精은 넘치는 것만 사용하라

2011.04.07 18:48
강용혁 마음자리 한의원장

사상의학에서 조강지처와 첩을 구분하는 기준이 있다. 조강지처는 남편의 건강을 먼저 염려하지만, 첩은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만 신경쓴다는 내용이다. 이제마는 “부인이 첩의 아첨과 꾸밈을 싫어함은 남편의 건강을 위해서도 현명한 덕인데, 어찌 이를 칠거지악이라 하는가”라며 당시 유교적 관행에 반론을 제기했다.

발기부전으로 내원한 중년 남성.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후로 부쩍 양기가 떨어졌다. 그러다 술자리에서 친구의 권유로 부부관계시 발기부전 치료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동갑 친구에 비해 횟수도 적고 간혹 발기가 잘 안된 적도 있기 때문이다.

한동안 치료제 덕분에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치료제를 사용한 다음날은 유독 심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게다가 치료제 없이 혼자 힘으로는 전혀 발기되지 않자 덜컥 겁도 났다.

한의학에선 ‘정(精)은 넘치는 것만 사용하라’고 가르친다. 병이 있거나 스트레스 등으로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성관계를 자주 하면 정기를 손상시켜 질병의 원인이 된다. 물도 웅덩이를 다 채우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법인데, 채 고이기도 전에 다 빼버리면 이내 바닥을 보이게 마련이다.

나이가 들고 체력이 떨어지면 양기가 부족해지는 것은 순리다. 다시 몸을 추스르고 나이에 맞게 사용하면 문제가 없다. 그런데 발기부전 치료제는 우리 몸 전체의 활력을 돕고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나마 부족하게 남아있던 정기를 싹싹 끌어다 아래쪽에 모아놓는 격이다. 조선시대 왕들이 몸에 좋다는 것을 다 챙겨먹고도 수명이 유독 짧았던 것은 스트레스와 함께 과도한 방사가 원인일 것이다.

중년 이후에도 예전 같은 정력과 발기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남성들만의 강박적 불안이다. 여기저기서 ‘강한 남성’을 부추기고, 술자리에서 흔히 횟수를 자기자랑처럼 늘어놓는 왜곡된 성문화도 한몫한다.

그러나 여성이 원하는 것이 강한 남성일까. 첩이 아니라 조강지처라면, 여성은 직접적 성관계보다는 친밀감이나 교감을 더 원한다. 남성은 성관계를 위해 키스하지만, 여성은 키스를 위해 성관계를 참아준다는 지적이 정확하다. 남편이 평소보다 덜 귀찮게 하면 남편 몸에 이상이 생겼나 걱정이 될 뿐, 횟수가 준 것 자체에 큰 불만은 없다.

환자에게 스트레스로 인한 울체된 기운을 풀어주고 그동안 소진된 혈을 보강하는 약을 처방했다. 물론 당장 양기를 끌어올리는 한약도 있다. 그러나 이는 발기부전 치료제나 마찬가지로 정기를 손상시키니, 그 상대가 조강지처라면 사용할 일이 없다. 대신 허리근력 강화를 위해 백싯업 운동을 권했다. 무엇보다 ‘남성은 꼭 강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아내와 얼마나 교감할 수 있느냐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한 달 뒤 환자는 아내와 운동도 함께한 덕분에 치료제 없이 몸이 많이 회복되었다며 만족해했다. 또 “아내 역시 치료제 사용을 못마땅해하고 있었더라”면서 “굳이 부부간에 쓸 약은 아닌 듯하다”며 웃었다.

직접적 부부관계에 의한 ‘정(精)’보다는 살 비비는 ‘정(情)’을 더 그리워하는 것이 조강지처다. 여자는 발기력 자체보다 남편의 건강이 혹 나빠진 것은 아닌지 염려할 뿐임을 남자들은 알아야 한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