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휴진 첫날 서울대병원 분위기는…환자는 ‘불안’, 의료진은 정부 ‘규탄’

2024.06.17 13:34 입력 2024.06.17 19:13 수정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무기한 휴직을 시작한 1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 휴진 철회 촉구 성명이 붙어있다. 정효진 기자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무기한 휴직을 시작한 1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 휴진 철회 촉구 성명이 붙어있다. 정효진 기자

“다른 병원으로 옮길 수도 없는데, 장기화될까봐 걱정이죠.”

1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송희곤씨(62)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협심증을 앓고 있는 송씨는 얼마 전 병원 측으로부터 문자메시지를 통해 예약 일정과 담당 교수 변경을 통보 받았다. 다행히 이날은 진료를 볼 수 있었지만, 예측할 수 없는 앞으로가 걱정이다. 송씨는 “개인병원이나 다른 병원에 갈 수도 없다”며 “다음에도 (예약이) 연기될 수 있고, 몸 상태가 더 나빠질 수도 있어서 걱정”이라고 전했다.

서울대병원 일부 교수들이 이날부터 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강남센터 등 4개 병원에서 집단휴진에 돌입했다. 병원 전체가 멈춰설 정도의 큰 혼란은 없었지만, 일부 병동은 환자 없이 텅 비었고 어렵게 진료를 받은 환자들은 사태 장기화로 의료공백이 길어질까 불안해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서울의대 비대위)는 진료를 보는 전체 교수들 중 약 절반 정도가 이번주에 진료 및 수술을 휴진·축소·연기한 것으로 파악했다. 수술장 가동률은 기존 62.7%에서 33.5%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오는 18일 휴진과 전국의사 총궐기대회를 예고한 대한의사협회(의협) 집행부에 집단행동 금지 명령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복지부는 지난 14일 임현택 의협 회장 등 집행부 17명을 상대로 공문을 발송해 “집단행동 하지 말아주시고, 집단행동 교사 역시 삼가달라”는 내용을 전달했다.

혈액암 치료를 위해 거의 매주 서울대병원에 오고 있는 김정희씨(79)는 “우리는 나이가 있어서 치료를 받아도 시원찮은데, 걱정된다”면서 “병원 진료가 차질 없이 잘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김씨는 다른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여러 번 병원을 옮긴 끝에 서울대병원에 오게 됐다. 그는 “다른 데로 갈 수가 없다”면서 “손 놓고 기다릴 수도 없다”라고 말했다.

당뇨병으로 2007년부터 서울대병원에 다니고 있다는 이모씨(69)는 “오늘도 진료가 안된다고 할까봐 엄청 걱정했다”면서 “병원이 환자는 생각 안하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날 병원에는 예약된 환자들이 진료를 받긴 했지만, 평소보다 현저히 적은 수준이라고 환자들은 전했다. 이씨는 “원래 이 시간이면 병원이 엄청 꽉 차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한가한 편”이라면서 “신규 환자는 안 보는 것 같다. 보통은 2배는 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남편의 방광암 때문에 부산에서 5년째 서울대병원에 오고 있다는 이창희씨(63)는 “지방에서 오는데 진료를 못 받으면 어쩌나 걱정돼서 미리 확인해봤다”며 “걱정 안 되는 사람이 어딨겠냐”고 했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무기한 휴직을 시작한 1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융합관에서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 관계자, 전공의 등이 휴진 결의 집회를 열고 있다. 정효진 기자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무기한 휴직을 시작한 1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융합관에서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 관계자, 전공의 등이 휴진 결의 집회를 열고 있다. 정효진 기자

이날 오전 서울의대 비대위 교수들은 서울대병원 양윤선홀에서 집회를 열고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 추진을 규탄했다. 교수들은 이 자리에서 급한 환자들은 계속해서 볼 것이라며 “서울대병원은 열려있다”고 했다. 강희경 비대위원장은 “교수들은 계속 근무를 하고 있다. 병원에 오시면 진료 받으실 수 있다”면서 “걱정하지 말고 환자분들이 오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비대위는 이날 “이미 의료 붕괴가 시작됐는데 정부가 귀를 막고 도대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마지막 카드는 전면휴진밖에 없다”고 휴진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방재승 비대위 투쟁위원장은 정부를 향해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 취소, 현장 의견 반영이 가능한 상설 의·정 협의체 구성, 의대 정원 재조정 등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끝까지 안 들어주면 서울의대 교수로서 할 수 있는 건 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그 시점에 휴진을 철회하고 항복 선언을 해야겠지만, 모든 의료 붕괴 책임은 정부에 있으니 정부가 책임지라 하고 환자 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전했다.

전공의와 의대생들도 이날 현장에 참석해 피켓 시위와 자유 발언에 동참했다. 박재일 서울대병원 전공의 대표는 “의사 입맛에 맞는 정책을 발표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국민들을 위한 정책이 나와야 하고, 국민들에 도움 되는 의료정책을 세워야한다”고 말했다. 김민호 서울의대 학생회장은 “(정부는) 무조건 안 된다고 할 게 아니라 왜 학생들이 목소리 내는지 들여다봐야 한다”면서 “근거없는 의료정책 때문에 미래 의료가 무너질까봐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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