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급식소에서 울려 퍼지는 떼창…“우리는 랩 때리고 밥 묵는다”

2024.06.17 11:41

경북 칠곡군 왜관읍 칠곡사랑의집에서 지난 14일 신나는 음악소리에 맞춰 어르신들이 랩을 하고 있다. 칠곡군 제공

경북 칠곡군 왜관읍 칠곡사랑의집에서 지난 14일 신나는 음악소리에 맞춰 어르신들이 랩을 하고 있다. 칠곡군 제공

“HEY YO~!” “SAY YO~!”

경북 칠곡군 왜관읍 칠곡사랑의집에서 지난 14일 신나는 비트와 함께 여러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 ‘떼창’이 울려 퍼졌다. 강사가 거침없는 랩을 내뱉자 120여명의 어르신들은 머리 위로 손을 올리며 “헤이 요!”를 외쳤다. 소싯적에 춤솜씨로 이름을 날렸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했다.

이날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점심을 먹기 위해 무료급식소를 찾은 어르신들이다. 어르신들은 약 5분간 신나게 랩을 하고 난 뒤 식판을 들고 배식 장소로 향했다. 줄을 선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은 조금 전 배웠던 랩을 따라 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취약계층 어르신을 대상으로 음식을 제공하는 무료급식소에서 랩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등장한 것은 지난 4월이다. 랩이 치매를 예방하고 어르신들의 건강증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권차남 칠곡사랑의집 센터장(75)이 직접 나서면서다.

권 센터장은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와 함께 외로움과 고독을 달래고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랩을 시작했다”며 “마지막 남은 인생도 나보다 어려운 어르신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수니와 칠공주’와 ‘보람할매연극단’ 래퍼들이 지난해 11월 칠곡군 왜관읍에서 열린 쩜오골목축제에서 프리스타일 랩 배틀을 펼치고 있다. 칠곡군 제공

‘수니와 칠공주’와 ‘보람할매연극단’ 래퍼들이 지난해 11월 칠곡군 왜관읍에서 열린 쩜오골목축제에서 프리스타일 랩 배틀을 펼치고 있다. 칠곡군 제공

그는 어르신들에게 랩을 가르치기 위해 사비를 들여 전문 강사를 찾아가 랩을 배웠다고 했다. 처음에는 입에 잘 붙지 않았던 랩도 이젠 곧 잘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젊은 시절의 아름다웠던 추억과 밝은 미래를 노래하는 ‘희망사항’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어르신들이 따라 불렀던 랩이다.

랩 프로그램이 도입된 칠곡사랑의집에는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00여명의 어르신들이 자리에 앉아 랩을 뱉을 준비를 한다.

급식소를 이용하는 이숙자 할머니(83)는 “랩을 하면서 혼자 사는 외로움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며 “명절 때 손주 앞에서 랩 실력을 자랑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모 할머니(80대)도 “(랩을 하면)얼굴에 화색이 돌고 신이 난다. 밥도 먹고 노래도 하고 일석이조”라면서 웃었다.

권 센터장은 칠곡지역에 불고 있는 ‘할매 랩’ 열풍 때문에 랩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칠곡군에는 세계 주요 외신에서 보도된 평균연령 85세의 ‘수니와 칠공주’를 비롯해 5개의 어르신 랩 그룹이 활동하고 있다.

칠곡군 섬김주간힐링보호센터도 전국 최초로 랩을 활용한 치매예방 프로그램을 내놨다. 반복되는 가사를 암기하고 간단한 손동작으로 춤을 추는 랩이 치매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의학적 소견에 따라서다.

칠곡군 관계자는 “수니와 칠공주 등의 활동이 화제가 되자 랩을 배우고 싶다는 어르신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며 “어르신들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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