태양광 전기 시스템은 얼기설기 배관이 복잡한 일반 가정보다 설비도 훨씬 단순해요. 이쯤이면 ‘첨단 주택’이라고 부를 수 있죠.(웃음) 대체로 넉넉한 ‘에너지 살림’을 하고 있습니다.”

최씨의 집이 여느 태양광 주택과 다른 것은 한국전력과 정식으로 전력수급 계약을 맺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통 태양광 발전으로 전기를 쓰는 주택들도 남은 전기를 한전에 팔고, 반대로 밤이나 날씨가 흐린 날은 한전에서 전기를 공급받는다. 아예 한전에서 전기를 계속 받아 쓰는 대신 생산한 태양광 전기를 한전으로 보내 그 차이만큼 전기요금을 내는 집들도 있다. 그러나 최씨는 남은 전기도 한전으로 보내지 않는다. 원자력이나 화력 발전으로 만든 전기를 공급하는 한전으로부터 ‘자립’하겠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한국의 전력시장은 한전이 독점하고 있어 다른 선택이 불가능하다. “태양광 전기를 아무리 많이 생산해도 한전과 계약을 맺는 이상 지금의 원자력·화력 발전은 계속될 수밖에 없어요. 전기를 비축해 독자적으로 쓰는 집이 늘어나야 원전·화력발전소를 줄일 수 있습니다.”

스스로 만든 전기만으로 에너지 살림을 하려면 열도, 햇빛도 허투루 흘려보내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집을 에너지·열손실을 최소화한 ‘패시브하우스’로 설계했다.

연면적 112㎡ 규모의 주택은 2개층으로 이뤄졌다. 층마다 방 구분 없이 트인 구조이다. 1층 한쪽에는 주방이, 창가 쪽에는 작업 공간이 있다. 계단을 타고 2층 침실로 오르니 햇살이 실내에 가득했다. 남쪽으로 난 창문은 벽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큼지막한 3중창이다. 햇빛에 의해 내부 온도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이 커다란 창문에는 한 가지 단점이 있었다. 새들이 창문인 줄 모르고 유리에 부딪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는 것이다. 궁리 끝에 창문에 듬성듬성 독수리 모양의 스티커를 붙였다.

집에는 보일러나 냉방조절 장치 대신 ‘열회수장치’가 있다. 실내에서 빠져나가는 공기의 열을 유입되는 공기에 전달한다. 커다란 창문과 열회수장치 덕분에 겨울에도 햇빛이 많이 비치면 난방 없이도 실내온도가 최대 25도까지 올라간다. 열기도 서서히 식어 밤에도 20도 안팎이 유지된다. 문을 열지 않아도 환기가 가능해 미세먼지 걱정도 없다. 전기를 자체 생산하다 보니 올여름 논란이 컸던 누진제에서도 자유롭다.

환경교육을 전공한 최씨가 에너지 살림을 하는 집을 지어보기로 작정한 것은 5년 전이다. 서울에 살며 대학원에 다닐 때 아내를 만나 학교의 가족 기숙사에 첫 신혼살림을 차렸다. 기숙사에서 나온 뒤 40년가량 된 낡은 단독주택 2곳에서 5년간 전세살이를 했다. 임대계약이 끝나면 가진 돈에 맞춰 새 전셋집을 알아보는 생활을 이어가면서 서울에선 내 집 마련은 힘들겠다고 판단했다. 마침 에너지독립하우스를 연구했던 이필렬 방송통신대 교수가 최씨가 연구해 온 패시브하우스에서 실제로 살아보는 게 어떠냐고 권했다. 서울로 출퇴근이 가능하고 비교적 땅값이 싼 양평의 적당한 곳을 찾아 전세 보증금과 대출금으로 땅을 사고 집을 지었다. 설계는 이 교수가 맡았다. 2013년 3월부터 에너지 독립 생활이 시작됐다.

1년 뒤 최씨와 형편이 비슷한 여동생 가족이 이웃에 두번째 패시브하우스를 지어 들어왔다. 여동생은 이곳에서 둘째를 낳았다. 2호집 2층에는 테라스가, 집 앞에는 너른 마당이 있어 아이들이 뛰어놀기도 좋다.

2014년 10월부터 올 8월까지 에너지독립하우스의 월 전력소비량은 평균 295kwh다. 겨울을 제외하면 260~280kwh 정도로 충분하다고 한다. 냉난방, 온수, 조리 등을 모두 전기로 해결하기 때문에 전력 사용량이 많은지, 적은지 일반 주택과 단순 비교하기 어렵지만 도시 생활에 비해 큰 불편함은 없다고 한다.

“신경쓸 것도, 챙겨볼 것도 많아 보인다”고 하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밖에 비가 오면 당연히 우산을 들고 외출하죠. 그 정도를 불편하다고 생각하면 이 집에서의 생활도 불편할 거예요. 인류 역사를 보면 사람들은 늘 해를 보며 살았어요. ‘오늘은 해가 나니 뭘 해야지, 날이 흐리니 뭐는 하지 말아야지’하고 말이에요. 마찬가지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해를 보면서 사는 게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화석연료가 생기면서 이 자연스러운 이치가 은폐됐고, 사람들은 해를 자기 생활과 무관한 것처럼 여기게 된 것이죠.”

최씨는 난방 장치가 없는 온실도 운영한다. 무와 파를 심어 놨다. 샴푸 대신 비누를 쓰고 세탁에도 소다를 쓴다. 하수를 스스로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분해되는 성분을 골라 쓴다. 특수제작된 변기로 소변과 대변을 모아 텃밭에 거름으로 뿌린다.

최우석씨 가족의 첫번째 집과 동생 부부의 두번째 집은 원래 각자 전기를 생산했지만 얼마 전에 하나로 통합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동생네 전기 소비량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전력을 공유하는 에너지독립마을을 조성하고 싶은 최씨의 또 다른 실험이기도 하다.

아직 완벽한 독립을 이루는 데는 한계가 있다. 최씨는 지난해 1월부터 한전의 임시전력을 비상시에 끌어 쓰고 있다. 겨울에는 자체 전력만으로 생활하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전기를 저장해 두는 축전지가 날이 추워지면 성능이 저하되는 것도 문제다. “ ‘남의 전기’를 써야 하는 게 자존심이 상하긴 하죠.” 자급률이 평균 92% 정도지만 임시전력으로부터의 해방은 최씨가 풀어야 할 과제다. 흐린 날에 대비해 에너지 효율이 높은 난방기기를 새로 들였고 축전지의 보온에도 더 신경 쓸 생각이다. 현재 납 축전지보다 성능이 뛰어난 리튬 이온전지가 상용화돼 값이 싸지면 완벽한 독립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저처럼 돈이 좀 더 들더라도 재생에너지를 쓰려는 이들은 분명 많아요. 전기 선택권이 없는 상황에서 원전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가 바라는 에너지 독립의 마지막 단계는 탈원전을 꿈꾸는 이들과 함께 재생에너지를 공급하는 전력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탈원전 기치 든 ‘전력반군’, 골리앗과 싸워 승리
>>독일 쇠나우 ‘마을 발전소’

독일 쇠나우 마을에 있는 태양광 전지판이 설치된 주택들.  ‘골드만 환경상’ 홈페이지의 영상 갈무리

독일 쇠나우 마을에 있는 태양광 전지판이 설치된 주택들. ‘골드만 환경상’ 홈페이지의 영상 갈무리

독일 서남부 바덴 뷔르템베르크주 쇠나우 마을. 2500명이 사는 이곳엔 시민들의 발전소가 있다. 마을 주민들이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기를 사들이고, 열병합과 수력·풍력 등 친환경 방식으로 전기를 만들어 독일 전역에 공급한다.

협동조합이 운영주체인 전력회사 ‘쇠나우 발전소’(EWS)다. 조합원만 4750명(지난해 말 기준)이고, 이 발전소의 전기를 쓰는 소비자는 16만1000명에 이른다.

쇠나우 시민 발전소의 역사는 1986년 4월 체르노빌 원전사고에서 시작된다. 주민들은 ‘원자력 없는 미래를 위한 부모들’ 모임을 꾸려 탈원전 캠페인을 벌였다. 원전에서 만든 전기를 쓰는 대신 직접 전기를 생산해보기로 했다. 소형 열병합 발전기와 소수력 발전에 도전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전력공급은 한국전력처럼 독점권을 쥐고 있던 대기업 ‘라인펠덴 송전소’(KWR)를 통해야만 했다. 친환경 방식으로 만든다고 해도 이 기업에 전기를 판 뒤 다시 사들여야만 하는 구조다. 주민들은 1991년 KWR의 독점권 연장 반대안을 주민투표에 부쳤고 1994년 마침내 자신들의 발전소를 설립하게 된다.

[70주년 창간기획-집의 재구성 살고 싶은 家] (2) 화석연료 쓰면서 잊고 있던 것…‘해를 보며 사는 이치’에 눈뜨다


EWS는 더 나아가 조합원들로부터 출자금을 모으고 독일 전역을 상대로 모금운동을 벌여 조달한 자금으로 1997년 KWR로부터 전력망을 아예 인수했다. 원전을 반대하는 시민들의 참여로 지역분산형 재생에너지 기업이 탄생한 것이다. 현지 언론은 “쇠나우의 ‘전력반군’이 골리앗과 싸워 이겼다”고 보도했다. 원전 반대 모임을 결성해 EWS 설립을 주도한 우르술라 슬라덱(사진)은 2011년 환경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골드만 환경상’을 수상했다.

시민 참여와 정부의 정책이 맞물린 독일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은 800여개의 에너지협동조합을 탄생시켰으며 재생에너지 비중을 전체의 32.6%까지 끌어올렸다. 이 비율은 한때 80%까지 높아져 공급 과잉을 초래하기도 했다. 그 바람에 화력·원자력 등 화석에너지 발전사들 간에 가격 경쟁이 붙어 한때 ㎿h당 마이너스 130유로에 전력을 판매하는 일도 발생했다. 독일은 전력망 운영자가 재생에너지 전기를 화석에너지 전기에 우선해 매입하도록 의무화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화석에너지 발전소로서는 발전을 중단했다 재가동하는 것이 손실이 더 크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소비자에게 외려 돈을 지불하고 전기를 팔았던 것이다. 독일은 ‘발전차액지원제도’가 있어 재생에너지는 경쟁없이 고정가격에 거래된다.

독일의 최대 전력회사인 ‘E.ON’과 2위 ‘RWE’ 등 주요 발전사들은 화력·원자력 발전 부문을 본사에서 분리시키고 재생에너지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독일 정부는 2025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45%까지 늘릴 계획이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은 “재생에너지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한 독일 정부의 제도 설계와 기후 변화, 에너지에 대한 높은 시민 의식에 힘입어 재생에너지 전기비중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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