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유통구조와 ‘눈덩이 보조금’이 휴대폰 사기의 근원

2012.11.01 21:58

개통 소개비 벌려다 요금폭탄 등 서민 피해 급증

최모씨(30)는 지난해 12월 ‘휴대폰 보조금 다단계 사기’에 걸려 들었다. 최씨는 당시 직장동료로부터 “휴대폰 개통에 필요한 명의를 빌려주면 1대당 15만원을 주는 업체가 있다”며 “3대를 개통하면 5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동료의 말을 믿은 최씨는 업체 대표의 신분증과 책임을 지겠다는 각서를 보고 휴대폰 2대를 개통했다. 업체 관계자는 “휴대폰 요금은 계좌로 미리 넣어주고 6개월 뒤에는 해지해줄 것”이라며 “휴대폰은 그대로 두었다가 6개월 뒤에 중고폰으로 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주변 사람들을 소개해주면 3대 개통할 때 직접 소개한 사람에게는 10만원, 그 전 단계 사람에게는 5만원을 주겠다”고도 말했다. 일종의 다단계 방식이었다.

최씨는 생활고를 겪고 있는 오빠에게 업체를 소개해줬다. 최씨의 오빠와 올케는 각 3대를 개통해 업체로부터 100만원을 받았다. 최씨는 가족과 생활이 어려운 지인들 10여명에게 업체를 소개했다. 최씨의 오빠도 자신의 친한 친구에게 업체를 소개했다. 그런데 3개월이 지난 올 4월쯤부터 최씨와 최씨가 소개한 지인들에게 휴대폰 요금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소액결제, 국제통화료 등으로 휴대폰 한 대당 1200만원이 넘는 요금이 나오는 경우까지 있었다. 최씨의 지인들이 지급해야 하는 요금은 현재까지 총 7000만원이 넘는다. 최씨는 “이 일로 사이가 멀어진 친구도 있다”며 “도와주겠다고 시작한 일이 이렇게 틀어졌다. 오빠 가족이랑 친구들은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 하는데 요금이 너무 많이 나와 막막하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이 사건 피해자들을 모집한 업체의 지역센터장 김모씨(46) 등 6명을 사기 혐의로 수사 중이다. 경찰이 현재까지 집계한 피해자만 745명에 피해액은 32억원이 넘는다. 피해자들은 폐지를 모아 생활하는 70대 노인, 난치병을 앓고 있는 기초생활수급자, 보증을 잘못 서 빚에 시달리는 택시기사 등 단돈 수십만원이 급했던 서민들이 대부분이다. 피해자들은 통신사들이 막대한 요금을 추심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복잡한 유통구조와 ‘눈덩이 보조금’이 휴대폰 사기의 근원

▲ 다단계·대출 스팸문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기
대포폰으로 범죄에 악용도

▲ 개통할 때 본인 확인절차
좀 더 면밀하게 이뤄져야

휴대폰 보조금을 악용한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수법도 다양하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달 16일 대출업체를 사칭해 2100명에게 휴대폰을 개통시키고 통신사 보조금과 휴대폰을 판 돈으로 35억원을 챙긴 최모씨(42) 등 19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저금리 신용대출 가능합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피해자들에게 보낸 뒤, 문자를 보고 전화한 이들에게 대출에 필요하다며 휴대폰을 개통시켰다. 그러나 이들은 피해자들에게 대출은 해주지 않고 휴대폰 개통에 필요한 명의만 도용했다. 이들은 통신사로부터는 휴대폰 개통시 지급되는 보조금을 받은 뒤, 개통한 휴대폰의 유심칩을 제거해 용산전자상가 등에 팔아 이중으로 돈을 챙겼다. 이 사건의 피해자들도 일반 금융권에서 대출이 되지 않는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도 지난 11일 가상으로 휴대폰을 개통해주면 현금 15만원을 주겠다며 700여대를 개통해 통신사 보조금과 휴대폰 판매금으로 5억원을 챙긴 장모씨(26) 등 22명을 검거했다.

복잡한 유통구조와 ‘눈덩이 보조금’이 휴대폰 사기의 근원

방송통신위원회의 통계를 보면 휴대폰 명의도용은 2010년 1만3528건, 2011년 1만4545건, 올해 상반기 9455건으로 급증하고 있다. 피해액은 각각 23억7000만원, 16억6000만원, 11억3000만원에 이른다. 이 피해액은 방통위에 신고한 것만 집계한 것으로 신고되지 않은 것까지 감안하면 실제 피해액은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휴대폰이 사기에 악용되는 것은 비싼 휴대폰 가격과 지나치게 많은 보조금 때문이다. 휴대폰을 개통하기만 하면 휴대폰 가격 이상의 보조금이 지급되기도 한다. 한 통신사 대리점 관계자는 “지난달 9일 출고가가 99만원인 ‘갤럭시S3’의 보조금이 100만원까지 나왔다”며 “최소 2년에 한 번 꼴로 기기 값보다 더 많은 보조금이 나오고 이때 ‘폰테크’를 한다”고 말했다. 폰테크는 보조금이 많이 나와 휴대폰 가격이 쌀 때 휴대폰을 샀다가 보조금이 떨어지면 중고로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범죄자들은 개통에 필요한 명의만 있으면 많은 보조금도 받고 중고로 휴대폰도 팔아 2중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구조를 파고든다. 이 때문에 기기 값이 비싸고 많은 보조금이 지급되는 최신 스마트폰이 주로 범죄에 이용된다. 이렇게 판매된 휴대폰은 대포폰으로 범죄에 악용되기도 한다. 휴대폰 보조금 다단계 사기에 피해를 입은 최모씨(49)는 “지난 4월 경찰관이 사기 혐의로 수배 중인 현상수배범 사진을 들고 나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최씨의 명의를 도용해 개통한 휴대폰이 사기에 악용된 것이다. 최씨는 지난 5일에도 대구의 한 경찰서에서 사기 혐의로 출석요구서를 받기도 했다.

휴대폰 사기가 급증하자 시민들이 직접 대책 마련에 나섰다. 휴대폰 사기 피해자들의 모임인 스마트폰피해대책위원회는 통신3사를 대상으로 사기를 통해 부과된 요금을 내지 않도록 해달라는 채무부존재 소송과 미납요금 추징을 멈추고 신용등급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해달라는 효력정지가처분 소송을 진행 중이다. 피해대책위원회 김순환 자문위원장은 “명의도용이 올해만 벌써 1만건에 이른다. 휴대폰 사기는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문제”라며 “방통위와 통신3사는 이 문제에 책임을 지고 보조금 제도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휴대폰 보조금 제도는 크게 악용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며 “휴대폰을 개통할 때 본인 확인절차 등이 좀 더 면밀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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