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사전은 머리만 가지고는 만들 수 없다…‘법언어’도 그렇다

2019.04.26 16:43 입력 2019.04.27 21:19 수정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행복한 사전’ 감독 이시이 유야|2013년 일본

낙태죄에 헌법불합치를 결정한 헌법재판소 결정문에 ‘사회’라는 단어가 83번 등장한다. 그런데 ‘사회’는 일본 사람들이 만들어낸 일본어다. ‘겐세이’라는 말을 썼다가 친일파로 비난받은 국회의원도 있지만 헌재가 100번 가까이 쓴 ‘사회’야말로 일본을 대표하는 학자 후쿠자와 유키치가 발명한 단어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소사이어티(society) 단어를 두고 후쿠자와를 비롯한 일본 학계와 사회가 80년 넘게 논쟁을 벌여 1875년 후쿠자와의 책 <학문의 권장>에서 사회(社會)를 정착시켰다.

일본 영화 <행복한 사전>은 국어사전을 만드는 사람들 얘기다. 이들은 십수년에 걸쳐 단어를 그러모으고 설명하는데, 새롭게 시행하는 재판원제도(국민참여재판) 포스터를 보고 표제어에 올리기도 한다.  영화 <행복한 사전> 중에서

일본 영화 <행복한 사전>은 국어사전을 만드는 사람들 얘기다. 이들은 십수년에 걸쳐 단어를 그러모으고 설명하는데, 새롭게 시행하는 재판원제도(국민참여재판) 포스터를 보고 표제어에 올리기도 한다. 영화 <행복한 사전> 중에서

소사이어티가 사회가 되기까지 여반(侶伴), 상반(相伴), 인간교제, 정부(政府), 회사(會社) 등을 거쳤고 서구와 일본의 현실에 관한 치열한 사회적, 역사적, 정치적 토론이 있었다. 이 ‘사회’가 1000년 이상 써온 ‘세상’과는 어떻게 다른지 논쟁하는 식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단어들이 개인(個人), 근대(近代), 연애(戀愛), 존재(存在), 자연(自然), 권리(權利), 자유(自由) 등이다. 일본은 개념과 사상뿐 아니라 조직과 물건도 번역했다. 폴리스(police)를 경계하고 살핀다는 경찰(警察)로 번역한 것도 그 예다.

식민지 시절 일본 개념이 우리에게 이전됐다. 토대가 없는 개념은 뿌리내리지 못하고 불투명하게 떠다녔다. 개념을 체계화하는 일부터가 우리 것이 아니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지금 봐도 안다. 우선 무성의하다. ‘불가능하다=가능하지 아니하다’, ‘관광객=관광하러 다니는 사람’을 풀이라고 써놨다. 일관성도 없다. 비(B)에 종이 규격을 나타내는 단위가 적혀 있는데, 에이(A)에는 없다. 어법도 무시한다. ‘분백색=분처럼 하얀 흰색’처럼 동어반복을 일삼는 고려대 한국어대사전도 있다. 펼치기도 부끄러운 표준국어대사전을 만드는 데 나랏돈이 100억원 넘게 들어갔다.

사회라는 바다를 언어라는 배로
건너는 일을 제도화 한 게 재판

우리나라는 재판의 사전 격인
법률 조항부터가 불명확하다
따라서 법언어도 체계가 없다

말이란 무엇인가
영화가 끊임없이 묻듯
지금 사법기자로서 내 역할은
법언어와의 지난한 싸움이다

일본 영화 <행복한 사전>은 국어사전을 만드는 사람들 얘기다. 이들은 유명한 국어사전이 많은 일본에서 또 다른 국어사전 만들기에 도전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전’을 편집 방향으로 잡아 단어를 그러모으고 설명한다. 2009년에 완성하기까지 15년이 걸리는데 그해 시행한 재판원제도(국민참여재판)도 표제어에 넣었다. 말이란 무엇인지 영화는 끊임없이 묻는다. 새로운 부원을 찾는 사전편집부 사람들은 후보들을 찾아가 불쑥 ‘오른쪽’을 설명해보라고 한다. “서쪽을 향했을 때 북쪽…, 보수적인 사상…” 등 어수룩하게 답하던 청년은 결국 국어사전을 찾아본다. 그래서 뽑힌다.

오른쪽을 어떻게 설명할지 토론하는 모습은 사전 발간을 앞둔 후반 장면에 다시 나온다. ‘아날로그 시계의 문자판을 보고 섰을 때 1시에서 5시까지 있는 쪽’이라는 신메이카이 국어사전, ‘이 사전을 펼쳐서 읽을 때 짝수 페이지가 있는 쪽’이라는 이와나미 국어사전의 설명이 소개된다. 영화 초반에 서쪽과 북쪽을 이용한 설명은 빙글빙글 제자리를 도는 잘못된 설명이다. 주인공들의 정의는 ‘숫자 10을 썼을 때 0이 있는 쪽’이었다(명색이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한때 문학청년인 내게 오른쪽은 ‘심장이 뛰지 않는 가슴 쪽’이었다).

기자가 되어 경찰담당을 하다가 법원에 출입하기 시작했다. 신동엽의 시어와 김수영의 시어를 가려내는 나였지만 법언어는 요령부득의 세계였다. 도대체 각하(却下)의 어느 글자에 기각(棄却)과 달리 요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뜻이 있는지 알 수 없었고, 영장을 경찰이 신청하고 검사가 청구한다는 변호사들의 설명이 무색하게 헌법에는 검사가 신청한다고 적혀 있었다. 사실 나는 경찰에 출입하면서 기자가 적성이 아니라고 느꼈고, 어차피 법원 출입이 마지막이니 법학교과서나 읽어보자 싶었다. 그렇게 해서 <민법총칙>의 첫 장을 펼쳤고, 법의 세계로 내 삶은 빠져들었다.

일본 영화 <행복한 사전>은 국어사전을 만드는 사람들 얘기다. 이들은 십수년에 걸쳐 단어를 그러모으고 설명하는데, 새롭게 시행하는 재판원제도(국민참여재판) 포스터를 보고 표제어에 올리기도 한다.  영화 <행복한 사전> 중에서

일본 영화 <행복한 사전>은 국어사전을 만드는 사람들 얘기다. 이들은 십수년에 걸쳐 단어를 그러모으고 설명하는데, 새롭게 시행하는 재판원제도(국민참여재판) 포스터를 보고 표제어에 올리기도 한다. 영화 <행복한 사전> 중에서

오른쪽을 답하려다 사전을 찾아보던 청년 마지메 미쓰야(마쓰다 류헤이)는 하숙집의 손녀를 짝사랑한다. 이 무렵 사랑이라는 표제어에 감상적인 설명을 다는데 출판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무튼 그는 고백이랍시고 어려운 한자를 가득 담은 의고체 편지를 출근을 앞둔 손녀에게 건넨다. 하지만 퇴근한 손녀는 울상이 되어 청년에게 퍼붓는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야? 내가 그걸 읽을 수 있을 것 같았어? 분명 잘 썼겠지. 내가 무식해서 못 읽는 게 문제지. 편지 말고 말로 듣고 싶어. 마지메 목소리로 듣고 싶어. 지금. 명확히 말해줘.” 결국 두 사람은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한다.

이 일은 언어를 대하는 마지메의 태도를 변화시킨다. “살아 있는 사전은 머리만 가지고는 만들 수 없다”고 말하는 계기다. 이는 마지메가 사전편집부에 들어가자 원로 감수자가 한 말이기도 하다. “단어 의미를 알고 싶다는 것은 누군가의 생각이나 마음을 정확히 알고 싶다는 뜻입니다. 단어의 바다는 끝이 없이 넓지요. 사전은 그 너른 바다에 떠 있는 한 척의 배. 인간은 사전이라는 배로 바다를 건너고, 자신의 마음을 적확히 표현해줄 말을 찾습니다. 그것은 유일한 단어를 발견하는 기적.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바라며 광대한 바다를 건너려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사전을 만듭시다.”

그래서 <배를 엮다(舟を編む)>가 이 영화의 일본어 제목이다. 언어가 생각을 만들지만, 생각이 존재하고 말이 생겼다. 마찬가지로 법이 사회를 규정하지만, 사회가 법을 만들었다. 언어라는 배로 사회라는 바다를 건너는 일을 제도화한 것이 재판이다. 적잖은 재판에서 국어사전을 쓴다. 얼마 전 대한항공 소액주주 소송에서도 ‘이 절은 이 장 다른 절에 우선하여 적용한다’는 상법 제542조의2 2항을 두고 판결이 갈렸다. 1심 서울중앙지법은 “먼저, 어떤 것에 앞서서란 의미의 우선(于先)”으로 봤고, 2심 서울고법은 “앞서 다루어지거나 특별히 여겨진다는 우선(優先)”으로 해석했다.

우리나라는 재판의 국어사전 격인 법부터가 불명확하다. 국가기구를 조직하고 인권을 보장하는 헌법부터 애매하다. 제32조 6항은 “……근로의 기회를 부여받는다”고 돼 있다. 하지만 ‘부여(附與)를 받는다’는 표현은 있을 수 없다. 헌법에 정해진 자문회의들도 문제다. 자문(諮問)은 묻는다는 뜻으로 질문(質問)과 같다. 그렇다면 자문에 응하는 기구를 자문회의로 부를 수는 없다. 이들 기구의 본질이 조언이라는 점을 드러내지 못하고 심지어 뒤집기 때문이다. 제27조 2항은 “군인 또는 군무원이 아닌 국민은……”이다. 주어가 1. 군인 2. 군무원이 아닌 국민으로도 읽힌다. 자연스럽게 “군인이나 군무원이 아닌 국민은”이라고 했으면 될 일이다. 그렇지 못해 “군인과 군무원이 아닌 국민은”으로 오해된다. 일본어 법문장에 나오는 ‘마타(又)’를 번역한 ‘또는’이 혼란을 일으킨 것이다.

우리나라 법언어는 체계도 없다. 파생어·복합어를 만들거나 문장을 짜면서 문법을 무시한다. 신문에 매일 등장하는 자유형, 재산형, 생명형도 말이 아니다. 형 앞에 자유, 재산, 생명을 붙여 이를 빼앗는다는 의미를 만들지 못한다. 자유형이 자유를 빼앗고 재산형이 재산을 빼앗는다면, 징역형과 벌금형은 징역과 벌금을 빼앗아야 한다. 일상어와 멀어진 법언어는 엄밀함을 상실하고 무력해진다. 막연한 어휘와 애매한 표현 때문에 헌법과 법률을 부정직한 문서라고 생각한다. 시민은 헌법과 법률이 나를 지켜준다고 믿지 못한다. 법언어가 언중에게서 멀어지면 법의 지배도 실현되기 어렵다.

소사이어티를 번역하기 힘들었던 이유는 당시 일본에 서구의 소사이어티가 없었기 때문이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일본 현실에 살아 있는 일본어를 연구해 새롭고 이질적인 서구의 사상을 얘기하려 했다. 그렇게 해서 일본인의 일상에 살아 있는 단어의 의미를 바꾸고, 궁극적으로는 일본의 현실 자체를 바꾸려 한 것이다(야나부 아키라 <번역어의 성립>). 지금 우리나라 법언어는 오히려 일상에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법의 지배를 가로막고 있다. 현장의 사법기자인 나의 역할은 법언어와의 지난한 싸움임을 깊이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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