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프리즘]“파출소 가면 네가 실망할거야”

2003.12.01 18:27

경기 의정부시 민락동 ㅈ아파트. 쌀쌀한 초저녁 날씨에 9살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아파트 입구만 뚫어지게 바라보며 훌쩍거리고 있다. 잠시 뒤 소형 승용차가 단지안으로 들어왔고, 급하게 차에서 내린 30대 후반의 남자가 아이 앞에 다가섰다.

“아이쿠, 아빠가 늦었네. 꽃집에서 엄마 꽃다발을 예쁘게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 미안”

이날 아이는 엄마의 생일 선물을 사기위해 퇴근하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아파트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아빠가 약속시간을 정확히 지키지 못한 것이다. 아이는 아빠를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아빠 기다리며 추워서 뛰어 다니다 주머니안에 있던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지갑안에는 현금 1만2백20원과 엄마에게 줄 생일축하 편지가 들어있었다고 했다. 딸의 손을 잡고 아이가 뛰어다닌 길 주변과 경비실을 둘러본 아빠는 “누가 주워갔나보다 아빠가 돈 줄게. 그냥 가자”하고 아이를 승용차에 태우려했다. 그러자 아이는 아빠의 옷자락을 잡고 이렇게 졸랐다.

“아빠! 파출소에 가면 내 지갑 있지 않을까. 지난 번에 아빠와 내가 길에서 주운 지갑도 파출소에 갖다 줬잖아….”

아빠는 “파출소에 가면 네가 실망할 거야”라며 딸의 팔을 잡아끌었고, 딸은 아빠의 ‘체념’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

〈이상호기자 sh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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