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과격해지기도 전에 ‘경찰특공대 투입’ 결정

2009.01.21 18:17

진압 전날 오전9시 ‘출동지시’ 문건 확인
경찰 “오후7시 회의서 결정” 발표와 달라

서울 용산 철거민 진압 과정에서 경찰이 철거민들이 농성을 시작한 지 3시간30분 만에 경찰특공대 출동을 결정한 것으로 21일 밝혀졌다. 특공대 투입은 ‘도심 테러에 대응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경찰의 설명과 배치된다. 경찰이 자체적으로 세운 안전수칙도 지키지 않는 등 무리한 진압 작전을 펼쳐 인명피해를 키운 정황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b>문건과 진실</b> 민주당 김유정 의원이 21일 공개한 경찰의 상황보고 문건. 19일 오전 5시30분 철거민 농성 시작 3시간반 만인 오전 9시에 경찰특공대 2개 제대 출동지시를 내렸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문건과 진실 민주당 김유정 의원이 21일 공개한 경찰의 상황보고 문건. 19일 오전 5시30분 철거민 농성 시작 3시간반 만인 오전 9시에 경찰특공대 2개 제대 출동지시를 내렸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 농성시작 직후 경찰특공대 출동지시=21일 민주당 김유정 의원이 경찰로부터 제출받은 ‘용산 4구역 관련 상황 보고’ 문건에 따르면 경찰은 19일 오전 9시, 낮 12시55분, 오후 2시 등 세 차례에 걸쳐 용산 재개발 4구역에 경찰특공대 2개 제대(1개 제대는 3팀 총 20여명)를 출동준비시켰다. 오후 2시에는 현장 배치를 끝마쳤다.

철거민들이 용산 한강로 남일당 건물에서 농성을 시작한 시각은 이날 오전 5시30분. 농성 3시간30분 만에 대테러 진압용 특수부대 출동이 결정된 것이다. 김 의원은 “철거민들의 화염병·쇠구슬 등 ‘과격 시위’보다 경찰의 ‘특공대 투입지시’가 먼저 이뤄졌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 20일 참사 발생 후 “19일 오후 7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이 주재한 회의를 통해 경찰특공대 투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일찌감치 경찰특공대 출동을 지시해놓고도 거짓 설명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김석기 청장은 이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출석해 “투입에 대비, 현장답사 차원으로 나갔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경찰이 진압작전에 따른 위험성을 충분히 예측하고 안전수칙을 세웠으나 실제 진압 작전에서는 무시됐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김 의원이 확보한 경찰 진입계획서 작전계획에는 ‘철거민들이 20ℓ짜리 시너 60여개, 화염병 5박스 등을 보유’ ‘분신, 투신, 자해 등 극단적 돌출 행동 우려’ 등이 명시돼 있다. 이에 대비해 경찰은 건물하단에 에어매트와 그물망, 안전 매트리스를 설치하고 소방차 6대와 소방고가사다리차 2대 등을 확보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경찰특공대가 농성장에 투입될 당시 현장에는 소방차 2대와 구급차 1대 등이 전부였고 에어매트나 그물망은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았다.

충분한 대비가 없었지만 경찰은 작전을 강행했다. 물 위에서 더욱 번지는 특성을 갖고 있는 시너에 불이 붙었지만 물대포를 계속 쐈다. 또 컨테이너로 경찰특공대 진입을 시도해 더 큰 화를 자초했다.

밀폐된 망루 안에 있던 철거민들은 화재 발생후 대피가 어려웠다고 주장했다. 중화상으로 입원 중인 이모씨(37)는 “아래에서는 계속 경찰들이 올라왔고, 창문으로는 물대포가 쏟아져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4층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문이 폐쇄돼 있었지만 추락에 대비한 안전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필수장비인 에어 매트리스도 충분하지 않았다. 목격자 조모씨(33)는 “두께 20~30㎝ 정도되는 직사각형 매트리스가 있었지만 듬성듬성 설치돼 있어 몹시 위험해 보였다”고 말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김수정 차장은 “처음부터 깔려고 시도를 하다 화염병 때문에 제거했다”며 “나중에 절반 정도만 깔았다”고 말했다.

<b>애도와 분노</b> 21일 서울 용산 철거민 진압 참사 현장에서 한 철거민이 건물 가림막 위에 애도의 국화를 헌화하고 있다. |김영민기자

애도와 분노 21일 서울 용산 철거민 진압 참사 현장에서 한 철거민이 건물 가림막 위에 애도의 국화를 헌화하고 있다. |김영민기자

◇ 남아있는 의혹들=가장 큰 관심은 화재발생 원인이다. 용산경찰서 백동산 서장은 “망루에 있던 시위대들의 화염병 투척 및 시너 사용으로 화재가 발생했다”며 “농성자들이 시너를 통째로 뿌리고 화염병을 던졌다”고 밝혔다. 이는 철거민들의 의견과 상반된다. 철거민들은 “경찰특공대 진입과 동시에 화재가 발생했다. 화염병으로 인한 화재는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검찰 정병두 수사본부장(서울중앙지검 1차장)도 “진술만으로 화재 원인이 어떻다고 할 수는 없다”며 “발화점이 어디냐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특공대 컨테이너로 인해 철거민들의 피해가 더 커졌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용산세입자대책위가 촬영한 동영상에는 경찰 컨테이너가 망루 위에 내려앉는 모습이 찍혀있다. 대책위 탁문옥 부위원장은 “이 때문에 컨테이너 무게로 망루가 기울어 아래편 출입문이 막혔을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물대포를 쏘니 불이 났어도 출구가 막혀 사람들이 탈출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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