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판정무효 가능성 희박…책임 소재 가리기 집중을”

2022.09.12 21:13 입력 2022.09.13 09:35 수정

전문가들 “한국 정부의 주장, 5가지 무효 사유 해당 안돼”

관여자 고발·구상권 청구 등 주력해 재정손실 최소화해야

한국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약 2900억원을 배상하라는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중재 판정에 불복해 무효 신청을 할지 검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책임 규명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법무부는 한국 정부와 론스타 간 ‘투자자-국가 간 분쟁 해결 절차(ISDS)’ 판정 무효 신청을 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판정 무효 신청은 판정일 기준으로 120일까지여서 한국 정부는 올해 말까지 판정 무효를 신청할 수 있다. ISDS 중재 무효 취소가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영국 국제비교법연구소(BIICL)의 2021년 ICSID 판정 무효 보고서에 따르면 ICSID 판정 총 355건 중 전부 무효 판정을 받은 사례는 6건(1.6%)에 불과하다.

전부 무효 판정이 ‘한국 정부에 배상 책임이 없다’는 승소 판정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무효 판정이 되면 새 중재판정부가 구성돼 본안을 재판단하는 절차가 개시된다.

재판소가 적절히 구성되지 않았을 때, 재판소가 명백히 권한을 이탈했을 때, 재판소의 재판관에 독직(부정 행위)이 있을 때, 기본적인 심리 규칙으로부터 중대한 이탈이 있을 때, 판정서에 근거가 되는 이유를 명시하지 않았을 때 등 5가지 사유에 해당해야 판정이 무효가 된다. 한국 정부가 공개한 판정요지서에는 “론스타가 ‘먹고 튀었다’를 넘어 ‘속이고 튀었다’”는 등의 론스타의 책임을 거론하는 소수 의견이 담겼지만 이것이 판정을 무효화하는 근거는 될 수 없다.

전문가들은 판정이 무효가 될 가능성은 희박한다고 전망한다. ISDS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12일 “법무부가 공개한 판정요지만을 놓고 봤을 때도 5가지 무효 신청 사유에 해당되는 게 없다”며 “이대로라면 판정 무효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당초 한국 정부가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인 론스타가 부적법 투자자여서 제소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지 않았다는 점을 패소의 근본적인 요인으로 꼽는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2015년과 2018년 중재판정부에 구두 변론 참석을 신청하고 이 같은 취지의 변론 요지를 제출했다. 중재판정부는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론스타의 외화은행 인수 자체가 위법하므로 분쟁을 제기할 권한도 없다는 주장을 했다면 배상 판정을 피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한국 정부가 이를 포기했다”고 했다.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은 한국 정부가 가능성이 희박한 판정 무효 절차에 주력하기보다 책임 소재를 가려 재정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판정에서 금융당국의 부당한 개입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에 관여자들을 배임 혐의로 고발하고 구상권도 청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효 판정 절차가 시작되면 2012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 관여한 관계자들의 배임 혐의 공소시효(10년)가 지나가 버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 변호사는 “하나금융지주는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6000억원가량 싸게 사 이득을 봤지만, 과정상 벌어진 문제에 대해선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책임지게 됐다”며 “불법 행위 관여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법무부는 “2019년 말 기준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통계상 취소신청 판단이 이루어진 사건 중 전부 또는 일부 인용 사건은 18건, 기각 사건은 61건, 인용율은 약 22.8%”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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