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보도 ‘세상 속으로’

피해 유족 심리치료·생계비 보조 위해 지원센터 전문화·기금 확충을

2013.05.17 22:26 입력 2013.05.18 10:14 수정

유족구조금 상향 조정 불구 지급조건 까다로워 수혜자 적어, 그마저도 대부분 1회성 지원…제도적 장치 개선해야

정부는 살인피해 유족의 피해회복을 위해 범죄피해구조금 지급, 심리치료 및 치료비 지원, 주거 지원 등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규모가 크지 않은 데다 지급조건이 까다롭고 홍보도 부족해 유족들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수준에는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대부분이 1회성 지원에 그치고 있다. 사건 발생 현장에서부터 유족에 대한 전문적·체계적 보호와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범죄피해자를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2004년 전국 57개 검찰청 내에 정부보조금을 받는 민간단체인 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설립됐지만 예산과 인력, 전문성 부족으로 제 기능을 폭넓게 수행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경식 강릉원주대 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범죄피해자에 대한 관심과 사회적 책임의식이 굉장히 부족하다”며 “미국 대통령들이 매년 4월 넷째주 범죄피해자인권주간에 맞춰 특별담화를 발표하듯이 박근혜 대통령도 범죄피해자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보호와 강력한 지원 의지를 11월 범죄피해자인권대회 등을 통해 천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친족범죄 피해자는 제외…사망사건 57%만 지급

2011년부터 실시된 범죄피해자보호기금법 및 범죄피해자보호법 등의 영향으로 범죄피해구조금 지급액이 상당부분 증가했다. 구조금 중 살인피해 유족이 받을 수 있는 유족구조금도 상향조정됐다. 그러나 까다로운 지급조건과 홍보 부족으로 실제 수혜를 받는 유족은 절반수준에 불과하다. 2011년의 경우 미수를 제외하고 실제로 피해자가 사망한 사건이 427건 발생했지만 유족구조금이 지급된 건 242건(57%)이었다. 범죄자가 친족관계이면 지급대상이 아니어서 상당수가 제외되기 때문이다. 친족을 대상으로 한 살인범죄(2011년 기준 23%)가 모르는 사람에 대한 범죄(25.1%) 다음으로 많은 현실을 감안하면 실효성이 의문이다.

지난 10년 새 흉악범(사형수)들에게 희생당한 피해자 유족에게 보상금으로 지급된 액수는 3억원이었던 반면 같은 기간 이들 흉악범을 교도소에 가둬놓고 관리하는 데 소요된 비용은 255억원이었다. 2004년 7월 검거된 연쇄살인범 유영철(왼쪽)과 2008년 3월22일 혜진엄마 등 살인피해 유족이 현장검증을 하는 범인 정성현에게 달려들며 거칠게 항의하다 경찰에 제지당하는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난 10년 새 흉악범(사형수)들에게 희생당한 피해자 유족에게 보상금으로 지급된 액수는 3억원이었던 반면 같은 기간 이들 흉악범을 교도소에 가둬놓고 관리하는 데 소요된 비용은 255억원이었다. 2004년 7월 검거된 연쇄살인범 유영철(왼쪽)과 2008년 3월22일 혜진엄마 등 살인피해 유족이 현장검증을 하는 범인 정성현에게 달려들며 거칠게 항의하다 경찰에 제지당하는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급액은 피해자의 월수입이나 실수입액, 월평균임금 등을 기준으로 부양가족 유무와 유족 수에 따라 각각 다른 개월수와 배수를 적용해 산출한다. 2013년 월평균임금을 기준으로 할 때 유족구조금은 최저 537만5238원부터 최고 6450만2856원까지 차등 지급된다. 최고액을 받는 경우는 배우자(사실혼 배우자 포함)가 있는 경우이고 범죄피해 당시 월수입이 215만95원 이상일 때다. 최저액을 받는 경우는 유족으로 배우자나 자녀 없이 손자·손녀·조부모·형제자매가 있고 사망한 피해자의 월수입이 월평균임금에 미치지 못하거나 직업이 없는 경우다.

하지만 이마저도 이전 살인사건피해 유족의 경우엔 해당되지 않는다. 특히 2000년대 중후반 연쇄살인을 저지르다 검거된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 등에게 가족을 잃은 유족들에게 지급된 금액은 유족당 1000만원이 전부였다. 그것도 재산이 없어 생계 곤란을 겪는 경우에만 지급됐다. 살인범죄로 정신적 공황과 함께 경제적 파탄을 맞는 가정이 대다수이지만, 이들에 대한 보상은 거의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형사정책연구원 김지선 박사는 “기간이 명시돼 있는 범죄피해구조금이 아니더라도 법무부가 의지를 갖고 범죄피해자보호기금에서 별도 사업을 개발해 지원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살인피해 유족에 대한 이 같은 열악한 처우는 살인범죄로 투옥된 수형자에 대한 지원 규모와 비교해도 형평성에 어긋난다. 박민식 의원실(새누리당)에 따르면 지난 10년 새 유영철, 정남규 등 흉악범들(사형수)에게 희생당한 피해자 유족에게 보상금으로 지급된 액수는 3억원에 불과했다. 반면 같은 기간 이들 흉악범을 교도소에 가둬놓고 관리하는 데 소요된 비용은 255억원이었다. 인권보장이라는 기치 아래 수형자에 대한 인권과 복지는 꾸준히 개선돼온 반면, 범죄피해자들의 인권과 복지에 대해선 소홀했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유족구조금을 비롯한 범죄피해구조금의 상향조정을 위해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을 늘려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의 재원은 벌금 수납금의 5%다. 그나마 벌금 집행유예제 도입, 사회봉사명령 활성화 등으로 인해 벌금 수납금은 2009년 1조4656억원에서 2011년 1조2619억원으로 감소했다. 박민식 의원은 지난해 말 기금을 벌금 수납금의 10%로 확대하는 개정안을 냈고 이 법안은 현재 법사위 소위에 계류 중이다.

기금 신설 과정에서 여성가족부에서 일반예산으로 추진하던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한 지원 예산이 기금으로 대거 이관됨에 따라 강력범죄 피해자에 대한 지원은 여전히 미미한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오경식 교수는 “기금 신설 전 여성가족부와 법무부에서 일반예산으로 집행하던 사업을 기금예산으로 전용하면서 예산 부족과 함께 범죄피해자 지원에 있어 불평등이 초래되고 있다”며 “이 같은 구조적 모순을 시정하기 위해서는 일반예산에서 기금예산으로 바뀐 예산을 다시 일반예산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기금예산의 71.6%는 성폭력·가정폭력 범죄피해자 지원 예산으로 반영됐다. 그에 비해 살인·방화 등의 다른 범죄피해자 보호 예산은 26.8%에 불과하다.

[탐사보도 ‘세상 속으로’]피해 유족 심리치료·생계비 보조 위해 지원센터 전문화·기금 확충을

■ 강력범죄 발생 초기부터 피해자 심리 지원 필요

교정시설 수용자들이 교도작업을 통해 얻는 수익의 일부를 범죄피해자 보호에 써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영미와 유럽의 경우 수용자의 교도작업 수익 중 일부(국가에 따라 10~30%)를 범죄피해자 보호 및 지원을 위한 기금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이는 수형자에게는 피해자 측에 죗값을 어느 정도 배상하는 의미도 있어 교정면에서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살인피해 유족의 정신적 충격이 크고 그 후유증이 장기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므로 이들에 대한 지속적·전문적 심리치료 지원이 무엇보다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를 반영해 법무부는 지난 2010년 범죄피해자의 심리치료를 위한 스마일센터를 서울과 부산에 열어 위탁운영을 맡겼다. 올해 인천과 광주에도 각각 1개소씩 문을 열 계획이다. 그러나 이 정도 시설로 전국적 지원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경찰청도 강력범죄 발생 초기부터 범죄피해자에 대한 적극적 심리 지원을 위해 2007년부터 피해자심리 전문요원(일명 케어팀)을 특별채용해 각 지방청 강력계에 배치했다. 그러나 2010년 10월 이들이 소속된 인권보호센터가 수사국에서 청문감사관실로 이관되면서 케어팀도 함께 자리를 옮겼고 그 결과 기동성·접근성이 떨어졌다. 종전에는 강력범죄가 발생하면 형사들과 함께 즉각적으로 현장에 출동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역할에도 변화가 생겼다. 억울한 피해를 입은 민원인, 이주여성 등에 대한 상담·지원 등의 역할까지 맡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강력범죄 피해자 지원 역할이 약화됐다.

한편 법무부는 치료비 항목을 편성해 강력 범죄로 인해 정신적·신체적 치료를 받는 경우에 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에 대한 올해 예산은 11억원이다.

■ 여성·아동폭력과 통합, 원스톱지원센터 만들어야

전국 57개 검찰청을 중심으로 설립돼 있는 범죄피해자센터(1577-1295)는 법무부 지원을 받는 민간단체로 피해자를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2004년 설립됐다. 범죄현장 정리 및 청소부터 치료비와 심리치유, 생계비 보조 등의 지원까지 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으나 예산과 인력, 전문성 부족으로 기대치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심리 지원을 위한 전문 지식과 경험을 갖춘 이들이 극히 드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또 대부분의 센터가 검찰 내부에 설치됨으로써 피해자들이 이용하기를 두려워한다는 지적과 함께 경찰의 협조를 얻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지선 박사는 “자생적으로 생긴 민간단체가 아니라 검찰 주도로 6개월 내 한꺼번에 설립되다보니 경찰과의 관계가 만족스럽지 못한 게 사실”이라며 “센터가 검찰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생력을 키우고 경찰청과의 연대를 통해 수사 초기부터 긴급구조활동을 벌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범죄피해자 지원 민간단체인 한국피해자지원협회(1577-9517)는 올해 경기도 지역을 시작으로 살인피해 유족에 대한 심리적·정서적 지원활동을 위해 찾아가는 서비스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신의진 의원(새누리당)은 “성폭력 및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한 신체적·정신적 지원에 비해 강력범죄 피해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기관은 매우 부족하다”며 “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고급화·선진화하는 노력과 함께 궁극적으로 원스톱지원센터, 해바라기여성·아동센터 등 각 부처 소관 센터들을 통합함으로써 예산 절감과 함께 효율적 지원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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