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피해자 도운 이들에게 “조폭”…지난 10년, 당신들은 뭘 했나

2023.05.24 21:44 입력 2023.05.24 21:45 수정

2012년 강제동원 손배 청구

시민모임 적극 나서며 가능

‘배상금 20% 약정서’ 보도에

여당 대표 맞장구 폄훼 발언

눈물 함께 흘린 이들 모욕해

서울 용산구 용산역 앞 강제징용 노동자상에 빗물이 맺혀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서울 용산구 용산역 앞 강제징용 노동자상에 빗물이 맺혀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99엔. 원화로는 1000원도 안 되는 이 돈을 2009년 일본 후생노동성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됐던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통장에 입금했다. 항공기 공장에서 목숨을 내놓고 강제노역을 했던 피해자들이 가입했던 ‘후생연금 탈퇴 수당’ 명목이었다. 2014년에도 119엔을 지급했고, 2022년에 또 99엔을 보냈다. 피해 할머니들을 모욕하고 농락하는 행동이었다.

안하무인이던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들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눈길을 준 건 한국 법원에 제기된 ‘손해배상 청구 소송’ 때문이었다. 피해 할머니 5명은 2012년 “생전 사죄를 받을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소송은 2009년 3월 광주광역시에서 결성된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적극 나서면서 가능했다. 이상갑·김정희 변호사 등이 피해자들을 대리했다. 2013년 11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원고 일부승소(배상 판결)’가 났지만 항소와 대법원 상고가 이어졌다.

대법원 최종 판결은 2018년 11월 나왔다. 미쓰비시가 이후에도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자 피해자들은 국내 재산을 압류하고 현금화 절차를 진행했다. 다급해진 일본 정부와 기업은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피해자와 시민들이 10년 넘는 세월 일본 전범 기업과 싸워왔지만 정부는 한 번도 할머니들 편에 서지 않았다. 할머니들과 함께한 이들은 시민모임이었다. 광주에서 서울까지 이어진 재판도, 일본 도쿄 미쓰비시 본사 앞 집회에서도 할머니의 휠체어를 밀며 담요를 덮어준 사람들이다.

소송을 대리한 변호인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최선을 다했다. 긴 소송에 지친 할머니들과 나들이를 하고, 병원에 동행하고, 말벗도 해주며 음식을 함께 먹었다. 할머니 이야기를 담은 책과 자서전도 발간했다. 모든 비용은 시민모임을 후원한 시민들 주머니에서 나왔고 피해자들의 부담은 없었다.

그런데 최근 이들을 두고 ‘조폭’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이 있다. 한 번도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찾지 않았던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보호비 명목으로 돈을 뜯는 조폭과 무엇이 다르냐”고 했다. 2012년 할머니들과 시민모임이 작성한 ‘약정서’가 조선일보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나온 말이다. 이 약정서는 “피고로부터 실제 받은 돈 중 20%에 해당하는 금액을, ‘일제 피해자 인권 지원 사업, 역사적 기념사업 및 관련 공익사업’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시민모임에 교부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변호인들의 ‘성공 보수’도, 시민모임 어느 특정인의 몫도 아니다.

승소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혹여 배상금을 받는다면 그 일부를 다른 피해자를 돕고 강제동원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데 사용하자”는 피해 할머니와 시민들의 약속이 ‘약정서’의 전부다.

일본 측 의도대로 고령의 피해자 할머니 중 일부는 배상도, 사죄도 받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배상금을 받는 것은 유족들의 선택이지만, 10년 넘게 이어진 시민모임의 활동을 “배상금의 20%를 받기 위한 행동”으로 폄훼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95)의 마지막 소원은 배상금이 아니라 “ 일본의 진심 어린 사죄를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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