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재판’ 김시철 독단 못 참고 주심판사 “나를 전보해달라” 요구

2018.11.01 21:40 입력 2018.11.01 22:07 수정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 만나 “심리 잘못 가고 있다” 지적

검찰, 당시 김시철과 수시로 e메일 주고받은 재판연구관 조사

임종헌에 심리 문건 보고돼…다른 재판, 법원행정처 개입 의심

‘원세훈 재판’ 김시철 독단 못 참고 주심판사 “나를 전보해달라” 요구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2012년 대선 개입 사건의 재판장이었던 김시철 서울고법 부장판사(53·사진)가 재판을 편파적으로 진행하자 이에 반발한 주심판사가 인사 이동을 요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을 수사하는 검찰은 김 부장판사의 이례적인 재판에 법원행정처가 개입했는지를 수사 중이다.

검찰은 다른 사법농단 의혹 사건도 맡은 김 부장판사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거나 선고를 미룬 게 아닌지 의심한다.

1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2015년 원세훈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7부의 첫 번째 주심판사였던 최모 판사(46)는 최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에서 “재판장인 김시철 부장판사가 주심인 나와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재판을 진행했고 법정에 출석한 검사들과도 계속 갈등을 빚었다”면서 “김연학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을 만나 사건 심리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뜻을 전달하고 인사 조치를 요구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최 판사는 “파기환송심에서는 대법원이 인정하지 않았던 텍스트 파일 2개의 증거능력이 쟁점이었는데도 김 부장판사는 원 전 원장의 공모관계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재판을 진행했다”면서 “e메일로도 이 같은 우려를 법원행정처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최 판사는 이듬해 2월 인사 대상이 아닌데도 금융정보분석원(FIU)으로 자리를 옮겼다.

실제 김 부장판사는 원세훈 파기환송심 재판부를 맡아 불공정한 진행으로 검찰의 반발을 불렀다. 김 부장판사가 국정원 댓글 활동을 손자병법에 나오는 용병술에 빗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탄력적인 용병술”이라고 표현하자 이에 반발한 박형철 당시 부장검사(현 청와대 민정수석실 반부패비서관)가 법정을 뛰쳐나가기도 했다.

김 부장판사는 2015년 10월 원 전 원장을 보석으로 풀어준 후 2017년 2월 같은 법원 민사16부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원세훈 재판의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그가 1년8개월을 끌었던 원세훈 파기환송심은 김대웅 부장판사가 서울고법 형사7부의 새 재판장으로 온 후 6개월 만에 끝났다. 김대웅 부장판사는 2017년 8월31일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검찰은 원세훈 재판부 재판연구관이었던 석모 판사(31)도 최근 참고인 조사했다. 김 부장판사는 주심인 최 판사 대신 석 판사와 수시로 e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원세훈 재판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김 부장판사의 원세훈 파기환송심에 간여한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앞서 공개된 옛 법원행정처의 ‘원세훈 사건 환송 후 당심 심리방향’ 문건에는 서울고법 소속 판사가 김 부장판사, 최 판사와 통화한 내용이 정리돼 있다. 2015년 10월 작성된 이 문건에는 “재판장이 기본적으로 대법원에서 증거능력 유무에 대한 판단만 하고 본안 판단을 하지 않았는데 공판·증거기록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이전에 쟁점화되지 않은 공모관계에 대한 의심스러운 정황이 드러난 이상 그에 대한 재심리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파기환송심 재판이 본격적인 심리에 들어가기도 전에 법원행정처가 재판장의 입장을 파악한 대목이다.

이 문건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전달된 것으로 파악됐다. 임 전 차장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에 “재판과정에 불협화음이 있어서 누군가에게 공판 진행 상황을 알아보라고 지시해 작성된 문건”이라고 진술했다.

김 부장판사는 원세훈 재판뿐 아니라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다른 사건의 재판장이기도 했다. 옛 법원행정처는 2015년 4월 말 전병헌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보좌관 임모씨의 보석과 감형을 검토하는 문건을 작성했다.

이후 김 부장판사는 임씨의 파기환송심을 맡아 그해 5월18일 임씨를 보석으로 석방하고 5월29일 임씨에게 징역 8월을 선고했다. 징역 8월은 앞서 구속된 임씨가 보석으로 풀려난 후 재수감되지 않기 위한 형량이었다. 임씨는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8개월을 넘으면 임씨는 다시 구금돼 부족한 형량을 채워야 했다.

김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가 재판을 컨설팅해준 민주당 유동수 의원의 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장이기도 했다. 다만 이 사건은 김 부장판사 재판부에 2016년 11월 접수돼 후임인 김대웅 부장판사가 이듬해 4월 선고 공판을 열었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달 30일 법원 내부게시판에 검찰 수사를 비판하는 글을 올린 지 이틀 만인 이날도 A4용지 47쪽 분량의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사법농단 의혹 수사에 관하여 법원 가족들께 드리는 글(2)’을 썼다.

김 부장판사는 검찰의 e메일 압수수색이 불법이었다고 재차 강조했다. 원세훈 재판에 외부 개입은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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