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차 직전에야 “리프트 고장, 휠체어 이용 불가” 안내방송…“내게 남영역은 없는 역”

2023.01.02 20:44 입력 2023.01.02 20:52 수정

엘리베이터 없는 전철역 이용하는 중증장애인의 고충

한 달째 “부품 없어” 수리 중
리프트·승강기 고장 알림도
차량 내 안내방송 외엔 없어
발 묶일 때마다 “차별 느껴”

전동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인 김동수씨(54)는 지난달 5일 지하철 출근길 서울 1호선 남영역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이번 역은 남영, 남영역입니다.” 낭랑한 안내 방송은 평소보다 한마디를 덧붙였다.

“승강장 리프트 고장으로 역 출구까지 휠체어 이용이 불가합니다. 휠체어 이동 고객은 다음 역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열차가 역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내릴 태세를 마친 시민들은 발 빠르게 하차했다. 그러나 김씨는 내릴 수 없었다. 그는 ‘휠체어 이동 고객’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한 정거장을 지나쳐 1호선 서울역에서 하차했다. 예상치 못한 변수에 평소보다 30분 늦게 회사에 도착했다.

휠체어 리프트 고장으로 김씨 발이 아예 묶인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남영역은 1호선 외대앞역, 7호선 남구로역과 함께 서울 지하철역 중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곳이다. 김씨는 “비장애인들은 계단으로 걸어내려가면 끝이지만 휠체어 장애인들은 아니다”라며 “아예 어딘가를 가지 못할 때 제일 내가 장애인이어서 사회적인 차별을 당한다고 느낀다”고 토로했다.

휠체어를 탄 이들이 남영역을 이용하지 못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남영역 관계자는 통화에서 “수리 업체가 마지막으로 수리를 해보고 작동이 안 됐던 게 11월30일”이라고 했다. 2일 현재 리프트에는 수리 예정일이 오는 31일로 공지돼 있다. 남영역 관계자는 “필요한 부품이 아직 조달이 안 돼서 수리를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 김씨의 출퇴근길은 험난해졌다. 그의 직장은 남영역에서 전동휠체어로 5분 거리다. 하지만 최근에는 삼각지역에서 내려 전동휠체어로 20~30분 가야 한다.

안내방송 이외에 휠체어 이용자들이 리프트·승강기 고장 사실을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다. 김씨는 자주 이용하는 역의 역무원에게 ‘고장이 나면 연락 달라’고 미리 부탁해 안내 문자를 받아본 적 있다고 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고장 정보를 알리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 계정 공지 등은 없다.

휠체어 이용자들은 지하철 리프트나 승강기 고장으로 이동권이 제한되는 건 너무 비일비재한 일이라 말한다. 남영역 인근에 거주하는 윤두선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 대표는 “나에게 남영역은 없는 역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리프트 고장이 워낙 잦아 집 바로 근처인데도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 대표는 용산구·서울시·코레일에 근본적인 해결책인 승강기 설치를 촉구해왔다.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와 용산시민연대는 남영역에 엘리베이터와 남쪽 출구를 신설할 것을 2021년부터 요구했다. 이원영 용산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작년 가을쯤 코레일 담당자로부터 예산 편성과 관련해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고, 용산구청에서도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했다”고 했다. 국가철도공단 관계자는 “아직 용산구청과 협의 중인 사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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