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이재용 영장 기각하면서도 '혐의 소명' 취지...검찰 수사 전망은?

2020.06.09 02:20 입력 2020.06.09 11:28 수정

법원은 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2)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불구속재판의 원칙에 반하여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하여는 소명이 부족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법원은 이 부회장의 혐의가 소명된다는 점은 인정했다. 검찰은 보강 수사를 통해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재청구하거나 불구속 기소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이 부회장 측이 외부 전문가들에게서 자신의 기소 여부를 판단보겠다며 신청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사심의위)가 개최될지도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8일 이 부회장의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를 진행한 뒤 9일 새벽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69·부회장)과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64·사장)의 구속영장도 기각했다. 김 전 사장은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이 부회장의 승계와 무관하다는 취지로 증언을 한 혐의(위증)도 받는다.

원 부장판사는 우선 “기본적인 사실관계는 소명됐다”라며 “검찰은 그간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의 혐의가 어느 정도 소명됐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원 부장판사는 “이 사건의 중요성에 비춰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도 했다.

그러나 원 부장판사는 “불구속 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하여는 소명이 부족하다”고 했다. 검찰이 그간 증거를 충분히 확보한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우려는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법원이 이 부회장 등의 혐의가 소명된다는 취지로 설명한 점이 주목된다. 이는 이 부회장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추정은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소명은 기소 후 본 재판에서 유죄가 나오기 위해 필요한 확신(증명)보다 느슨한 수준의 입증이다. 이 부회장의 혐의가 소명됐다고 해서 이 부회장이 재판에서 반드시 유죄를 받는다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검찰 입장에서는 2017년 11월부터 진행한 수사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경제 여건이 어려운데 무리하게 기업 수사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일부 여론의 부담도 덜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은 이번 법원의 결정으로 이 부회장을 불구속 상태로 기소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보강 수사를 통해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벌어진 10여개 불법 행위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등을 보고받거나 지시한 내부 문건과 진술 등을 확보했다. 2012년부터 구체적인 승계 계획이 담긴 문건 등도 입수했다. 검찰은 ‘삼성전자 지분 4.1%를 취득하려면 8조원 이상이 드는데, 합병을 통해 이 금액을 절약할 수 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내부 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지난달 두 차례에 걸친 조사에서 “보고를 받거나 지시한 바 없다”, “모른다” 등으로 혐의를 부인했다. 이 때문에 검찰은 이 부회장이 지위를 이용해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반면 이재용 부회장 측은 입장을 내고 “법원의 기각사유는 ‘기본적 사실관계 외에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등 범죄혐의가 소명되지 않았고, 구속 필요성도 없다’는 취지”라며 “향후 검찰 수사 심의 절차에서 엄정한 심의를 거쳐 수사 계속과 기소 여부가 결정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영장실질심사에서 검찰과 이 부회장 측이 치열한 공방을 벌이면서 심사는 8시간30분 동안이나 진행됐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 관련 혐의로 8시간40분 받았던 영장심사 역대 최장 기록에 근접한다.

향후 이 부회장과 김 전 사장이 지난 2일 서울중앙지검에 신청한 수사심의위가 개최될지, 개최된다면 어떤 결론이 나올지 주목된다.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수사심의위는 사건 관계자의 기소 여부 등을 심의·의결하는 기구이다. 의결 내용을 검찰이 반드시 수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그간 수사심의위를 거친 8건의 사건은 검찰이 모두 의결 내용대로 처분했다. 검찰의 수사를 수긍할 수 없는 이 부회장 측이 ‘묘수’를 썼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초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 수사심의위가 열릴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관측됐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수사심의위의 개최 여부를 예단하기 어렵게 됐다. 다만 법원이 이 부회장의 혐의가 소명된다고 밝힌 점이 수사심의위의 개최 가능성을 낮추는 요소로 작용할 수는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검찰시민위원 15명으로 구성된 ‘부의심의위원회’를 11일 개최한다. 부의심의위는 수사심의위로 가는 1차 관문이다. 부의심의위는 회의 당일 이 부회장 사건을 수사심의위에 안건으로 부칠지 결정한다. 부의심위위는 검찰과 이 부회장 측에 의견서 제출을 요청한 상태이다.

불법 경영 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 차에 탑승해 있다. 이 부회장은 서울구치소에서 영장실질심사 결과를 기다렸다. 연합뉴스

불법 경영 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 차에 탑승해 있다. 이 부회장은 서울구치소에서 영장실질심사 결과를 기다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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