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강인함 속에 품은 부드러운 속살…‘외강내유’ 바닷속 군자

2016.10.28 21:03 입력 2016.10.28 21:10 수정
글·사진 | 황선도 한국수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

갑옷을 둘러 입은 꽃게

꽃게는 좌우 5쌍, 총 10개의 다리를 갖고 있어 분류학상 십각목으로 분류된다. 수명은 3년이고 최대 22㎝(좌우 길이)까지 자란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꽃게는 좌우 5쌍, 총 10개의 다리를 갖고 있어 분류학상 십각목으로 분류된다. 수명은 3년이고 최대 22㎝(좌우 길이)까지 자란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사람들이 바닷속 미물인 꽃게에게 ‘공자’니 ‘거사’니 하는 높인 이름을 붙인 이유는 게딱지가 단단하나 그 속은 부드러워 ‘군자(君子)’가 이상으로 삼는 외강내유(外剛內柔)를 갖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지키는 데는 무를 수 없는 반면,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 무릇 군자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물고기 세계에도 오징어와 문어, 낙지와 같이 겉보기에 몸에 골격이 없고 유연한 연체류가 있는 반면, 게와 새우같이 뼈로 갑옷을 해 입은 갑각류가 있다. 분류학상으로 제대로 말하면, 오징어는 연체동물문 두족강 살오징어목에 속하고, 게는 절지동물문 갑각강 십각목에 속해 족보가 다른 가문이다.

■“꽃게의 꽃, 가시 ‘곶’이 변형된 말”

[전문가의 세계 - 漁! 뼈대 있는 가문, 뼈대 없는 가문] ② 강인함 속에 품은 부드러운 속살…‘외강내유’ 바닷속 군자

꽃게 학명은 포리투누스 트리투버큘라투스(Portunus trituberculatus)이고, 영어로는 블루크랩(Blue crab) 또는 스위밍크랩(Swimming crab)이라 부르며 일본어로는 가자미(ガザミ), 중국어로는 시시에(矢蟹) 또는 화시에(花蟹)라고 부른다. <규합총서>에는 초가을에 마치 매미처럼 껍질을 벗는다고 해서 벗어나는 벌레, 즉 해(蟹)라고 했다. 그 시절에도 게가 탈피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건데, 선인들의 관찰력이 대단하다. 게를 가리키는 ‘해(蟹)’를 풀어보면 ‘풀 해+벌레 충’으로 한자 역시 의미를 담은 글자임을 알 수 있다. 우리말 꽃게의 유래는 무엇일까? 혹자는 꽃이 화려한 ‘꽃’이 아니고 가시 ‘곳’이 변형된 말이라고 한다. <자산어보>에선 ‘시해(矢蟹)’라 쓰고 ‘살게’라 읽었다. 화살촉을 닮은 뾰쪽한 게를 표현했을 것이다. 형태적으로 봐도 갑각의 양옆이 가시처럼 뾰쪽하니 충분히 일리 있는 추론이다. 그러나 그 가시를 표현하는 말은 ‘곳’이 아니고 ‘곶’이 아닐까 생각한다. 뾰족하게 나온 것을 ‘곶’이라고 하며, 육지에서 바다를 향하여 돌출해 나간 끝부분을 곶(岬, cape)이라 부르니 말이다.

분류학상으로는 십각목 꽃게과에 속한다. 집게다리와 유영각까지 포함해서 좌우로 5쌍의 다리, 즉 총 10개의 다리가 있다 해서 십각목으로 분류된다. 수명은 3년이며, 최대 크기는 갑장(입에서 갑각 아래 끝까지 세로길이) 10㎝, 갑폭(양쪽 가시 끝과 끝의 가로길이) 22㎝ 정도까지 자란다. 갑각의 윤곽은 옆으로 긴 마름모꼴이며, 양쪽 끝이 뾰쪽하게 뻗어 나온 것이 특징이다.

‘독게’로 불리는 민꽃게.

‘독게’로 불리는 민꽃게.

꽃게과에는 꽃게라는 이름이 붙은 비슷한 사촌들이 많은데, 우선 서해를 포함해 전 연안에서 꽃게 다음으로 많이 잡히는 민꽃게(Charybdis japonica)가 있다. 보통은 어두운 녹갈색 바탕에 미색 얼룩무늬가 있거나 어두운 보라색을 띤다. 조간대에 있는 조수 웅덩이부터 조간대 하부 모래진흙과 암초지대에까지 사는 생명력 강한 놈이다. 그래서 그런지 생긴 것부터 돌멩이처럼 갑각이 단단하고 강인해 일명 ‘독게’라고 부른다.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달라 서해안에서는 ‘박하지’라 부른다. 이들의 천적은 대형어류인 돔류 정도일 뿐 자신의 서식지에서는 거의 최상의 포식자이다. 여수에서 유명세를 치르는 게장은 꽃게장이 아니고 민꽃게로 만든 독게장이다. 민꽃게와 비슷한 것으로 주로 남부 해역에 사는 깨다시꽃게(Ovalipes punctatus)가 있다.

H자 흰무늬가 있는 깨다시꽃게.

H자 흰무늬가 있는 깨다시꽃게.

몸은 옅은 갈색 바탕에 자갈색의 점들이 촘촘히 있고 갑각 중앙에 H자 모양의 흰무늬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꽃게처럼 양옆에 가시가 돋아있는 점박이꽃게(Portunus sanguinolentus)도 있다.

동그란 반점이 있는 점박이꽃게.  출처 FIRA

동그란 반점이 있는 점박이꽃게. 출처 FIRA

갑각이 전체적으로 녹갈색이고 갑각의 뒤쪽에 흰색 동그라미가 둘러싸인 적자색의 반점이 3개 있어 꽃게와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꽃게는 우리나라 동해 중부 이북을 제외한 전 해역과 일본, 중국 연안의 100m 이내 수심을 보이는 모래나 모래진흙 바닥에 주로 산다.

특히 서해 연근해에 주로 분포해 최북단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대연평도, 소연평도의 서해 5도와 그 남쪽 특정해역에서 많이 잡히고 옹진군과 인천시에 입하된다. 그중 연평도는 어업의 주 대상이 꽃게이다 보니 꽃게 풍어와 조업 여부에 매우 민감하다. 최근에는 충청남도 보령시와 태안군 연안에서도 생산량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우리나라 어획량의 80% 이상이 서해안에서 어획된다. 기어 다닐 것만 같은 꽃게의 유영력이 생각보다 발달하여 물의 흐름과 함께 서해를 회유한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관계당국은 갑장 6.4㎝ 이하를 포획금지하고 지역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매년 6월 중순~8월 중순에 금어기를 정해 꽃게 자원을 관리하고 있지만, 불법 중국어선 조업 등의 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꽃게 어획량과 가격은 변동이 크고 민감하다.

■탈피는 개체 생존과 종족 보존에 중요

배딱지가 넓은 꽃게 암컷(왼쪽)과 배딱지가 뾰족한 수컷.

배딱지가 넓은 꽃게 암컷(왼쪽)과 배딱지가 뾰족한 수컷.

꽃게는 암컷과 수컷의 가격 차이가 크다. 그러므로 꽃게의 암수를 구별하는 방법은 시장에서 지갑을 알뜰하게 지키는 데 필요하다. 암컷은 배딱지가 넓고 수컷은 좁고 뾰쪽하다. 거의 모든 생물은 분류군에 관계없이 비슷하여 사람의 그것을 연상하면 외우기 쉽다.

종족보존과 개체생존을 위해 껍질을 탈피한 꽃게.

종족보존과 개체생존을 위해 껍질을 탈피한 꽃게.

갑각류의 탈피는 개체 생존과 종족 보존이란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게는 큐티클(cuticle)이라 부르는 각피(角皮)로 된 딱딱한 외부골격을 갖고 있다. 외골격은 내부기관을 보호하고, 내 근육을 지지하는 기반이다. 그러나 뼈 같은 내골격이 커지면서 성장하는 물고기와 달리 게의 외골격은 성장을 방해한다. 간단하게 껍질을 탈피하는 것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다. 직접 보면 신기하다.

이렇게 탈피한 개체는 아직 갑각이 단단해지기 전이라 물렁물렁하다고 해서 ‘물렁게’라고 하는데, 꽃게 살이 완전히 차지 않고 어획되어서 만지면 내장이 샐 정도이다. 그러나 모양이 다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만져보지 않고서는 구별이 어렵다. 물렁게는 가을어기가 시작하는 9∼10월에 가장 많이 잡히는데 전체 꽃게 어획량의 7∼8% 정도를 차지한다. 그러니까 이때가 다 자란 암컷 꽃게가 일년에 한번 탈피하는 시기이다. 구미에서는 말랑말랑한 게를 백포도주에 씻어 통째로 먹거나 연한 껍질째 튀겨먹는 맛을 일품으로 손꼽기 때문에 보통 게보다 비싼 값에 거래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선호되지 않아 헐값에 취급된다.

국립수산과학원에서 30여년 근무하다 정년퇴직한 우리나라 꽃게 양식 전문가 서형철 박사에 따르면, 꽃게는 평생 13∼14번 탈피하면서 성장한다고 한다. 유생 때는 탈피를 자주 하지만 200g이 되는 2년생부터는 1년에 한번 탈피해서 몸무게가 배로 늘어나는데 400g이 되는 3년생이 최대 수명이다. 암게는 탈피 직후 연약한 껍질을 가졌을 경우에만 단단한 껍데기를 가진 수컷과 교미가 가능하다. 탈피 직후의 게는 외부의 물을 흡수하여 쭈글쭈글하고 연약한 껍데기를 일정한 형태로 만든다. 새로 만들어진 연한 껍질은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낡은 껍질에 비해 15%(체중 40% 정도) 이상 크기가 커진다. 이때 만져보면 물렁물렁하고 껍질의 단단함이 종이 정도로 얇다고 해서 페이퍼쉘(paper shell)이라고 한다. 이런 껍질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단단해지고 껍질의 내부에 새로운 살이 차오른다.

꽃게 맛을 좀 아는 식도락가들은 “봄에는 암컷이, 가을에는 수컷이 맛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과학적으로 풀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단단한 갑옷 속에 정포를 가진 수컷은 8~10월에 탈피를 끝낸 2년생 암컷 물렁게와 사랑에 빠져 10월의 어느 날에 교미를 한다.

암컷은 사랑하는 임의 씨앗을 저정낭에 품고 성숙시키다가 다음해 봄이 되면 인천과 군산 연안으로 들어와 6∼9월에 2~3회 정도의 다회산란을 한다. 그러니까 산란과 탈피를 하기 전인 5∼8월 포란기에 잡힌 암컷은 알과 함께 살이 통통하게 올라 맛이 있을 것이고, 가을에는 산란하고 살이 빠져 맛이 없다. 반면에 교미를 위해 살을 찌운 수컷은 가을에 제맛일 것이다. 그나저나 식도락가들은 계절에 따라 암수를 가려 먹는 것이 꽃게의 ‘사랑의 기회’를 빼앗는 것이라는 걸 알랑가 몰라~.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로 “보름에는 게가 살이 없다”는 말이 있다. 일부 어민들도 보름 게가 속살이 덜 차고 그래서 값도 더 싸다며 게가 보름달 밝은 밤에 제 그림자에 놀라 야위었기 때문이라고 근사한 이유를 댄다. 재미있는 상상이다.

또 어느 글인가에는 ‘꽃게가 야행성으로 낮에는 모래에 들어가 잠을 자고 밤에 나와 먹이활동을 하기 때문에 조업도 주로 밤에 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달이 밝은 음력 보름 전후의 꽃게는 달이 없는 그믐 때의 꽃게에 비해 먹이 활동이 활발하지 못해 살이 70∼80%밖에 되지 않는다’고 쓰여 있다. 그럴듯하지만, 난 아직까지 근거를 찾지 못했다. 덧붙여 “게의 탈피가 보름 전후에 일어난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자산어보’ 놀랍도록 세밀한 묘사

게는 빠른 성장을 위해 유생시기에 잦은 탈피를 하지만 커서는 거의 일년에 한번 탈피하기 때문이다. 바다에도 떠도는 ‘찌라시’가 너무 많다. 다만 물살이 센 사리 때 자망에 꽃게가 많이 잡히기 때문에 물렁게 역시 출현 빈도가 높을 뿐이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살게(시해·矢蟹): 큰놈은 지름이 두 자 정도이며 뒷다리 끝이 넓어서 부채 같다. 두 눈 위에 한치 남짓한 송곳 같은 것이 있어서 그와 같은 이름이 주어졌다. 빛깔은 검붉다. 보통 게는 잘 기어 다녀도 헤엄을 치지 못하는데 이 게만은 유독 헤엄을 잘 친다(중략). 껍질을 벗는 데 따라서 커지는데 큰놈은 됫박만 하고, 작은놈은 잔접과 같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당시 관찰력이 놀랄 만하다. 크기, 생김새 그리고 습성까지 기술한 데서 손암 선생의 실사구시 정신을 엿볼 수 있다.

게장 담그는 법을 <규합총서>는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검고 좋은 장을 항아리에 붓고 쇠고기 큰 조각 두엇을 넣어 흙으로 항아리 밑을 발라 숯불에 달인다. 그렇게 달이면 단내가 나지 않는다. 거기에 좋은 게를 정갈하게 씻어 물기가 마른 후에 항아리에 넣고 달인 장을 붓는다. 한 이틀 후 그 장을 쏟아 다시 달여서 식혀 붓는다. 그때 입을 다물고 있는 게는 독이 있으니 가려낸 다음, 그 속에 천초(川椒)를 씨 없이 하여 넣고 익힌다. 이 게장에 꿀을 약간 치면 맛이 더 나고 맛이 오래도록 상하지 않지만 게와 꿀은 상극이니 많이 넣어서는 안 된다. 게장에 불빛이 비치면 장이 삭고 곪기 쉬우니 일체 등불을 멀리해야 한다.’ 더 말해 무엇하랴. 침만 솟는다.

▶황선도

[전문가의 세계 - 漁! 뼈대 있는 가문, 뼈대 없는 가문] ② 강인함 속에 품은 부드러운 속살…‘외강내유’ 바닷속 군자


해양학과 어류생태학을 전공했고, 수산자원생태로 이학박사가 된 토종과학자이다. 20년간 국립수산과학원에서 일하면서 7번이나 이사하는 등 주변인으로 살았으나, 덕분에 어느 바닷가든지 고향으로 여긴다. 지금은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으로 해양생태계 복원과 수산자원 조성을 위해 일하는 ‘물고기 박사’다. 50여편의 논문을 썼고 저서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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