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의 ‘번역자’들…집밥러 위해 밀키트 만드는 셰프

2021.05.21 15:57 입력 2021.05.28 19:03 수정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사바랭이 <미식예찬>(1825)에 적은 문장입니다. ‘먹을 것’ 이야기는 단순히 개인의 식탁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산업, 농업, 경제부터 시작해 문화, 환경 등 다양한 분야와 연결돼 있습니다. 물론 맛있는 음식이 주는 즐거움도 결코 빼놓을 수 없죠. [먹.진.사]에서는 ‘장르’를 불문하고 ‘먹을 것에 진심인 사람들’을 지금, 만나러 갑니다.

[먹을 것에 진심인 사람들] 레스토랑의 ‘번역자’들…집밥러 위해 밀키트 만드는 셰프

‘50시간 vs 3분’ 레스토랑에서 손님의 테이블에 올라갈 데미글라스 소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재료를 구운 뒤 커다란 냄비에 수십시간 충분히 우리고 약불에 천천히 졸여야 한다. 그래야 자연의 감칠맛이 충분히 우러나온다. 당연한 얘기지만 일반 가정에서 수십시간 소스를 끓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셰프들에 비해 요리 스킬도, 도구도 없는 ‘집밥러’들은 셰프처럼 적당한 시점에 건더기를 들어내거나 타지 않은 적당한 정도로 소스의 익힘 정도를 조절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값비싼 식당에서 매번 식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집에서도 제대로 된 한끼를 먹고싶어 하는 이들을 위해 레스토랑의 레시피를 집밥 테이블로 옮겨오는 ‘번역자’들이 있다. 음식의 식재료, 소스 등을 배송해 간단한 조리만으로 완성할 수 있도록 한 반조리식품, 밀키트(meal-kit)를 통해서다. 레스토랑 주방에서 가정 부엌으로의 레시피 ‘번역’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떤 것들을 고려해야 할까. 한때 고급 레스토랑 셰프로 ‘소수의 테이블’을 위한 요리를 했지만, 지금은 실험실에서 ‘수천명의 식탁’을 책임지는 이들이 있다. 천동우 CJ쿡킷 푸드시너지팀 셰프와 구근모 프레시지 상품개발연구소장을 만나 밀키트를 만드는 과정에 대한 이모저모를 들어보았다.

■부엌의 ‘상향평준화’…호텔 레스토랑 셰프가 ‘전자렌지 수란’ 레시피 만들기까지

천동우 CJ쿡킷 식품마케팅 푸드시너지팀 셰프 /CJ쿡킷 제공

천동우 CJ쿡킷 식품마케팅 푸드시너지팀 셰프 /CJ쿡킷 제공

“호텔 주방의 경우엔 (메뉴의 완성도에 있어) 역시 요리를 하는 셰프의 역량과 기술, 경험이 가장 중요하죠. 셰프가 맛보고 맛있으면 손님에게 나가면 돼요. 이에 비해서 밀키트는 양산화 과정이나 레시피 난이도 등을 세심하게 고민해야 하는 게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지난 13일 서울 중구 CJ제일제당센터에서 만난 천동우 셰프가 말했다. CJ의 밀키트 브랜드인 쿡킷 푸드시너지팀에서 메뉴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천 셰프는 과거 인터콘티넨탈호텔 조리부 한식, 양식 담당으로 약 10년간 팬을 잡았다. 2014년 CJ푸드빌로 입사해 계절밥상 등에서 외식 메뉴 개발을 하다 2019년부터 CJ쿡킷 푸드시너지팀으로 합류해 밀키트 메뉴 개발 업무를 맡게 됐다. 천 셰프는 호텔 주방과 쿡킷에서의 업무가 많은 점에서 다르다고 했다. 저울 등을 일상적으로 쓰게 된 것도 변화 중 하나였다. “셰프로 일한 10년 경력을 갖고 왔는데도 처음에 적응을 하느라 헤맸죠. 호텔 주방에선 웬만하면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저울을 쓰지 않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모든 것을 양산화의 관점에서 봐야하기 때문에 물 0.1g 차이도 굉장히 커요. 0.1g 차이라곤 해도 소스 1000kg를 만들게되면 그 차이는 엄청나게 커지거든요.”

레시피를 만드는 과정에서 ‘수천개의 주방’을 상상해야 한다는 점도 큰 차이였다. 천 셰프는 “고객들의 집 주방에 인덕션이 있을 수도 있고, 가스렌지가 있을 수도 있고, 집에 갖추고 있는 도구, 팬의 종류까지 다 다르다”며 “그럼에도 동일하고 질 높은 메뉴를 구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 굉장히 어려운 과제”라고 했다. 이 때문에 최근 각 가정에서 거의 ‘필수 가전’이 된 에어프라이어를 활용하는 레시피는 한층 더 복잡해진다. 천 셰프는 “전자렌지의 경우 700w, 1000w 등으로 규격이 정형화된 편인데 에어프라이어는 용량부터 출력, 성능 등이 천차만별이고 회사마다 제품의 차이가 크다”며 “이 때문에 인기 에어프라이어 브랜드들을 사용해 수초 단위로 조리 상태를 촬영, 데이터베이스화하기도 한다. 어느 환경에서든 균일한 결과물을 내놓기 위해서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날 천 셰프가 보여준 차트에는 같은 ‘음식 조각’들이 어떤 브랜드의 어떤 용량 모델로 조리하는지 시간에 따라 촘촘하게 나열돼 있었다.

물론 고객들의 조리 환경뿐 아니라 조리 실력에도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레시피에서 최대한 개개인의 ‘감’(感)이나 실력에 의존해야 하는 부분을 지우고 평면화하는 과정도 필수다. 천 셰프는 “전문 셰프가 주방에서 디테일하게 불 조리를 하는 것도 스킬인데, 이런 부분을 레시피에 다 반영해서 적을 수가 없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존의 ‘일반적인 레스토랑 부엌’의 조리법에서 벗어난 다양한, 쉬운 방법들을 여러 모로 고민하는 편”이라고 했다.

수란불고기덮밥 레시피 중 전자렌지 수란을 만드는 법 설명 /CJ쿡킷 제공

수란불고기덮밥 레시피 중 전자렌지 수란을 만드는 법 설명 /CJ쿡킷 제공

‘수란 소불고기 덮밥’ 레시피가 한 예다. 메뉴를 만드는 과정에서 레시피의 핵심인 수란을 어떻게 할지가 고민이었다. 수란은 간단해 보일 수 있지만 예쁘게, 제대로 만들기는 굉장히 까다로운 요리다. 통상 ‘정석적인’ 조리법은 다음과 같다. 냄비에 물을 넉넉하게 넣고 소금, 식초를 살짝 섞는다. 물이 자그르르 끓으면 달걀을 물 표면에 거의 닿은 상태로 조심스럽게 흘려낸다. 흘러나온 흰자를 조심스럽게 체로 걸러내며 중불에 2~3분정도 더 조리하면 동그란 수란이 완성된다. 노른자의 익힘 정도 뿐 아니라 동그란 모양을 얼마나 잘 유지하느냐 또한 관건이기에 초보자가 모양이 완벽한 수란을 만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메뉴 개발 주방에선 최소한의 도구와 스킬로도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레시피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타협’이 시도된다. 천 셰프는 “(조리의 번거로움을 생각하면) 수란을 포기할 수도 있었겠지만, 만약 수란을 포기한다면 비빔밥과 차별화 된 덮밥의 느낌을 살리기가 어려워질 것 같아 어떻게 수란을 간단하게 일반인들도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며 “처음엔 그래도 셰프들이 정통 레시피의 틀을 완전 포기할 순 없어서 정통 레시피를 조금 간단화한 방법을 생각했는데, 그 간단한 레시피마저도 비전문가 소비자 실험 단계에서 다들 실패하더라”며 웃었다. 처음 셰프들이 만든 수란 레시피는 냄비에 물을 끓인 뒤 물이 끓을 즈음 불을 끄고 껍질을 까지 않은 생계란을 ‘그대로’ 물에 넣어 일정시간을 기다린 뒤 껍질을 깨도록 하는 것이었다. 정통 레시피에 비하면 훨씬 쉬운 방법이지만 ‘누구나’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선 이보다 쉬워야 했다.

그는 “별별 방법을 다 시도하다가 결국 전자렌지에 깐 달걀과 물이 든 작은 종지를 놓고 이를 랩으로 씌워 조리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러자 안에서 터지지도 않고 드디어 ‘수란 비스무리한 것’을 만들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전자렌지로 고구마 등을 찔 때 찜기의 원리를 활용해 물을 넣고 찌는 것을 참고했다. 비록 정통 레시피를 고려한다면 이는 수란이라기보다는 ‘수란 비스무리한 것’이지만 이 정도는 기자를 포함한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레시피인 것이다.

그는 “메뉴를 만들 때 처음엔 최상의 맛을 위해 드라이에이징(Dry aging·육류를 건조한 환경에서 장기간 숙성)이나 콩피(Confit·시럽, 기름 등에 식품을 넣고 오래 끓이는 방법), 수비드(sous vide·진공 조리법) 등 다양한 기법을 떠올리지만, 이를 최대한 제한하는 과정을 거쳐 연구원분들이 양산화 노력을 하면 최종적으로 키트에 들어가게 된다”고 했다. 이어 “수비드의 경우 고객이 이 과정을 직접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수비드 처리를 끝낸 뒤 이를 냉동 상태로 고객에게 배송하면 고객이 해동해서 10초정도만 구우면 수비드 상태의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 등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출시했을 때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메뉴를 묻자 두 가지 메뉴의 이름이 나왔다. 먼저 그가 꼽은 것은 ‘닭한마리 칼국수’였다. 천 셰프는 “출시 준비하면서도 그렇게까지 인기가 많을 거라곤 예상치 못했는데 닭한마리 칼국수의 인기가 굉장히 폭발적이었다. 닭한마리를 먹고도 칼국수를 또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고객들이 ‘가성비가 높다’고 느꼈던 것 같다”며 “해당 메뉴는 시즌성이 아닌 스테디셀러 메뉴로 통상 판매를 하고 있다”고 했다. 두번째는 ‘보일링랍스터&쉬림프’ 메뉴였다. 해당 메뉴는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연말에 한정 판매됐던 시즌성 메뉴로 5만원에 가까운 가격에도 불구하고 조기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천 셰프는 “아무래도 특별한 날의 파티 음식이다보니 랍스터와 함께 어떻게 풍성함을 표현할 것인지에 대한 가니시(채소 등 곁들임 요리), 플레이팅(완성된 요리를 차려내는 기술)도 중요했다”며 “플레이팅도 중요한데, 소비자들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것을 통해 경험 공유를 잘 할 수있도록 소스나 가니시의 색이나 놓는 순서 등에 대한 지시도 레시피에 세부적으로 적었다”고 했다.

천 셰프는 마지막으로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하느냐고 묻는 질문에 답했다. “사실 저도 집에서 저를 위한 요리는 잘 안하게되는 편이예요.(웃음) 그럼에도 집에서도 좋은 음식을 ‘경험’하고 싶으니까 저부터도 가족들과 무언가 집에서 먹으려고 할 땐 밀키트를 애용하는 편이예요.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쭉 식문화에 있어 다양한 경험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수요는 계속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 맛집’의 비밀을 식탁으로…“1인가구, 대체육 등 3세대 밀키트 시대 올 것”

14일 경기도 용인 소재 프레시지 공장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구근모 프레시지 상품개발연구소장이 자사의 RMR 상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프레시지 제공

14일 경기도 용인 소재 프레시지 공장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구근모 프레시지 상품개발연구소장이 자사의 RMR 상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프레시지 제공

“처음 갔을 땐 (가게에서) 소스 배합비도 안 줬죠. 하지만 5번 정도 왔다갔다 하면서 결국 저희가 직접 먹어보고 나름대로 궁리해서 최대한 그 맛에 가까운 맛을 만들어 가니까 그제서야 내주시더라고요.”

구근모 프레시지 상품개발연구소장은 말했다. 지난해부터 프레시지가 중소벤처기업부와 협업해 진행하고 있는 ‘백년가게’ 밀키트 개발 사업 초반에 겪은 에피소드다. 이 프로젝트는 밀키트 제조업체가 코로나19로 인해 타격을 받은 노포들을 돕는 차원에서 추진 중이며, 현재까지 지동관, 이화횟집 등 유명 노포 8곳의 메뉴 10종이 출시됐다. 취지는 좋지만 ‘유명 맛집’의 메뉴를 비전문가가 누구나 주방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레시피로 ‘번안’하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구 소장은 “수십년 된 맛집들은 처음엔 맛의 비밀이 알려지는 걸 꺼리실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취지가 알려지면서 먼저 조리법을 알려주는 곳도 생기는 등 더 수월하게 작업을 하고 있다. 저희가 개발한 쪽이 더 맛있는 것 같다며 본래 레시피를 일부 수정하신 곳도 있다”고 했다. RMR(Restaurant Meal Replacement·레스토랑 메뉴를 밀키트화 한 간편식) 분야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는 프레시지는 한화 호텔앤리조트, 킹콩부대찌개 등 각종 레스토랑, 프랜차이즈 업체들과 협업해 위탁 생산을 진행해왔다.

노포, 유명 맛집이라는 것은 ‘오리지널 맛’을 이미 체험한 이들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구 소장은 “100% 똑같은 것은 불가능할지 몰라도 최대한 유사한 경험을 구현하는 것은 가능하다”며 “핵심은 그 레스토랑만의 ‘킥(kick·차별점)’을 살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예로 킹콩부대찌개의 가장 큰 특징은 부대찌개에 들어가는 꾸덕한 맥앤치즈 소스였다. 이를 별도의 조리 없이 간편하게 취식가능하게 하기 위해 레토르트식으로 전처리해 소스화했다. 그는 “이화횟집 낙지볶음의 경우 핵심은 고춧가루로 매운맛을 내는 것이었다”며 “이처럼 각 레스토랑의 핵심 특징을 잡아내서 거기에 집중하면 소비자들은 마치 정말 그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같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물론 이처럼 복잡한 과정과 고민을 거쳐 메뉴가 개발되지만 소비자들의 임무는 재료를 덥히거나 만들어진 소스 봉지를 뜯어서 끼얹는 일 정도다. 구 소장은 “재료가 많아서 만들기가 복잡해보일 수 있지만 예를 들어 뿌빳퐁커리의 경우 스크램블을 치는(만드는) 작업까지 소스처럼 붓기만 하는 정도로 간소화하고 있다”며 “실제로 저희 레시피에서 필요한 도구는 볼, 채반 등 정도로 굉장히 간단한 편”이라고 했다.

그간 많은 메뉴를 개발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메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구 소장은 ‘동파육’을 꼽았다. 그는 “그간 방송에 이연복 셰프 등 중식셰프들이 많이 나오면서 일반인들이 동파육을 접할 기회는 늘었지만 집에서 시도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메뉴”라며 “기존에 시판 동파육 하면 차슈, 수육같은 제품밖에 없었는데 실제 (전문식당에 가서 먹는 것과 유사한) 맛을 구현하기 위해 실제 정통 레시피와 거의 동일한 공정을 고안했다”고 했다. 썰어낸 뒤 맛을 입히지 않고 덩어리 째 졸이는 방식으로 동파육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선 충분히 맛이 들 정도로 조리해야 하기 때문에 최소 4~5시간이 걸린다.

구 소장은 정통 조리 방식의 동파육을 효율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공장의 기존 레토르트 설비를 활용해 찜기와 유사한 내부 환경을 설정해 이를 활용하는 방식을 찾았다. 다만 현재는 주된 원료인 돼지고기 수급 문제 때문에 잠시 생산을 중단한 상황이다. 고 이사는 “동파육의 경우 지방이 적정량 섞여있어야 하기 때문에 지방이 적은 국내산보다는 독일산이 적합하다. 현재는 수급이 어려운 상황이라 불가피하게 생산을 중단하고 있다”며 “(밀키트의 경우) 원료 수급 사정이나 식품법 등으로 인해 레시피를 만들 때 제약이 많은 편”이라고 했다.

메뉴 개발 주방에서 직원과 신메뉴와 관련 논의를 하고 있는 프레시지 구근모 소장 /프레시지 제공

메뉴 개발 주방에서 직원과 신메뉴와 관련 논의를 하고 있는 프레시지 구근모 소장 /프레시지 제공

인터뷰 도중 얼핏 문고본처럼 생긴 단출한 포장의 밀키트가 눈에 들어왔다. 성인 여성이 손바닥을 쫙 편 정도 크기의 얼린 불고기 밀키트인데 유통기한을 보니 이듬해 5월이다. 냉동 제품이라는 점도, 유통기한이 1년이 넘는다는 점도 낯설었다. 프레시지가 지난해 9월부터 출시하고 있는 1인가구 타깃의 밀키트 ‘더 이지’ 시리즈다. 구 소장은 “‘1세대 밀키트’는 3~4인분용으로 나오는데다가 보존성이 좋지 않아 그간 밀키트를 1인가구가 접하기 힘들었는데, 신규 공장에 프리징(냉동) 터널 설비를 갖추고 공정 및 메뉴를 단순화해, 두고 먹을 수 있는 밀키트를 개발했다”며 “컨셉은 ‘어머니가 1인가구 집(자취)에 와서 냉동실에 한번 먹을만큼 소분해 넣어주고 가는 음식’”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유아옷과 성인옷이 단가 차이가 거의 나지 않듯이, 1인용 밀키트 역시 중량은 줄어도 생산 단가를 줄이기가 힘들었다”며 “최대한 단가를 낮추기 위해 이처럼 한번에 포장이 된 형태를 고안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밀키트 도입 초기의 단골 메뉴였던 ‘밀푀유나베’ ‘부대찌개’ 등 전골 위주의 3~4인용 밀키트를 통상 ‘1세대 밀키트’라 한다면,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업계 판도가 큰 진폭으로 흔들리고 있는 지금은 ‘2세대 밀키트’의 시대라고 볼 수 있다. 2세대 밀키트의 특징으론 프리미엄화, RMR로 인한 메뉴 다변화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날 구 소장은 ‘3세대 밀키트’의 시대까지 내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3세대 밀키트에서 고려할만한 요소로 꼽은 것은 ‘1인가구’ ‘간편성’ ‘지속가능성’ ‘다양성’ 등이다.

프레시지가 지난해 9월부터 출시하고 있는 1인용 냉동 밀키트 ‘더이지’ 시리즈. ‘5분’ 만에 만들 수 있는 초간편식을 표방한다. /프레시지 제공

프레시지가 지난해 9월부터 출시하고 있는 1인용 냉동 밀키트 ‘더이지’ 시리즈. ‘5분’ 만에 만들 수 있는 초간편식을 표방한다. /프레시지 제공

구 소장은 “예전엔 밀키트의 주된 소비층이 20~40대였다면, 지금은 저희 부모님 세대(60~70대)까지도 밀키트의 존재를 알고 가끔 먹기도 한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가 전체 밀키트 중 한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는 점”이라며 “과거엔 일부 특별한 날에만 먹는 것이 밀키트였다면 현재는 밀키트 자체가 고객의 장보기를 대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실제 프레시지에 따르면 지난해 국·탕·찌개 제품군의 판매량은 전년 대비 무려 296% 증가하면서 전체 제품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한식이 기존 약 25%에서 50% 선으로 올라왔다.

점차 국내 채식 인구 및 식탁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이들이 늘면서 대체육 분야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구 소장은 “미국 등 해외시장에선 채식 위주의 식단이 많이 없다 보니 (비건과 논비건 식단이) 훨씬 대조되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주된 식단의 80% 정도가 야채라 많은 인구가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기본적으로 채식을 지향하나 경우에 따라 육류를 섭취하는 인구)이나 마찬가지”라며 “환경적인 부분에서 접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이어 “최근 맥도널드의 플랜트버거 등 대체육 고기를 먹어봤는데 예상했던 것보단 맛이 괜찮았다”며 “다만 (대중화를 위해선) 일정 정도의 퀄리티와 가격경쟁력이 보장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더이지’ 시리즈보다도 간편성을 극도로 강화한 밀키트 제품군도 조만간 출시를 앞두고 있다. 구 소장은 “물만 부으면 먹을 수 있는 수준의 간편한 밀키트 제품군이 이제 출시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며 “한끼에 3만원 이상하는 프리미엄 제품군에 대한 선호도 꾸준히 유지되겠지만, 수요가 다양화되면서 캠핑, 야외 등에서 간편하게 만족스런 한끼를 먹고자하는 요구도 커져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점차 가정의 식탁과 외식, 배달음식, 밀키트, 마트 냉동 및 즉석식품 간의 격벽이 사라지고 있는 시대. 오늘도 퇴근길 장바구니에 밀키트를 넣을지 시장 채소가게에 들를지, 아니면 이도 저도 귀찮으니 배달앱을 켤지를 고민한다. 아무리 “바쁜 날에도 배는 고프고”(히라마쓰 요코) 사람이 먹기 위해서 살지는 않지만, 사는 데는 여전히 먹을 것이 중요하다. 저녁이 있는 삶과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삶을 고민하면서 퇴근하는 오늘도 식탁을 차리는 일의 고단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이들의 존재가 고맙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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