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실내 양궁- '텐·텐·텐' 스트레스를 향해 쏴라

2017.10.27 15:15 입력 2017.10.27 15:18 수정

주말은 아직 멀고 몸은 찌뿌둥한 평일 저녁. 뭔가 색다른 걸 해 보고 싶은데 시간과 돈이 허락지 않을 때 제격인 운동이 있다. 양궁이다. 뭔가 전문가적인 냄새가 풍기지만 볼링, 당구처럼 접근하면 전혀 두려울 게 없다. 스크린 골프, 스크린 야구가 실내 운동으로 자리 잡았듯 실내양궁 역시 바람을 제대로 타고 있다. 요즘 ‘핫’하다는 동네에 가면 양궁카페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경향신문 연중기획 ‘취미잼잼-올해는 취미를 갖자’ 10월 원데이클래스는 도심 속에서 활시위를 당길 수 있는 실내 양궁에 도전했다.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진행된 이번 수업은 양궁카페 애로우팩토리가 진행을 맡았다.

지난 24일 서울 마포 서교동의 한 실내양궁카페에서 열린 ‘취미잼잼’ 원데이클래스 참가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br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지난 24일 서울 마포 서교동의 한 실내양궁카페에서 열린 ‘취미잼잼’ 원데이클래스 참가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20·30대가 대부분일거라는 예상과 달리 참가자들의 연령은 다양했다. 희끗한 머리가 멋스러운 중년의 신사부터 ‘까르르’ 소녀 감성의 40대 언니들까지. 활을 당기는 그 순간만큼은 다들 열정 충만한 양궁 선수였다.

준비물은 ‘금주’다. 카페에서 하는 게임 정도로 생각하면 안 된다. 초점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신을 모으는 게 더 중요하다.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이라 했던가.

시작은 복장 갖추기다. 왼팔에 암가드를, 가슴에 체스트가드를 차고 오른손 중지엔 활시위를 당길 때 손가락을 보호하는 핑거탭을 낀다. 마지막으로 허리에 퀴버를 두르는데 화살통이 달린 띠라고 생각하면 된다. 몸에 ‘장착’ 되는 가지 수가 늘어나니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다들 겉모습은 선수처럼 그럴싸했다.

선생님이 먼저 시범을 보였다. 활을 세워 발등에 올린 다음 화살을 끼웠다. 처음엔 활의 위아래 구분도 헷갈렸다. 그리고는 들어서 당기기. 선수 출신답게 손 모양, 자세 하나하나가 중계 화면에서 보던 것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내가 해도 저렇게 멋있을까란 생각이 잠깐 스쳤다.

이론은 끝났고 이제 실전이다. 참가자들은 12개의 화살을 허리춤에 장전하고 노란선 앞에 섰다. 과녁을 바라보고 서는 게 아니라 오른쪽으로 선 다음 허리를 돌려 과녁을 보고 조준을 해야 한다. 올림픽 양궁 과녁의 거리는 70m, 이곳 실내양궁은 20m. 활을 들기 전엔 막연하게 ‘이쯤이야’ 싶었다. 생각보다 과녁이 가까이에 있는 듯했다. 하지만 활을 드는 순간 ‘어이쿠’. 생각보다 너무 무거웠다. 활줄을 잡은 오른손이 턱 아래로 와서 붙어야 하는데 활의 무게와 줄의 탄성 때문에 가슴을 열기가 쉽지 않았다. 줄을 입술에 갖다대는 건 흉내조차도 못냈다. “이게 좀 무거운 건가요?”라고 물으니 미소와 함께 돌아온 선생님의 답 “초등학생도 가뿐히 드는 거예요.”

다시 심기일전해서 들고 힘껏 당기니 활과 화살과 내 가슴이 일자로 자리를 잡았다. “오른손을 펴세요, 놓으시라구요” 그냥 펴면 되는데, 잡은 줄을 놓으면 되는데,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턱 아래에서 화살이 나간다는 게 무서웠다. 나도 모르게 눈이 질끈 감기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화살이 내 손을 떠났다. 쏜 화살은 있는데 맞은 과녁이 없었다. 과녁과 과녁 사이에도 구멍이 많더라니. 다 이렇게 만들어진 흔적이었구나…. 옆자리에서 쏜 화살은 “핑” 소리와 함께 시야에서 사라졌다. 과녁과 과녁 사이도 아닌 천장 아래 철제 벽에 맞아 전사. “하하하” 빗나간 화살에 웃음이 터졌다.

실전에 앞서 활 잡는 법, 쏘는 법 등 기본 자세를 배우고 있는 참가자들.<br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실전에 앞서 활 잡는 법, 쏘는 법 등 기본 자세를 배우고 있는 참가자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참가자들 모두가 서툰 건 아니었다. 중년의 신사 두 분은 처음부터 발군의 실력을 뽐냈다. “소싯적 총 좀 쏴 봤다”는 이들의 화살은 가지런히 옹기종기 각자의 과녁에 자리를 잡았다. 총과 활은 통하는 데가 있나보다.

활의 무게가 제법 있기 때문에 조준 시간이 길어지면 팔이 떨렸다. 오른쪽 눈으로 초점을 맞추는데 활 조준대에 있는 빨간점이 과녁의 중앙인 노란색 위에 겹쳐지는 순간 쏴야 한다. 초점 맞추는데 시간을 많이 쓰면 쏘는 순간 몸이 흔들리고, 화살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떠나버린다. “생각을 오래 하지 마시고 빨리 쏘세요!”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었다.

한 라인에 선 다섯 명의 화살이 다 떨어지면 함께 뽑으러 나갔다. 내가 12발을 다 쐈다고 해서 먼저 뽑으러 가면 절대 안 된다.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상의 이유도 있지만, 다른 이가 활을 쏘는 모습을 보는 관찰은 곧 나에게는 배움의 시간이기도 하다. 내 자세는 어떤지, 속도는 어떤지 등 남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된달까.

가까이서 보는 과녁은 또 색달랐다. ‘플러’라는 고무로 화살 아래를 감싸서 뽑으니 쉽게 뽑혔다. 노란 부분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화살은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이마에 띠를 두르고 남다른 파이팅을 보였던 은발의 신사는 자신의 10점 화살 앞에서 ‘텐 샷’을 남기기도 했다.

잠깐의 휴식 후 다시 12발의 여정이 시작됐다. 슬슬 감이 오기 시작했다. 머릿 속에 양궁선수들이 쏘는 모습을 떠올려봤다. 이미지 트레이닝이라고나 할까. 활을 들기 전에, 들고 나서, 활을 당기면서, 쏘면서 그들의 동작을 흉내 내보려고 했다. 물론 몸은 생각과 따로 놀았지만 이거다 싶은 느낌이 왔다. 화살이 원 왼쪽 위주로 꽂혀서 의도적으로 오른쪽으로 쐈더니 중앙에 가까워지는 게 보였다. 얼기설기 중구난방이던 12발이 횟수가 거듭될수록 과녁 위에서 자리를 잡아갔다.

12발을 모두 쐈더라도 다른 사람이 다 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화살을 뽑으러 나가야 한다. 고무로된  ‘플러’를 이용해 화살 아랫부분을 감싸서 뽑으면 쉽게 뽑힌다.<br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12발을 모두 쐈더라도 다른 사람이 다 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화살을 뽑으러 나가야 한다. 고무로된 ‘플러’를 이용해 화살 아랫부분을 감싸서 뽑으면 쉽게 뽑힌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세트가 거듭될수록 팔에 힘이 빠질 법도 한데 감을 잡아서인지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두 시간이 길다면 긴 시간인데 그야말로 쏘아놓은 화살과 같이 흘러갔다.

마지막 12발. 이번엔 점수 계산을 하기로 했다. 무릇 경쟁이 있어야 더 기를 쓰고 하게 되는 법. 마지막이어서일까, 1등을 향한 근거 없는 욕심이 생겨서일까. 손아귀에 쓸데 없는 힘이 들어갔다. 다시 화살이 왼쪽으로 꽂히기 시작했다. ‘어? 이게 아닌데… 아까는 텐도 몇 번 쐈는데 지금 이러면 안돼!’ 다시 마음과 호흡을 가다듬고 활을 들었다. 위로 조금 높게 든 다음 몸과 팔이 90도가 되도록 천천히 내리며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활시위를 당겼다. 다시 느낌이 왔다. 화살은 정확히 노란색 위에 꽂혔다. 10점, 9점 연속 고득점. 하지만 순위권을 욕심내기엔 저 멀리 날아간 화살이 너무 많았다.

“이런 데 선뜻 오기 좀 그랬는데 막상 와서 해보니 너무 재밌네요.” 한 참가자가 말했다. 잘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 하던 이들은 두 시간의 배움 끝에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다음 날 얻은 건 팔뚝과 어깨, 옆구리로 이어지는 근육통. 새로운 경험이 주는 성장통이랄까. 아픈데 이상하게 뿌듯했다. 참, 후유증이 생길 수 있다. 동그라미만 보면 쏘아서 맞추고 싶어진다는 거.

<임지영 기자 iimii@kyunghyang.com>

[취미잼잼](22)실내 양궁- '텐·텐·텐' 스트레스를 향해 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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