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1명당 환자 5명’ 강제한 법, 변화의 시작이었다

2023.07.10 14:49 입력 2023.07.10 17:28 수정

1999년 캘리포니아 ‘안전 인력법’ 제정

간호사 대 환자 수, ‘1대 5’ 명시

“간호사 처우 개선 + 환자 안전 보장”

보건의료노조, 13일 총파업 예고

세네이 트리운포-코르테스 미국 간호사노조연맹(NNU) 위원장이 지난해 11월29일 경기도 양평 블룸비스타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보건의료노조 정책대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제공

세네이 트리운포-코르테스 미국 간호사노조연맹(NNU) 위원장이 지난해 11월29일 경기도 양평 블룸비스타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보건의료노조 정책대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제공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간호사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는 문제가 사회적 화두였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10일 서울 영등포구 노조 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오는 13일 총파업’을 선언하면서 “간호사 1명이 돌보는 적정 환자 수를 5명으로 정하고, 이를 법에 명시하라”고 요구했다. 노조는 이를 통해 간호사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환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간호사 1명당 적정환자 5명은 어떻게 나온 수치일까. 노조는 간호사 최소 인력배치 기준을 담은(내·외과계 기준, 간호사 1명당 환자 수 5명)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안전 인력법’(Safe Staffing Laws)을 모델로 삼았다.

경향신문은 지난 7~9일 e메일로 세네이 트리운포-코르테스 미국 간호사노조연맹(NNU) 위원장에게 캘리포니아 모델에 관해 물었다. 필리핀계 미국인인 트리운포-코르테스 위원장은 현재 남부 샌프란시스코 카이저 퍼머넌트 메디컬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1980년 NNU에서 활동을 시작해 2007년부터 위원장을 맡았다.

트리운포-코르테스 위원장은 “미국에선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의료 비용 통제를 목표로 한 ‘관리 의료’(Managed care) 제도로 다면적인 문제가 발생했다”면서 “간호사들은 인력 부족으로 종종 과로와 부상에 시달렸고 이는 의료사고나 합병증 유발 등을 포함해 환자 치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이어 “직장 내 폭력, 직업상 부상과 질병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고자 ‘안전 인력법’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초반 캘리포니아 간호사연합(CNA)을 중심으로 법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1999년 ‘안전 인력법’이 제정(2004년 시행)됐다. 미국의 첫 사례였고 기준도 강력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간호인력 근무여건 분석 및 개선방안 연구’(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이 법률에 따라 캘리포니아 의료기관 중환자실에선 간호사 1명이 환자 2명을 돌본다. 외상 응급환자의 경우 간호사 1명이 환자 1명을 전담한다. 소수 병실을 제외하고 간호사 1명이 돌보는 환자 수가 5명을 넘지 않는다.

트리운포-코르테스 위원장은 “환자에 지속적인 관심, 간호사의 실수 방지 등을 위해 5명을 최소인력 배치 표준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법 제정의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에서 1999년 법 제정 이후 등록 간호사(RN)의 수는 연간 3000명에서 1만명 수준으로 늘었다. 2004년 법이 시행된 이후 캘리포니아 주도인 새크라멘토의 주요 병원의 간호사 공석 비율이 69%나 감소했다.

트리운포-코르테스 위원장은 “개인 맞춤형 간호가 가능해지면서 환자의 만족도가 올라가고 환자의 합병증 발병률 감소, 입원기간 단축 등의 효과를 냈다는 연구결과들이 잇따라 나왔다”고 전했다. 그는 “펜실베이니아대 간호대학 연구팀의 2021년 연구를 보면, 만약 뉴욕주 116개 의료기관(간호사 대 환자 비율 4.3~10.5, 평균 6.3)에서 캘리포니아와 유사한 인력 배치(1대 4) 기준이 있었다면 연구기간(2019년 12월16일~2020년 2월24일) 최소 4370명의 생명을 구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고 말했다.

병원의 수익에 영향을 줄까. 트리운포-코르테스 위원장은 “캘리포니아 병원 업계에선 ‘안전 인력법’을 만들면 병원이 폐원할 수 있고, 수익 감소를 불러올 수 있다고 주장했었지만 이 법으로 인해 병원이 폐원한다는 근거를 찾지 못했고, 실제 법 시행 후 5년 동안 지역 병원들의 총 순이익은 2배로 늘었다”고 말했다. 벌금(2만5000달러·약 3260만원) 수준이 높기도 하지만, 사회적 지지 속에 의료기관의 인력배치 기준 준수율은 매우 높은 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간호사들은 1인당 16.3명의 환자를, 병원급 간호사들은 43.6명의 환자를 담당하고 있다. 의료법 시행규칙에는 병원급 이상에선 간호사 1명당 ‘연평균 1일 입원환자를 2.5명으로 나눈 수’까지 담당하도록 정해놓고 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앞서 정부도 지난 4월25일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정책 목표로 간호사 대 환자 비율 ‘1대 5’를 제시했으나, 아직 법으로 보장하진 않고 있다. 노조 측은 실효성 있는 법제화를 촉구한다.

트리운포-코르테스 위원장은 “NNU는 간호사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환자들이 적절한 간호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간호사 배치기준 법을 만들고자 하는 한국의 간호사들과도 연대한다”고 했다.

10일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에서 나순자 위원장 등이 참여한 가운데 오는 13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7일까지 127개 지부, 145개 사업장 6만4천257명의 조합원을 대상으로 벌인 파업 찬반 투표한 결과, 투표율 83.07%(5만3380명), 찬성률 91.63%(4만8911명)로 파업이 가결돼 13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이준헌 기자

10일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에서 나순자 위원장 등이 참여한 가운데 오는 13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7일까지 127개 지부, 145개 사업장 6만4천257명의 조합원을 대상으로 벌인 파업 찬반 투표한 결과, 투표율 83.07%(5만3380명), 찬성률 91.63%(4만8911명)로 파업이 가결돼 13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이준헌 기자

보건의료노조는 10일 기자회견에서 “필수의료 분야를 제외하고 7월13일 오전 7시를 기해 전면 총파업 투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간호사 대 환자 수 1대 5명 법제화’ 이외에도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확대, 보건의료인력 확충, 공공의료 확충 및 감염병 전담병원 회복기 지원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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