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영국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없다?…맛의 비밀을 모르고 하는 얘기죠”

사이먼 스미스 영국 대사가 소개한 스테이크 요리 ‘비프 웰링턴’

2개월 전 한국에 부임한 스미스 주한 영국대사 부부가 영국의 전통 음식과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2개월 전 한국에 부임한 스미스 주한 영국대사 부부가 영국의 전통 음식과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영국 하면 전통과 역사가 먼저 떠오른다. 중세시대의 고즈넉한 성과 오래된 건축물들이 도시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명문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대학이 있고 세계적인 박물관도 많다. 요즘은 인공지능(AI) 기술 강국으로 불린다. ‘알파고’를 개발하는 등 세계 각국에서 많은 투자를 받고 있어서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세계적 명성의 예술가·작가들이 많다. <해리포터>의 저자 JK 롤링,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영국인이다.

그럼 영국 음식 하면? 아쉽게도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한국에 온 지 불과 2개월여 된 사이먼 스미스 주한 영국대사(60)가 “영국 음식문화에는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 있다”며 만찬에 초대했다. 스미스 대사가 소개한 음식은 영국 전통 스테이크 요리인 비프 웰링턴(Beef wellington), 런던 파티큘러(London particular), 켄티시 푸딩 파이(Kentish pudding pie) 등 3가지다. 식사 후에는 티타임을 갖고 위스키도 맛보았다. 대사를 만난 곳은 서울시청 인근에 있는 영국대사관저다.

불그스름한 벽돌 건물들이 고풍스럽게 자리한 대사관에는 봄향기가 가득했다. 파릇파릇한 잔디와 오색빛깔 꽃들이 탐스럽게 피어 있는 너른 마당은 영국의 정원을 닮아 있었다. 130년 전 지어진 대사관저로 들어서자 스미스 부부가 능숙한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하며 인사를 건넸다.

“영국 하면 딱히 맛있는 음식이 없다고 합니다. 생선 감자튀김인 ‘피시앤드칩스(fish & chips)’가 고작이라고 하지요. 속초의 오징어순대처럼 영국 해안가의 유명한 지역 음식이에요. 쇠고기는 웨일스 지방이 맛있고 스코틀랜드는 연어가 최고인 걸요.” 스미스 대사가 “영국 음식의 첫 번째 비밀은 바로 스파클링 와인”이라며 “치어스(cheers)” 하고 잔을 부딪쳤다.

30~40년 전부터 생산 시작한
‘스파클링 와인’이 첫번째 비밀
과일향 가득·상큼한 풍미 일품

1000년 역사 ‘펍’ 문화가 두번째
진짜 ‘에일 수제 맥주’ 즐기는
고급 레스토랑으로 탈바꿈

한국에서 영국 술은 위스키와 맥주가 유명하다. 그런데 스파클링 와인이라니 의아했다. 대사는 “영국은 날씨가 추워 와인을 생산하기 어려웠는데 30~40년 전부터 남쪽지방의 기후가 따뜻해져 스파클링 와인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며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의 와인이 유명하지만 영국산도 풍미가 좋다”고 말했다. 과일향이 가득한 스파클링 와인은 상큼하면서도 신선했다.

“가스트로 펍(Gastro Pub)이라고 들어보셨나요. 기존 영국 펍문화에 미식(美食)의 요소를 더했습니다. 담배를 싫어하는 영국인들이 늘면서 펍에 큰 변화가 생겼고 좋은 음식을 즐기는 장소로 바뀌었습니다. 주말이면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온가족이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며 식사하지요.”

영국산 스파클링 와인을 소개하는 스미스 대사 부부.

영국산 스파클링 와인을 소개하는 스미스 대사 부부.

대사가 소개한 또 다른 비밀은 1000년 역사를 가진 영국 ‘펍문화의 혁명’이었다. 펍 하면 매캐한 담배연기에 빈자리가 거의 없어 서서 맥주를 들이켜야 하는 술집이 아니던가. 대사는 “기계로 대량 생산한 술이 아닌 진정한 맥주, 진짜 애일 수제맥주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펍이 근사한 음식과 게임을 즐기는 고급 레스토랑으로 탈바꿈했다”고 설명했다.

영국 전통 방식으로 만든 메인 요리 ‘비프 웰링턴’은 놀라웠다. 웰링턴은 19세기 초 워털루 전투(1815)에서 프랑스의 나폴레옹을 물리친 영국 제독이다. 사람들은 비프 웰링턴이 웰링턴 장군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생각하지만 정확히 알 수는 없다고 한다. 오븐에 구워 기름기가 쫙 빠진 쇠고기가 페이스트리빵에 동그랗게 말려 나왔다. 나이프로 빵과 고기를 함께 자르기가 쉽지 않았지만 부드러우면서도 담백했다. 고기 위에 얹어진 베이컨과 버섯으로 만든 소스는 감칠맛을 더했다.

스테이크 ‘비프 웰링턴’(위 사진)과 후식 ‘켄티시 푸딩 파이’(왼쪽), 완두콩 수프 ‘런던 파티큘러’.

스테이크 ‘비프 웰링턴’(위 사진)과 후식 ‘켄티시 푸딩 파이’(왼쪽), 완두콩 수프 ‘런던 파티큘러’.

“비프 웰링턴은 결혼피로연이나 대학동창회같이 크게 축하할 일이 있을 때 먹는 음식입니다. 비프 웰링턴처럼 페이스트리빵으로 싼 요리는 많아요. 바쁘게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페이스트리빵에 감자, 고기 등을 채워넣은 패스티(pasty)는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지요.”

완두콩 수프인 ‘런던 파티큘러’는 이름부터가 재미있다. 찰스 디킨스가 소설 <황폐한 집(bleak house)>에서 언급했는데 공기오염이 심각했던 런던의 뿌연 하늘을 비유한 것이라고 했다. 대사는 “1950년대까지만 해도 런던은 대규모 공장이 뿜어내는 공해가 심각했다. 녹색을 띤 스모그가 있을 정도였다”며 “수프에 하얀 거품이 몽글몽글한 게 미세먼지가 뒤덮인 것처럼 보이지 않느냐”고 했다. 맛은 예상 밖이었다. 담백했다. 대사 부인은 “한 세대 전만 해도 집마다 정원에 완두콩을 심어 길렀다”고 했다. 런던 파티큘러는 매우 뜨겁게 해서 먹는다고 했다.

워털루 영웅 연상되는 이름
‘비프 웰링턴’의 놀라운 맛
페이스트리 감싼 쇠고기 담백

완두콩 수프 ‘런던 파티큘러’와
디저트 ‘켄티시 푸딩’ 환상 궁합
홍차·위스키도 빼놓을 수 없어

후식으로 나온 ‘켄티시 푸딩 파이’는 ‘영국의 정원’으로 불리는 켄트 지역 음식이다. 접시에 놓인 치즈케이크와 딸기는 달지 않았다. 소박한 건강식이었다. 대사는 “부활절 전 사순절에는 육식을 하지 않는 전통이 있는데, 켄티시 푸딩 파이는 이럴 때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개발됐다”고 했다.

거실로 나와 티타임을 가졌다. 20대 시절 한국언론재단 초청으로 한 달간 영국에 예비 언론인 연수를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BBC, 로이터, 더타임스 등 유명 언론사와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대학을 취재했는데 인상적인 것은 오후 5시만 되면 우유를 섞어 홍차를 즐기는 차문화였다. “영국인들은 하루 4~5번 꼭 티타임을 갖고 7~8잔의 홍차를 마신다”고 들어왔다.

“영국인이 홍차를 많이 마시기는 하지만 요즘은 따로 시간을 정하지는 않아요. 하루에 한두 잔 정도 마실까요.” 대사에게 “영국의 애프터눈티(Afternoon Tea·오후 5시 차를 즐기던 상류층 문화)가 요즘 한국에서 인기인데 영국에서는 어떠냐”고 묻자 “런던의 오래된 호텔에서는 한번쯤 경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영국을 ‘신사의 나라’라고 하는데 한국인들도 매일 한복을 입지 않지 않느냐”고 답했다. 대사 부인이 내온 포트넘 앤드 메이슨 홍차는 깔끔하고 부드러웠다. 피카딜리 비스킷은 살살 녹았다.

“영국은 섬나라입니다. 영국인들은 기회가 되면 여러 나라로 항해를 떠났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오면 차를 마시며 세계 각국의 경험을 공유했지요. 자연스럽게 창의력과 상상력이 풍부해지지 않을까요.” 대사가 비스킷을 찻잔에 담그더니 입안에 쏙 넣었다. “저는 이렇게 먹는 게 맛있는데 어머니와 아내는 예의가 없다고 한다”면서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후 9시가 훌쩍 넘어 인터뷰를 마치려 하자 대사가 “영국의 위스키는 맛봐야 하지 않겠냐”며 발렌타인, 글렌피딕, 잭다니엘스, 메켈란, 시바스리갈 등을 내왔다. “와이낫(Why not)?” 하며 40도짜리 몰트위스키를 한입에 털어넣었다.

영국 사람들은 한 세대 전만 해도 음식에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세계화로 인해 일종의 ‘음식 르네상스’를 경험했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GBBO(Great British Bake off)> 같은 경연대회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끝없이 변화를 꿈꾸는 생동감이 음식에도 드러나 있다.

런던은 가는 곳마다 ‘박물관’…영국식 정통 소시지·수제 맥주는 서울에도

[정유미 기자의 대사와의 만찬](5)“영국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없다?…맛의 비밀을 모르고 하는 얘기죠”


■ 영국은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등 4개 지역으로 구성돼 있다. 18세기 산업혁명을 이끌었고 세계에서 처음으로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도입했다.

영국에는 아직까지 왕실이 존재하지만 명예혁명을 통해 입헌군주제를 채택해 의회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로 손꼽힌다. 유럽연합(EU) 국가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대 상임이사국 중 하나이자 북대서양조약기구 창립 멤버다. 인구는 6110만명이다.

■ 한국 내 영국식당

한국에서 영국의 전통음식과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은 드물다. 수제맥주집 ‘더 부스’(thebooth.co.kr)는 영국인 전 이코노미스트 특파원 대니얼 튜더와 한국인이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더부스 첫 매장인 서울 경리단점에 가면 피자와 크래프트 비어를 즐길 수 있다. 강남, 건대, 신용산 등에도 직영점이 있다.

부산 수영구 광안리 서호병원 앞에 있는 ‘고릴라브루잉’(051-714-6258)에 가면 영국인이 만든 다양한 수제맥주와 영국식 피시앤드칩스를 맛볼 수 있다. 1층 양조장에서 만든 신선한 맥주와 라이브 음악을 즐길 수 있다. 국제커뮤니티 페어를 비롯해 다양한 행사도 열린다.

스코틀랜드인이 직접 만드는 쫄깃쫄깃한 영국식 정통 수제 소시지와 파이는 서울 평창동에 있는 ‘가빈소시지’(02-396-0239)에 가면 맛볼 수 있다. 스코틀랜드산 천연 향신료를 사용한 생소시지인데 화학조미료와 밀가루 등을 섞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허니머스터드, 포크파이, 마늘 소시지 등 웹사이트(www.gavin.co.kr)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정유미 기자의 대사와의 만찬](5)“영국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없다?…맛의 비밀을 모르고 하는 얘기죠”


■ 명소

런던에는 아직도 손으로 태엽을 감는 시계 빅벤이 있다. 영국 국왕들이 살았던 버킹엄 궁전과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고딕건축 사원인 웨스트민스터 사원, 템스강의 빅토리아식 다리인 타워브리지(사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성당인 성바울 성당, 런던 타워, 군인들이 지키는 에든버러성 등 들려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대영박물관에도 꼭 가봐야 한다. 영국에는 2500개 이상의 박물관이 있는데 대부분 무료다.

여유가 있다면 잉글랜드 서남부 해안가에 위치한 서머싯을 찾아보자. 런던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떨어져 있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애플사이다 농장을 방문할 수 있다. 사이다(cider)는 알코올이 4~8% 들어간 술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체다치즈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정유미 기자의 대사와의 만찬](5)“영국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없다?…맛의 비밀을 모르고 하는 얘기죠”


■영국에 가려면

한국에서 영국까지 영국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대한항공이 직항편을 운항 중이다. 인천에서 히스로 공항까지 12시간가량 소요된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영국해협 거리는 38㎞이며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터널 길이는 50㎞다. 화폐는 영국 파운드가 기본이다. 영국은 북극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지만 기후는 온화한 편이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남서풍 때문에 비가 많이 오고 날씨가 자주 변하지만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거나 32도 이상 올라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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