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下) 자율 억압하는 학칙

2011.03.07 22:14 입력 2011.03.07 22:27 수정

‘자치’는 없고 ‘금지’만 수두룩… 외부활동 꿈도 못꿔

[아직도 먼 학생인권](下) 자율 억압하는 학칙

학교의 규칙은 ‘금지’투성이다. 교장의 허락 없이는 어떤 외부활동도 할 수 없고, 학생회 권한은 극히 제한적이다. 복장 규정은 세밀화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지만, 선도 규정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모호하기 그지없다. 서울 ㄷ중학교 학칙을 중심으로 중·고교의 학칙을 분석해봤다.

◇ 학생회 규정 = 이 학교 학칙에 포함된 학생회 규정 1장 5조에는 ‘금지활동’ 항목이 명문화돼 있다. ‘정당 또는 정치적 목적의 사회단체에 가입하거나 정치활동을 할 수 없으며, 학교장의 행정사항에 간여할 수 없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학교장의 행정사항’이라는 것은 범위가 애매하기 때문에 학생회 활동에서 가장 핵심적인 학교의 운영·교육방침에 대한 의견 제시 등을 막아버린 셈이다.

학교가 학생회에 바라는 기능은 ‘심부름꾼’ 수준이다. 7조 학생회의 기능 규정에 따르면, 학생회의 역할은 각종 봉사활동,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한 제반 활동, 취미 신장에 관한 활동 등으로 국한돼 있다. 학생회의 실질적 운영 권한은 교장, 교감, 부장교사 및 학생회 지도교사로 구성된 학생지도위원회가 모두 쥐고 있다. 학칙 4장 21조에 따르면 학생지도위원회는 회칙 재·개정, 예·결산, 학생회 임원 임면, 대의원회 운영에 관한 사항을 담당한다. 학생회가 대의원회 임시회를 소집하려면 미리 안건을 작성해 회의 3일 전까지 학생지도위원회 위원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학생회 예·결산안도 모두 지도위원회 ‘승인’ 사항이다.

[아직도 먼 학생인권](下) 자율 억압하는 학칙

ㄷ중에서 학생회 임원 후보로 등록하려면 교사 10명 이상의 추천서를 받아야 한다. 다른 상당수 학교도 학급 임원 자격에 자의적으로 제한을 두고 있다. 서울 ㅂ고 ㅎ양(17)은 “반장은 전교 석차 30% 이내만 할 수 있다. 선생님께 반장 선거 나가고 싶다고 하면 ‘잠깐만, 네 성적 좀 먼저 보고’라고 말한다”고 했다. 인천 ㄷ고 ㅇ양(16)은 “중학교 때 우리반 반장이 벌점을 많이 받아 임원직을 박탈당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선거운동도 교사의 감시 아래 이뤄진다. ㄷ중의 학생회운영세칙 10조 4항에 따르면 합동연설회 연설문 내용은 2일 전 학생지도위원회에 제출해 ‘심의’를 받아야 한다. 연설문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언급했다가는 후보 자격을 박탈당할 수도 있다.

◇ 학교생활규범 = 학칙에 들어 있는 학교생활규범은 금지규정이 가장 구체적이다. ㄷ중 학교생활규범 3장 1조는 ‘교실에서는 외투를 착용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아무리 추워도 학생들이 교실에서 패딩점퍼나 코트를 입으면 안된다는 얘기다. 또 여학생의 두발에 대해서도 묶는 것은 허용하지만 ‘말아 올려서’ 묶으면 안된다.

특히 5장 19조 ‘집회’ 부분은 학교장 허가 없이 각종 조직·단체에 가입할 수 없으며, 학교 내외를 막론하고 허가 없이는 집회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청소년 인권단체에 가입하거나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한 것이다. 학생들이 학내 문제를 외부에 공론화하는 길도 원천적으로 막혀 있다. 과거 서울 대광고의 강의석군 사례처럼 학교의 종교수업 강요에 반대하며 1인 시위라도 했다가는 학칙에 의거해 징계 대상이 된다.

◇ 학생선도규정 = 각 학교의 학생선도규정에서 징계 단계는 대체로 학내봉사-사회봉사-특별교육이수-전학권고로 이뤄진다. 그러나 징계기준이 타당한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든다. 또 다른 서울 ㄷ중의 선도규정에 따르면, 경찰에 연행돼 훈방되거나 타인을 구타한 학생, 도박을 한 학생은 학내봉사 대상자이다. 그러나 학교장 허락 없이 외부행사에 참가하거나 학교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는 학내봉사보다 높은 징계인 사회봉사를 해야 한다. 보편적인 사회규범을 어긴 학생보다 학교장 ‘허락 없이’ 외부행사에 참가한 것이 더 나쁜 일이 되는 셈이다.

특히 상당수 학교에서 교권을 모독한 사람은 흉기를 사용해 타인에게 상해를 입힌 사람과 같은 전학권고 대상자가 된다. 인터넷에 학교 불만사항을 올리는 것도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경기 부천 ㄱ여고의 ㅇ양(17)은 “학교 선배가 ‘화장실이 더럽다’고 시교육청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는데, 학생주임 선생님이 그 선배가 글을 쓴 것을 알아내고는 지우라고 종용했다”면서 “선배가 글을 지우지 못하겠다고 버티자 교감 선생님까지 나서 ‘지우지 않으면 벌점을 주겠다’고 협박해 선생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문제의 글을 지운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추천기사

기사 읽으면 전시회 초대권을 드려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