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영장 기각..."사실관계는 소명, 구속 필요성은 적어"

2020.06.09 02:11 입력 2020.06.09 10:01 수정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불법 행위를 한 혐의를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2)의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했다. 뇌물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가 2018년 2월 항소심 재판에서 석방된 이 부회장은 일단 재수감되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8일 이 부회장의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를 진행한 뒤 9일 오전 2시쯤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69·부회장)과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64·사장)의 구속영장도 기각했다.

원 부장판사는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하였다고 보인다”면서도 “불구속재판의 원칙에 반하여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하여는 소명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또 “사건의 중요성에 비추어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복현)는 지난 4일 자본시장법과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로 이 부회장 등 3명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부회장 등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사기적 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등 10여개 불법 행위를 한 혐의를 받는다. 또 2012~2015년 제일모직의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1조8000억원대 콜옵션(정해진 가격에 주식을 살 권리로 일종의 부채)을 공시하지 않고, 회계처리 기준을 임의로 변경해 회사 가치를 4조5000억원가량 부풀린 혐의(분식회계)도 받는다. 김 전 사장은 위증 혐의도 포함됐다.

검찰은 이 부회장 등이 불법 행위를 통해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합병비율을 도출함으로써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 강화와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도모한 것으로 판단했다.

법원이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했지만 이 부회장의 범죄 혐의가 소명된다는 취지로 밝혀 검찰 입장에서는 이번 수사의 정당성은 확보한 셈이 됐다. 검찰은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입장을 내고 “이번 사안의 중대성, 지금까지 확보된 증거자료 등에 비춰 법원의 기각 결정을 아쉽게 받아들인다”라며 “다만 영장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향후 수사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하거나 불구속 기소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이 부회장의 영장실질심사는 8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삼성그룹 내에서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삼성 관계자는 “국정농단 사건의 파기환송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번 영장 기각을 통해 그나마 경영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검찰이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할 것을 우려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법원이 영장을 기각했음에도 또다시 영장을 청구한다면 검찰이 ‘해도 너무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법원에 이어 검찰도 현명한 판단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불법 경영 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불법 경영 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