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생리대 조사 결과 발표

역학·추가조사 필요성 인정하면서도 성급히 “안전” 결론

2017.09.28 21:54 입력 2017.09.29 13:12 수정

여성질환과 인과관계 안 밝히고 ‘유해물질 위해성’만 조사

화학물질 생활환경 고려 없이 ‘독성 참고치’ 비교도 문제

여성·환경단체 회원들이 28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생리대 안전과 여성 건강을 위한 공동행동’ 출범식을 한 뒤 생리대 모형을 자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여성·환경단체 회원들이 28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생리대 안전과 여성 건강을 위한 공동행동’ 출범식을 한 뒤 생리대 모형을 자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28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일회용 생리대 1차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안전성에서 문제가 확인된 제품은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사용자들이 호소해온 부작용들이 VOCs 때문인지는 애초부터 확실하지 않았다. 소비자들이 요구한 것은 ‘생리대의 안전성’을 확인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식약처는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VOCs 10종을 조사하고 “안전하다”는 결론을 냈다. 심지어 조사 대상 물질 10종 가운데 일부는 ‘생식독성 참고치’가 아닌 다른 장기의 독성 참고치에 따라 위해성 평가를 했다.

■ 역학조사도 하기 전“안전하다”?

식약처는 이날 오전 충북 오송 본부에서 생리대 VOCs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VOCs 10종의 최대 검출량을 기준으로 해도 위해 문제가 확인된 제품은 없었다”고 했다. 조사 대상 10종은 에틸벤젠, 스티렌, 클로로포름, 트리클로로에틸렌, 메틸렌클로라이드, 벤젠, 톨루엔, 자일렌(3종), 헥산, 테트라클로로에틸렌이다. 그러나 사용자들이 호소해온 생리량 감소, 생리주기 변화, 자궁질환이 VOCs 때문인지 인과관계는 드러난 적이 없다. 지난 3월 여성환경연대가 공개한 김만구 강원대 교수의 시험 결과 생리대에서 VOCs가 다량 검출됐다는 연구조사가 나왔을 뿐이었다.

식약처도 스스로 이날 보도자료와 함께 배포한 Q&A에서 “생리대의 VOCs와 생리량의 변화나 생리불순에 대한 명확한 인과관계가 증명된 바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전수조사에 들어가면서 VOCs만을 문제 삼은 것은 식약처였다. 소비자들의 요구는 안전한 생리대를 쓸 수 있도록 대책을 세우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식약처는 김 교수의 연구 결과를 반박하는 데에만 치중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식약처는 앞으로 역학조사와 다른 화학물질에 대한 추가조사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조사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제품이 안전하다고 미리 발표한 셈이다. 식약처는 이번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VOCs 74종의 전수조사·위해성 평가를 이르면 올해 말까지 마치고 농약과 기타 화학물질에 대한 위해성 평가는 내년 5월까지 끝낼 예정이다. 또 사용자들이 호소한 건강 이상의 원인을 밝히기 위한 역학조사를 환경부·질병관리본부와 함께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VOCs 10종에 대한 조사·평가에 한정한 발표를 하면서 식약처는 “사용하셔도 문제가 없다”고 최종적인 결론이 나온 것처럼 설명했다. 이종현 EH R&C 환경보건안전연구소장은 “이번 발표의 가장 큰 문제는 일부 화학물질 평가만 해놓고 ‘제품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 독성 참고치 ‘기준’도 논란

[식약처, 생리대 조사 결과 발표]역학·추가조사 필요성 인정하면서도 성급히 “안전” 결론

식약처의 이번 발표를 ‘생리대 속 VOCs 10종만큼은 인체에 안전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도 논란거리다. 이번 위해성 평가는 생리대에 함유된 VOCs 10종을 입으로 섭취했을 때 흡수한 결과를 미국 환경보호청(EPA) 독성 참고치(인체에 미치는 독성의 정도)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경향신문이 확인한 결과 이번 조사 대상인 에틸벤젠, 스티렌 등 VOCs 10종의 EPA 독성자료 중에는 섭취시의 ‘생식독성 참고치’가 없는 물질이 여럿이다. VOCs 10종 가운데 일부 물질 평가는 생식이 아닌 간 등의 다른 장기에 미치는 독성 참고치가 동원됐다. 즉 몇몇 물질은 생식독성에 대한 평가가 없었는데도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 된다. 식약처는 독성 참고치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시하지 않았다.

독성 전문가들은 특정 장기에 대한 독성 참고치에 대한 기준이 없을 경우, 이미 존재하는 자료를 기준으로 삼아 위해성을 평가한다. 이 자체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문제는 식약처가 방법론적인 한계와 이번 조사의 명확한 의미를 밝히지 않은 채 섣불리 결론을 내린 듯이 발표를 했다는 것이다. 생리대를 둘러싼 논란을 잠재우는 데에 급급했다는 비판이 가시지 않는 이유다.

게다가 ‘생식독성 참고치’가 있는 물질조차도 안전성 우려가 깨끗하게 해소된 것은 아니다. ‘생식독성’은 주로 동물실험 과정에서 모체의 ‘자손’이 건강하게 태어나는지를 기준으로 삼아 수치화한 것이다. 이번 생리대 파문에서 문제가 된 ‘모체의 생식기 건강’에 관한 독성 참고치라고 보기 힘들다.

식약처가 생리대 사용자들의 생활환경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식약처에 따르면 이번 조사에서 일회용 생리대의 안전역은 성분별로 9~626으로 나타났다. 안전역은 노출돼도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기준값보다 얼마나 낮은지를 계산한 것이다. 안전역이 9라면 위험수치의 9분의 1이 검출됐다는 얘기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생리대뿐 아니라 다양한 화학물질에 노출된다. 이종현 소장은 “식약처는 VOCs의 인체흡수량과 독성 참고치를 비교해 1 이상일 경우 안전하다고 했는데, 여러 화학물질에 둘러싸여 있는 환경을 감안하면 적어도 10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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