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생명을 앗아가고도 시위대 책임이라니

2009.01.21 23:39

‘용산 참사’에 대한 여권의 대응이 결국 곁길로 새는 모양이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정부 입장’을 통해 사죄 아닌 유감을 표시하면서 “불법 폭력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어느 누구에 의한 것이라도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시위대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그러더니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 사이에 “도심 테러의 성격” “외부세력 개입 주시” “가짜 철거민” 등의 막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음습한 공안통치의 그림자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한두 사람의 문제가 아닌 듯싶다. 여권 내 교감 흔적이 짙다. 참사 당일 책임자의 즉각 사퇴를 촉구한 홍준표 원내대표를 배제한 채 주요 당직자회의를 개최한 게 일례다. 회의에서 뉴라이트 운동가 출신이라는 신지호 의원은 ‘누가 왜 화염병을 던졌는가가 사고의 열쇠’라고 주장했다. 과잉 진압이 없었는데 화염병이 날아다녔다는 얘기인가. 망발이다. 다른 참석자들도 시위의 불법·폭력성, 배후론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 게다가 지도부가 참사와 관련한 TV 토론회 불참을 지시하는 등 입단속에 나섰다니 그런 의구심이 커지는 건 당연하다.

시위대의 책임이라니 몇가지 묻고자 한다. 유사 사태가 발생하면 사람의 목숨이야 어찌됐든 다시 강경 진압을 하겠다는 것인가. 외부인이 끼었다는 이유로 생존권 투쟁의 정당성마저 사라지는 것인가. 법치는 국민의 생명 보호를 우선하는 가치인가. 우리는 현 정권의 행보가 지난해 촛불정국 때 두 차례나 대국민사과를 하고도 궁극엔 돌아서서 강권정치를 펴온 전철이라도 밟으려는 것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경찰이 추모 집회에 참석한 20대 여성과 조사차 사고 현장에 들른 국회의원까지 폭행한 걸 보면 더욱 그런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여권이 무슨 꿍꿍이를 부려도 용산 참사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본란에서 지적했듯이 불도저 정권의 밀어붙이기가 빚은 참사이고, 책임은 오롯이 정권의 몫이다. 소속 의원들의 입은 틀어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성난 민심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본질을 외면한 대응은 화만 키울 뿐이다. 여권이 주장하는 ‘선 진상규명, 후 책임자 처벌’을 두고 정권의 책임을 희석시키기 위한 시간벌기라는 비난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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