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직원 비율’ 현대·기아차 3.7%, 폭스바겐 15%, 미국 GM 20%

2013.06.06 06:00 입력 2013.06.06 06:20 수정
특별취재팀

‘굴뚝산업 여성 부적절’ 편견… 산업구조 개편하기보다 기업 인식구조 바꿔야 개선

여성을 더 뽑으라고 기업들에 강제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채용을 늘리게끔 장려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기업들은 그동안 한국의 산업구조상 육체노동 의존도가 높은 자동차·철강·조선·건설업체가 많아 여성을 쓰기 어렵다고 말해왔다. 진짜로 이런 업종에는 여성들이 일하기 힘들 만큼 근무여건이 아직 열악할까. 컴퓨터 등을 이용한 자동화가 진척되면서 점점 궁색한 변명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게다가 기획·재무 같은 경영지원 조직은 물론 설계, 디자인 등에서는 여성도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여성 인력을 대하는 인식·태도 변화부터 주문했다. 또 유명무실해진 ‘적극적 고용개선조치(AA)’라는 여성 채용 시행계획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도 구체적인 수단이다. 산업구조를 애써 바꾸지 않더라도 현재 틀 안에서 여성 채용을 늘릴 여지는 많다. 더불어 교육·의료·법률·콘텐츠 등 고부가가치 쪽으로 서비스업종을 활성화하는 것도 괜찮은 여성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안으로 거론된다.

중공업체에는 여성이 일하기가 거의 어렵다는 얘기는 한낱 편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미국, 유럽의 경쟁사들이 잘 보여준다. 대표적인 자동차업종만 해도 여성을 지금보다 더 쓸 수 있다. 폭스바겐코리아 관계자는 5일 “지난해 독일의 폭스바겐그룹(스카니아, 만(MAN) 트럭, 포르셰는 제외) 내 전체 인력의 15.2%가 여성이었다”고 밝혔다. 여성 비중은 2008년 14%, 2011년 14.7%에 이어 증가해왔다.

반면 국내 대표주자인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고용노동부에 제출한 자료에서 직원 8만9860명 중 여성이 3294명(3.7%)이라고 밝혔다. 여성 관리자는 73명(1.0%)뿐이었다. 경쟁사인 폭스바겐의 비율로 단순 계산하면 현대·기아차는 여성을 1만명 이상 더 쓸 수도 있다는 얘기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국내는 공장 현장 분위기가 여성들이 일하기에 익숙지 않지만 북미나 유럽 생산법인에는 국내보다 여성 인력비중이 더 큰 게 사실”이라며 “국내도 밤샘근무를 폐지한 주간연속 2교대제가 정착되면 여성 채용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의 조립라인에는 거의 전부 남성 노동자들만 일하고 있다(위쪽). 반면 피아트그룹 산하 크라이슬러 미국 인디애나 코코모 공장에서는 다수의 여성 노동자들이 자동차 변속기 밸브 보디 작업을 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피아트그룹 제공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의 조립라인에는 거의 전부 남성 노동자들만 일하고 있다(위쪽). 반면 피아트그룹 산하 크라이슬러 미국 인디애나 코코모 공장에서는 다수의 여성 노동자들이 자동차 변속기 밸브 보디 작업을 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피아트그룹 제공

지난해 폭스바겐은 서비스센터 직원이나 딜러, 기술인력 등이 될 직업훈련생의 26.8%를 여성으로 채웠다. 2011년 8.5%이던 여성 관리자 비중은 지난해 9.3%로 늘렸다. 이 가운데 여성 최고경영자 비중은 4.9%에서 5.5%로 높였다. 나아가 폭스바겐은 2011년 봄 여성 비율을 높이기 위해 새 목표를 제시했다. 2020년까지 최고경영진의 11% 이상, 마에스터(장인) 프로그램의 최소 10%를 여성에게 할당키로 한 것이다. 유연한 노동시간과 지역·현장의 보육시설 등이 갖춰져서 가능한 일이었다.

GM의 미국 공장 등에는 자동차 조립라인에서 여성 인력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북미를 포함해 전 세계 21만3000명의 직원 중 약 20%가 여성이지만 아직 더 늘려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다”며 “그룹 이사진 15명 중 4명(26.7%)이 여성이며 수석부사장을 포함해 비즈니스 담당 핵심임원 18명 중 3명(16.7%)도 여성”이라고 말했다.

크라이슬러를 포함한 피아트그룹은 지난해 북미의 22%를 비롯해 전체 직원의 19.2%가 여성이며 여성관리자도 13.1%나 된다. 반면 현대차그룹에는 현재 채양선 기아차 전무(172명 중 한 명)와 최명화 현대차 상무(240명 중 한 명)를 포함해 여성 임원이 총 6명뿐이다.

[왜 지금 ‘여성 일자리’인가]‘여성 직원 비율’ 현대·기아차 3.7%, 폭스바겐 15%, 미국 GM 20%

세계적으로 여성 고용을 늘리기 위한 움직임은 강제할당을 추구하는 유럽과 AA를 도입한 미국의 두 갈래로 나뉜다. 유럽은 아예 여성 임원을 일정 비율 이상씩 할당하자는 쪽이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020년까지 유럽 상장기업이 비상임이사진의 40% 이상을 여성에게 할당하는 법안을 지난해 11월 제출했다. 일부 국가는 이미 여성 임원 할당제를 도입해 노르웨이는 2011년 여성 임원이 42%나 됐고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도 할당제를 시행하거나 앞두고 있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중후장대 산업이라고 여성이 안 맞다는 건 이상한 논리”라며 “여성 채용을 위한 산업구조 개편보다는 일과 가정을 양립하고 가족친화적인 기업문화를 만드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미국 AA제도를 받아들였지만 무늬만 따라 한 데 그쳤다. 당시 AA 도입에 참여한 장지연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시행 초반이어서 산업별 평균의 60%가 못되는 기업들의 명단을 공표하지 못하고, 여성 고용 현황에 비정규직도 포함시키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기업들은 AA 실적 제출을 형식적으로 하게 됐고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처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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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재호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산업별 특성을 반영하되 현재 평균의 60% 미달 업체를 대상으로 한 AA 시행계획서 제출 기준을 80%로 끌어올려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중공업이나 건설업처럼 산업 평균 자체가 한 자릿수로 낮은 업종은 여직원 몇 명만 뽑으면 기준을 충족하는 맹점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미국은 AA 실적을 정부 조달과 연계시켜놓았다. 김종숙 여성정책연구원 여성일자리·인재센터장은 “미국의 경우 여성 채용이 시원찮은 기업은 일정 규모 이상의 정부 조달에 참가하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유럽식으로 할당제로 갈 게 아니면 명단 공개나 정부 조달 연계 등 실효성을 높이는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 조달에도 합리적으로 적용할 방안이 있다. 금 위원은 “참여를 막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AA를 어느 정도 어기면 정부 조달에 감점을 주는 수가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 공약집에는 AA 이행 우수기업은 정부 조달 계약에 혜택 제공과 시정 권고를 지키지 않는 기업의 명단 공표를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 2월 대통령직인수위의 국정과제에는 ‘AA 우수기업에는 인센티브 확대’로 후퇴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남자끼리 일하는 데 익숙한 기업문화도 여성 채용을 막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장지연 위원은 “다 같이 못해서 창피함을 못 느끼고 서로 마음이 편한 상황이 돼버린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제도 도입 당시 경쟁사보다도 여성 채용실적이 나빴던 대우조선해양을 상대로 노동부가 돈을 대주며 외부 컨설팅까지 붙여줬지만 별로 나아진 게 없다. 그는 “중공업체들은 여전히 ‘어렵고 더럽고 위험해서 여자가 못하는 일’이라는 식으로 얘기한다”며 “그러나 연구·개발 같은 분야에는 여성 채용 가능성이 높은데도 ‘여자와 일하면 불편하다’는 식의 남성중심 문화도 문제”라고 말했다.

제도적으로 압박하기 이전에 국내 기업도 여성 인재를 바라보는 시각부터 바로잡을 때가 됐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의 한 임원은 최근 미국 본사의 모임에 갔다가 55개국에 있는 법무정책(LCA) 조직의 1080명 중 51%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는 “이는 남녀 차별 없이 업무 적합성, 전문성, 숙련도를 보고 뽑기 때문”이라며 “채용이나 직무평가를 공정하게 해야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법인장들을 평가할 때 여직원 비율을 포함한 ‘다양성’ 항목을 따로 두고 이행 정도를 평가한다.

또 서비스산업 발전을 통해 여성에게 괜찮은 일자리를 더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변양규 거시정책연구실장은 “정부가 강조하는 시간제 일자리의 대부분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생산직이나 콜센터 직원 쪽일 수 있어서 고학력 여성에게는 호소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제조업 위주인 구조만 보면 여성에게 공대로 더 진학하라고 해야겠지만 다수 여성들 취향에는 안 맞다”며 “교육·의료·법률·콘텐츠 등 고부가가치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서비스업종을 활성화하면 여성에게 좋은 양질의 일자리를 제법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문화산업은 한국은행이 지난해 산정한 고용유발계수에서 10억원당 약 12명으로 자동차(7.2명), 반도체(4.9명) 산업을 능가한다. 헬스케어산업은 여성과 중장년층 근로자의 비율, 고학력 근로자의 비율, 전문가 직종의 비율, 임금 수준이 다른 산업보다 높다.

■ 특별취재팀 전병역(산업부)·김재중(정책사회부)·남지원(사회부)·이혜인(전국사회부)·이재덕(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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