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진 전봇대가 일으켜 세운 ‘마을 공동체’

2016.03.01 22:04 입력 2016.03.01 22:07 수정

독산4동 주민들의 실험

서울 금천구 독산4동 27·28통은 다세대·다가구 주택이 밀집한 동네다. 지난 1월15일 골목길을 가로질러 공사장을 지나던 레미콘 차량이 전봇대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 250가구가 한꺼번에 단전됐다. 혹한 속에 덮친 악재였다. 하지만 ‘전봇대 사고’는 골목에 예상치 못한 변화를 가져왔다.

주민들은 사고 수습을 위해 처음으로 주민총회를 열었다. 총회에서 주민 대표 6명을 뽑아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대책위가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레미콘 차량 업체 측과 피해복구를 위한 협상을 벌였다. 레미콘 차량 업체는 보일러 등 설비 복구, 골목길 정비 등을 보험으로 처리한 후 피해보상금으로 2000만원을 지급했다. 총 250가구의 피해가 한 달여 만에 수습됐다.

넘어진 전봇대가 일으켜 세운 ‘마을 공동체’

전봇대 사고를 경험하면서 동네에 변화가 생겨났다. 평소 왕래조차 없었던 주민들은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정월대보름 놀이도 함께했다. 주민 이길연씨(67)는 “예전에는 동네 사람 얼굴도 잘 몰랐는데 이제는 골목길에서 마주치면 인사하는 사람도 늘고 정월대보름 때는 처음으로 오곡밥을 나누며 윷놀이도 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대책위원 활동을 하던 6명이 다시 모였다. 이들은 앞으로 마을발전위원회를 꾸려 활동하기로 했다. 주민들은 동네 현안인 쓰레기 무단투기를 없애는 일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또 피해보상금 2000만원을 나눠 쓰지 않고 동주민센터에 기탁, 마을기금으로 조성키로 했다. 단발성 사업 예산으로 소비하지 않고, 지역 신협과 연계해 독산4동의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종잣돈으로 쓰기로 한 것이다.

27·28통의 변화는 독산4동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동주민센터는 동네 슈퍼를 개·보수해주고 대신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해 주민들이 소통할 수 있는 ‘같이가게’ 사업을 시작했다. 첫번째 같이가게로는 전봇대 사고 때 피해 신고를 접수하는 등 ‘작은 동주민센터’ 역할을 했던 정영석씨(56)의 슈퍼가 선정됐다. 슈퍼 입장에선 공간을 내주는 대신 가게도 새롭게 꾸미고 잠재적 손님도 확보할 수 있다.

동주민센터는 또 전봇대마다 쌓이는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해 골목길 한 곳을 ‘아이들의 전봇대 거리’로 지정하기로 했다. 아이들과 전봇대에 공공미술을 입혀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황석연 독산4동 동장(49)은 “주민들이 서로 만나는 기회가 생기자 마을 변화를 위한 자발적인 움직임이 나왔다”며 “주민들이 서로 독려하고 지지하는 관계망을 만드는 데 주민센터가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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