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레코드…시간여행을 떠나는 추억의 공간

2017.11.25 19:57
엄민용 기자·남소라 온라인기자

돌레코드 간판. 돌레코드의 ‘돌’은 생각하는 바둑돌이다.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돌레코드 간판. 돌레코드의 ‘돌’은 생각하는 바둑돌이다.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서울시는 종로·을지로에 있는 전통 점포 39곳을 ‘오래가게’로 선정하고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지도를 제작했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전문가의 조언과 평가는 물론 여행전문가, 문화해설사, 외국인, 대학생 등의 현장방문 평가도 진행했다. 서울시가 ‘오래가게’를 선정한 것은 ‘도시 이면에 숨어 있는 오래된 가게의 매력과 이야기를 알려 색다른 서울관광 체험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에 경향신문은 이들 39곳의 ‘오래가게’를 찾아 가게들이 만들고 품고 키워 온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 열여덟 번째 가게는 ‘돌레코드’다.

가게 폭이 아주 좁은 돌레코드.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가게 폭이 아주 좁은 돌레코드.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청계천을 앞에 둔 황학동 벼룩시장 인근에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지나쳐 버리기 쉬울 정도로 작은 ‘돌레코드’가 있다.

한옥 사이의 막다른 골목이었던 곳이 양옆에 건물이 들어서면서 그냥 지붕만 덮자 어엿한 가게가 됐다. 원래부터 가게 자리가 아니었던 까닭인지, 돌레코드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골목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다만 오래된 CD와 LP로 가득한 두 벽이 이곳이 엄연한 가게임을 보여준다.

돌레코드 주인 김성종 사장(62)은 매장 가장 안쪽에서 여유 넘치는 말투로 손님들을 맞는다. 음악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우연히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는 김 사장은 어머니와 함께 장사를 시작한 때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돌레코드 사장 김성종씨.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돌레코드 사장 김성종씨.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1975년 김 사장의 어머니는 리어카 노점을 하다 카세트테이프를 팔기 시작했다. 당시 주변에서 함께 장사하던 이웃들이 김 사장의 어머니에게 “이 근방에서 카세트테이프 파는 사람이 없는데, 그거나 떼어다가 가게 앞에 놓고 구색이나 맞춰 보라”고 권유한 것이 계기였다.

그러다 한 손님이 LP도 판매해 보지 않겠냐고 권유했고, 점점 상품의 가짓수가 많아지면서 직접 물건을 떼어다가 레코드점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당시 음반 시장의 규모는 굉장히 작았고, 새롭게 등장한 경쟁자를 기존 사람들이 곱게 볼 리가 없었다. 견제도 들어왔고, 겨우 뚫은 거래처에서 물건을 받지 않겠다며 거래 중단을 알리기도 했다. 김 사장은 서울에서 벗어나 직접 발품을 팔며 경기권으로 거래처를 찾아다녔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김 사장에게는 강력한 ‘무기’가 하나 있었다. 함께 일하던 김세환 씨(56)다.

골목길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돌레코드 매장.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골목길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돌레코드 매장.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벽면 가득 쌓여 있는 LP판.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벽면 가득 쌓여 있는 LP판.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CD도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CD도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이 동생이 아주 음악에 미친 친구였어요.”

김 사장은 돌레코드의 성장을 이야기할 때 김세환 씨를 빼고는 말할 수 없다며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돌레코드가 다른 곳과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던 것은 김세환 씨의 탁월한 안목 덕이라는 게 김 사장의 얘기다. 새로운 앨범이 나오면 김세환 씨가 팔릴 만한 판인지 아닌지를 가늠했다. 그가 ‘이 판은 된다’고 결정하면 그 판은 날개돋친 듯 팔렸다. 도매상에게 판을 매입해 판매만 하던 돌레코드는 직접 음반 제작 공장을 운영하며 생산에도 뛰어들었다.

CD와 LP가 뒤섞인 매장에서 보물찾기를 하듯 끝없는 여행을 떠날 수 있다.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CD와 LP가 뒤섞인 매장에서 보물찾기를 하듯 끝없는 여행을 떠날 수 있다.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저작권 인식이 매우 낮았던 당시는 빽판(무단복제 음반) 판매가 공공연히 이뤄졌다. 빌보드 차트를 죽 살펴보고 김세환씨가 앨범을 고르면, 지인을 통해 정식 앨범을 구해다 복제해 판매했다. 그러다 압수도 당하고, 구치소에도 여러 번 들락거렸다.

“불법적인 일을 하다 보니까 경찰만 보면 괜히 뜨끔하고, 언제까지 이렇게 장사해야 하나 싶고 그러더라고.”

김 사장은 불법복제 음반 판매 대신 정식 음반을 판매하기로 결정하고 새롭게 돌레코드를 꾸려 나갔다.

처음에는 자그마하던 정품 음반은 장사를 시작하자 기하급수적으로 상품이 늘어났다. 전 세계에서 매일 새로운 곡이 나오고, 판매되는 상품도 테이프·CD·LP 등 여러 종류다 보니 같은 앨범이어도 3가지의 상품을 들여놓아야 했다. 김 사장은 “대금을 받은 오전에는 주머니가 두둑하다가도 새 상품을 들여놓은 뒤에는 주머니가 홀쭉해진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장사를 하다 보면 욕심이 생겨요. 이것도 놓고 싶고 저것도 놓고 싶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돈을 못 만지더라고.”

김 사장은 도매상에 없는 물건도 자기네는 있었다면서 당시 음반 판매 시장의 흐름을 이끌었던 돌레코드의 전성기를 회상했다.

가게 입구 앞에 진열된 테이프들.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가게 입구 앞에 진열된 테이프들.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도매상에서 우리가 어떤 음반을 잔뜩 사 가면 ‘이게 잘 팔리나 보다’ 싶어 그걸 더 들여놓고 그러더라고.”

김 사장에게는 가족과도 같은 김세환 씨 덕분이었다. 현재 회현지하상가에 있는 서점 겸 음반가게 ‘클림트’를 운영하는 김세환 씨는 국내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음반 수집가다.

어머니에 이어 돌레코드를 운영하고 있는 김 사장은 자신의 아들에게 돌레코드를 물려주고 싶어 했다. 개그맨으로 활동하던 아들은 지금 김 사장과 함께 가게에 출근해 일을 배우고 있다.

“아들은 아직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하다 보면 제가 맡아 하겠지”라고 말하면서도 “이 일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기 때문에 내 아들도 이 일을 했으면 좋겠어”라고 설명했다.

김 사장은 “우리 가게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면 낯빛이 어두운 사람이 없어”라며 음반 좋아하는 사람치고 악한 사람이 없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장사를 시작하며 알게 됐던 거래처 사람들, 다른 음반 가게 사장들, 가게를 찾는 손님들 모두 다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다.

“돈이야 뭐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잖아. 나는 이게 내 재산이라고 생각해.”

저녁 어스름에 젖어드는 돌레코드.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저녁 어스름에 젖어드는 돌레코드. 남소라 온라인기자 blanc@kyunghyang.com

돌레코드라는 이름은 김 사장이 직접 지었다. 바둑이 취미라는 그는 “보통 사람들은 돌이라고 하면 그냥 무식한 돌을 떠올리는데, 바둑의 돌은 단순한 돌이 아니라 생각해야 둘 수 있는 돌”이라며 숨은 의미를 설명했다.

먼지 쌓인 테이프와 색 바랜 LP가 가득한 돌레코드는 들어서는 모든 손님들에게 시간여행의 기회를 선물한다. 바닥에 산처럼 쌓인 음반에 눈길이 꽂히다가도 바닥부터 천장까지 벽면을 가득 채운 CD에 한번 더 놀란다. 이름을 들어 본 적도 없는 가수의 CD부터 매주 챙겨 보던 가요톱텐 속 인기 가수의 앨범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김 사장의 말처럼 돌레코드를 찾는 손님들의 얼굴에서는 슬픔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떤 음악이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해하며 발길을 돌렸다.

개업연도 : 1975년 / 주소 : 중구 마장로9길 49-29 / 대표재화 금액 : 제품 희귀 정도에 따라 가격 차이가 있음. LP 2만원 / 체험 요소 : LP 레코드 음반 구매 / 영업시간 : 매일 오전 10시~오후 9시 / 주변 관광지 : 동대문 평화시장, DD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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