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황라열 탄핵’ 어떻게 볼 것인가

2006.06.16 00:52

운동권에 대한 ‘반동’인가, 총학생회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의 진통인가. 최근 서울대에서 벌어진 사상 초유의 총학생회장 탄핵에 대해 학내외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견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다툼으로 보이는 이 사건의 밑바탕에는 대학 총학생회의 정체성 혼란이 있다는 지적이다. 총학 탄핵 시도는 다른 대학에서도 수차례 있었다. 다만 이번처럼 실제로 탄핵이 이뤄진 경우는 드물다. 2004년 한국외대와 지난해 홍익대에서 각각 총학생회장 탄핵 움직임이 있었으나 성과없이 끝났다. 지난해 고려대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 상정된 탄핵안도 부결됐다.

‘서울대 황라열 탄핵’ 어떻게 볼 것인가

과거의 탄핵 움직임은 비운동권 학생들이 운동권 총학생회장을 상대로 벌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황라열 서울대 총학생회장에 대한 탄핵은 주체와 대상이 과거와 정반대다.

서울대 관계자는 “탄핵 사유 가운데 황씨 개인의 도덕성 문제뿐 아니라 한총련 탈퇴도 들어 있었다는 점이 주목된다”며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대립각을 만든 이 부분이 중요 요소”라고 말했다. ‘한총련 사퇴’ ‘도서관 앞 집회 금지’ 등 황씨의 공약과 실행과정에서 운동권의 반발을 산 것이 이번 사태를 몰고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운동권 대 비운동권’이란 단순도식을 거부한다. 황씨의 전임 총학생회장 정화씨(24·여)는 “황씨의 비민주적 의사결정 구조와 거짓말을 일삼은 도덕적 문제가 상승작용한 결과일 뿐”이라며 지나친 해석을 경계했다. 서울대에선 2003년과 2004년에도 비운동권 총학생회장이 잇따라 당선되는 등 운동권이 새삼 황씨를 경계할 이유가 없는데다 한총련 탈퇴 건을 의견수렴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한 부분이 문제가 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제자들을 보는 교수들의 해석은 “현재의 총학생회가 정체성의 혼란을 빚고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서울대 이미나 학생처장은 “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대학생의 역할이 줄고, 졸업 후 취업성공 가능성도 낮아지는 등 학생들이 처한 여건이 과거 군부독재 시절과는 판이하다”고 말했다. 특히 취업난이 학생들을 당장 자신의 생존을 우선시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처장은 “총학이 과거 독재시절의 정체성과 활동 방식을 고수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기존 학생회의 가치관과 다른 계파가 등장,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이번 탄핵은 이런저런 계파 각각이 내세운 총학의 정체성 각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대표인 주경복 교수(건국대 불문학)는 “캠퍼스까지 몰아친 신자유주의 열풍에 의해 대학사회가 시장화하고 학생들이 무한경쟁에 내몰린 탓에 사회 참여의식이 희박해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기에 총학이 1980년대식 운영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총학의 존폐가 위협받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교수는 “형식적인 민주화는 이뤘지만 학내 민주화를 위한 학생들 스스로의 참여부문을 찾아내야 한다”며 “총학을 학교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기구로 법제화한다면 학생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한국외대 이장희 교수도 “젊은 학생들이 자신의 관리에는 능하지만 공동체나 이웃에 대한 배려는 부족한 상황”이라며 “단순히 ‘취업준비생’들의 자치기구가 아닌, 젊은 지성의 대표라는 인식 없이는 대학 총학의 발전은 요원하다”고 충고했다.

〈장관순·이고은기자 quanso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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