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자문서 증거로 못쓴다”

2009.07.01 03:41
장은교기자

서울고법, 피고인 변호권 적극인정 첫 판례

검찰이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할 만한 내용이 담긴 서류를 입수했더라도 그것이 변호인에게 법률자문을 구한 의견서라면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변호인과 의뢰인 간의 비밀유지 의무와 피고인의 변호받을 권리를 적극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국내에서는 첫 판례다. 검찰은 반발하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4부(김창석 부장판사)는 30일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기소된 ㅅ사 직원 박모씨(54)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박씨에 대해 서울의 재개발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정비사업자 대표인 백모씨 등에게 약 5억원의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법정에서 ㅅ사의 한 지역사업소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확보한 서류를 증거로 신청했다. 서류는 ㅅ사가 로펌에 법률자문을 구한 의견서로 자사 직원이 한 행위가 위법인지를 묻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검찰은 의견서가 업체가 위법성을 인식하고 있었던 단서라며 재판부에 증거로 채택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이규진 부장판사)는 “법률의견서는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누구든지 강제수사에 대항해 변호인의 조력을 충분히 받기 위해서는 비밀보장이라는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며 “변호인이 법정에서 관련 내용에 대해 직접 증언하지 않는 이상 의견서를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변호인의 법률의견서가 증거로 사용된다면 피고인의 변론받을 권리가 크게 침해당한다는 취지다. 2심 재판부도 같은 취지로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법률의견서의 증거채택 여부가 법리적 판단을 받은 것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그동안은 검찰에서 증거로 신청하면 대부분 채택돼왔다. 검찰은 1심 선고 때도 크게 반발해 항소했고 이번에도 대법원에 상고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피고인의 변호받을 권리를 존중해 법률의견서는 범죄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비밀로 보호하도록 판례가 정립돼 있다.

추천기사

기사 읽으면 전시회 초대권을 드려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