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10) 좋은 일자리를 만들라

2013.06.06 06:00
특별취재팀

빈곤 여성일수록 “시간제보다 풀타임 일자리를”… 계층간 갈등 우려

시간제 일자리 확대를 뼈대로 한 정부의 일자리 대책은 과연 효과가 있을 것인가. 경향신문은 5일 시간제로 일하고 있는 여성 7명으로부터 정부 정책의 허실, 보완했으면 하는 부분을 긴급 취재했다.

여성 노동자들의 반응은 확연히 달랐다.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에서는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확충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반면 벌이가 변변치 못한 여성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인상, 시간제보다는 풀타임 근무를 희망했다.

이 때문에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확충이 자칫 계층 간극만 더 확대시킬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저소득층 여성 노동자를 위한 별도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시간제 일자리를 늘린 네덜란드의 경우 좋은 시간제 일자리의 대부분은 중산층 여성이 차지해 오히려 임금격차가 더 벌어졌다”고 말했다.

[왜 지금 ‘여성 일자리’인가]1부 (10) 좋은 일자리를 만들라

대학을 졸업하고 출산과 육아 이후 경력단절을 겪은 여성들은 시간제 근무를 선호했다.

명문대 졸업 뒤 대기업에 다니던 윤정현씨(46·가명)는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고 여태까지 시간제 일자리를 전전해왔다. 윤씨는 “직장 다니면서 100만원 받느니 시간제로 잠깐 일하고 50만원 받으면서 아이 돌보는 게 훨씬 더 많이 버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통비와 식대, 품위 유지비를 쓰고 아이 돌보는 비용까지 지출하면서 전일제 일자리에서 일하느니 적게 받더라도 시간제 일자리를 선택하는 게 이득이라는 얘기다.

5살, 3살 된 두 아이를 둔 이성은씨(34·가명)는 둘째를 낳은 뒤 퇴직해서 시간제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찾고 있다. 이씨는 육아 문제가 해결되면 풀타임으로 일하고 싶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재취업을 위해 교육을 받기도 했지만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 동안만 일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이씨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6시간 정도만 일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급여는 월 100만원 정도를 바라는데 그런 자리가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용돈벌이로 소일거리를 하는 중년 여성 중에서도 시간제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박인옥씨(57)는 경기 수원시의 한 어린이집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아이들 간식과 식사준비를 하고 월 40만원을 받는다. 박씨는 “내 나이쯤 되면 시간제 일자리를 찾는 사람이 많은데, 정부에서 추진하는 시간제 일자리 정책은 젊은 엄마들만을 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시간제 일밖에 할 수 없는데 고용이 불안해 문제라는 목소리도 높았다. 한 저축은행에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만 일하는 최현지씨(33·가명)는 요즘 걱정이 태산이다. 8살, 6살 난 아이 둘을 키우는 최씨는 몇 달 후면 계약이 만료돼 일을 그만둬야 하는 처지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 도리없이 정규직 일자리를 그만두고 시간제 일자리를 선택했지만 결국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됐다.

명문대 졸업 후 회사생활을 하다 남편 직장을 따라 이사하면서 경력이 단절된 정윤용씨(42)는 2011년부터 초등학교 방과후학습 도우미 일을 시작했다. 하루 6시간씩 일하고 한 달 100만원을 받는 계약직이지만, 정부기관에서 만든 재단에 속해 있어서 고용은 안정적인 편이다. 정씨는 “일반 파트타임보다 고용이 안정돼 있어서 여기서 경력을 쌓아 전일제 일자리로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나처럼 안정적이면서 시간을 유동적으로 쓸 수 있는 일자리가 여성들에게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간제 일자리의 질이 심하게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식당에서 시간제로 일하는 박경순씨(48·가명)는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려면 시급을 지금보다 더 많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식당일처럼 여성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간제 일자리는 대부분 임금이 최저임금 수준이고 4대보험은 꿈도 꿀 수 없다. 박씨가 일하는 식당도 시급이 5000원이고 휴무는 한 달에 2번에 불과하다.

특히 가장 역할을 하는 여성들은 시간제 일자리를 선호하지 않았다. 대형마트에서 하루 6시간30분씩 일하는 임정아씨(36·가명)는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은 초등학교 이하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주부에게만 좋은 정책”이라고 말했다. 남편과 이혼한 뒤 11살 된 아이를 혼자 키우는 임씨는 월 100만원도 안되는 파트타임 월급으로 아이를 키우기가 쉽지 않아 이직을 준비 중이다.

임씨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를 둔 엄마들은 아이가 학교에 간 시간 동안만 하는 일을 찾지만 그 시기가 지나면 대부분 전일제 일자리를 찾는다”고 말했다. 그는 “1시간 일을 덜 하면 그 시간만큼의 시급만 깎이는 게 아니라 수당이나 상여금 등도 줄어든다. 어차피 일해야 한다면 한두 시간 더 일하고 돈을 더 받는 게 좋다는 사람도 많다”고도 했다.

■ 특별취재팀 전병역(산업부)·김재중(정책사회부)·남지원(사회부)·이혜인(전국사회부)·이재덕(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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