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下)인권 없는 아이들의 미래

2011.03.07 22:11
정유진·박효재·이서화 기자

학부모·학교·사회 ‘침묵의 카르텔’ 反인권적 사회 낳아

[아직도 먼 학생인권](下)인권 없는 아이들의 미래

7일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조례제정본부)에 폭력적 체벌 사건이 접수됐다. 서울의 모 중학교에서 교사가 수업 중 떠들었다는 이유로 학생 3명을 복도로 데리고 나가 빗자루 3개가 부러질 때까지 때렸다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체벌을 전면 금지했지만, 일부 학교에서는 ‘폭력’으로 학생을 통제하려는 구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체벌을 비롯한 학교의 비인권적 문제들이 수십년간 계속된 뒤편에는 학부모-학교-사회의 암묵적 카르텔이 있다고 지적한다. <인권은 대학 가서 배우라고요?>의 저자 김민아씨는 “‘학교는 원래 그래도 되는 공간’이라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이런 생각은 사회에 만연한 ‘학벌주의’ 아래 정당성을 부여받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사랑의 떡메’ 체벌로 물의를 빚은 경기 수원 ㅅ고가 단적인 예다. 이 학교는 수십년간 경악할 만한 ‘전통’을 자랑해왔다. 매년 새 학기가 되면 일부 학부모들이 길이 1m, 넓이 10㎝, 두께 1㎝가량의 떡메에 리본을 달아 “아이를 잘 가르쳐 달라”며 교사에게 전달해온 것이다.

이른바 ‘사랑의 떡메’는 이 학교의 자랑거리였다. 아이를 두들겨 패서라도 성적만은 확실히 올려준다는 ‘전문성’을 상징했다. 교사들은 제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며 ‘떡메 폭력’을 합리화했다. 여기에 “그 학교가 무섭긴 하지만, 공부 하나는 확실히 가르친다더라”는 학부모들의 동조가 있었기에 폭력은 끊이지 않았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들이 ‘학창시절의 안 좋은 추억’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자라난 청소년들은 인권의식 없는 어른이 되고, 인권 없는 사회를 만들어간다.

ㅅ대학 사회체육학과 최모씨는 “체육대학에서는 선배에게 인사를 하지 않거나 선배가 호출한 집합에 지각하면 ‘얼차려’를 주거나 원산폭격을 시킨다. 처음에는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이런 것들을 일종의 필요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질서가 흐트러진다”고 말했다. 학창시절 체벌의 피해자들이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체벌의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최근 문제가 된 전·의경들 사이의 폭력도 ‘체벌의 추억’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있다.

[아직도 먼 학생인권](下)인권 없는 아이들의 미래

학창시절 자치의 가치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학생들은 정치에 무관심한 성인이 되기도 한다. 서울 ㄱ대 법학과 3학년 이모씨(21)는 선거권을 행사할 첫 기회였던 지난해 6·2 지방선거 때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학생회에 참여했는데, 무슨 활동 하나 하려면 선생님을 일일이 찾아가서 사인을 받아야 했어요. 하지만 결국 허락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선거가 중요하긴 하지만, 거기에 투자하는 비용에 비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지 별로 와닿지가 않아요.”

학생 자치는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산 교육이다. 작은 의사결정이라도 스스로 해보는 경험, 공동체 안의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해보는 경험은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진욱 교수는 “학교는 학생들의 인격이나 사회성을 완성해주는 가장 중요한 사회화 기관”이라며 “학창시절 성장기 동안 자신의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성장한 학생들은 사회인이 된 이후 자신의 인권은 물론 타인의 인권에 대해서도 뚜렷한 의식을 갖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특히 학생들이 명령과 복종, 체벌을 통한 위협과 순종에 길들여지면 자신도 그 위치에 놓이게 될 때 타인에게 똑같은 관계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우려했다.

고려대 사회학과 조대엽 교수는 “인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학교에서 훈육하는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보호하라고 명문화해도 잘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체계적인 학생인권 보호장치가 없는 현 상황은 학생들에게는 무방비 상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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