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줄면 사람 몇 명 잘라달라고 파견업체에 전화만 하면 돼”

2014.01.05 21:33 입력 2014.01.05 21:42 수정
강형도(가명) | 노무사

노무사가 쓰는 현장보고서 - (1) 휴대폰 제조업체

#위탁·용역·도급·파견…. 다양한 이름과 형태로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직접 체험해 보기로 했다. 지난해 8월 말 내가 구한 첫 일자리는 인터넷 구직사이트 ‘알바몬’을 통해서였다. 인천지역 구인광고의 상당수는 부평구·남구·남동구의 공장 밀집지역에서 생산직 노동자를 모집하는 광고였다. 파견업체 이름과 함께 근무시간, 급여 등 간략한 노동조건이 명시되어 있을 뿐 어느 회사에서 일을 하는지 정확히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다른 회사보다 월등히 많은 월 180만원을 지급한다는 휴대폰 부품 조립업체의 생산직 사원 모집광고를 보고 이 회사 담당 팀장에게 이름, 나이, 사는 곳을 문자로 보냈다. 오전 9시였는데,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당장 내일부터 출근할 수 있느냐는 물음과 10시에 주안동 00아파트 앞 5층 건물 앞에서 보자는 얘기였다. 조금 일찍 약속장소에 도착해 ‘설마 이런 주택가에 공장이 있을까?’하는 의구심에 가득 차 두리번대는데 앞에 검은색 승용차가 멈춰섰다. 정장을 차려입은 여성이 내리더니 “조금 전 통화하신 000씨죠?”라고 묻고는 명함 한 장을 건네고 등 뒤에 우뚝 선 건물로 나를 인도했다.

건물 2층 입구에 붙은 간판을 보고 비로소 내가 다닐 회사의 이름이 00텔레콤(A사)임을 알게 되었다. 이곳은 흔히 상상하는 공장 모습과 달리 건물 한 층을 임대해 실내에 생산설비를 갖춘 이른바 빌딩형 공장이었다. 사무실·휴게실·작업실로 이루어진 실내 구조는 단순했다. 파견업체 직원을 따라 사무실에 들어서자 그는 “4대 보험은 3개월 지나야 가능하고 3일 이내에 그만두면 급여 지급이 안 됩니다”라는 말과 함께 이력서 양식을 내밀었다. 이력서는 앞으로 나를 사용하게 될 A사의 팀장에게 곧장 전달되었고 면접이 진행됐다. 이력서를 찬찬히 훑어보고는 시시콜콜한 질문 몇 가지를 던진 뒤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얘기가 전부였다. 파견업체의 실장은 오전에 한 차례 전화통화를 하고 나와 A사의 면접을 주선하는 것으로 가뿐히 자신의 임무를 마쳤다. 나의 첫 근로계약은 계약서는커녕 근로기준법 제17조에 열거된 임금, 소정근로시간, 주휴일, 연차휴가 등의 근로조건을 명시도 하지 않은 채 마무리되었다.

지난달 30일 인천지하철 1호선 동춘역에서 내린 노동자들이 눈이 얼어붙은 다리 위를 걸어 인천남동공단으로 출근하고 있다. 동춘역은 매주 월요일 첫 출근을 하는 파견직 근로자와 파견업체들이 만나는 새로운 ‘인력시장’이 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지난달 30일 인천지하철 1호선 동춘역에서 내린 노동자들이 눈이 얼어붙은 다리 위를 걸어 인천남동공단으로 출근하고 있다. 동춘역은 매주 월요일 첫 출근을 하는 파견직 근로자와 파견업체들이 만나는 새로운 ‘인력시장’이 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A사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LG전자의 2차 하청업체로, 스마트폰 배터리커버 등의 부품을 조립해 1차 하청업체인 00전자(B사)에 납품하는 회사였다. 인천에만 5개의 공장을 두고 있었다. 내가 일하는 주안 공장에는 60여명의 노동자가 근무하고 있었다. 대개 공장 인근에 거주하는 40~50대 여성들이었고 결혼비자로 입국한 베트남 출신 여성도 7명 있었다. 그 중 원청인 A사의 정규직은 몇 명이나 될까? 모두 똑같은 작업복을 입고 A사 관리자의 지시에 따라 자리를 배정받아 같은 일을 하기 때문에 겉으로 확인할 방법은 없다. 나중에 동료 직원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생산직 60여명 중 오래 근무한 15명만이 A사의 정규직이고 나머지는 나와 같은 파견업체 소속이었다. 현장에서는 15명의 정규직을 공공연히 ‘골드클래스’라 불렀다. 다 같은 노동자에게 누가 색깔을 입힐 생각을 했을까? 더구나 이곳 파견노동자들은 제조업의 직접 생산공정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들로 파견법에 의해 근로자파견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A사가 직접 고용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내가 본 생산직 파견근로자를 모집하는 인터넷 구인광고는 십중팔구 파견법에 따른 파견 허용 업종의 범위를 벗어난 불법파견임이 틀림없었다.

#A사에서 내가 맡은 일은 주로 자재 입출고, 재고 관리 업무였다. 결근자가 많아 일손이 달릴 때면 생산라인에 투입되거나 포장용 박스를 접는 일을 하기도 했다. 자재 입출고 관리가 주업무인 관계로 A사와 거래하는 회사의 영업·납품 담당 직원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처음에는 거래하는 회사 이름조차 외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자재를 공급받아 조립하여 LG전자의 1차 하청업체인 B사에 납품하기까지의 그림이 눈에 익을 무렵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A사의 휴대폰 부품 생산을 둘러싼 다단계 하청은 내가 파악한 데까지만 4차에 걸쳐 있으며, 관계된 회사만도 가장 윗선의 LG전자를 제외하고 10개에 달한다는 것이다. 그 중 흥미로운 것은 A사로부터 제품 생산의 일부를 따로 외주 받은 하청업체들이다. 가령 2차 하청업체인 A사가 1차 하청업체인 B사에 납품할 완제품 생산에 총 10개의 공정을 거쳐야 한다면, 외주를 받은 하청업체들이 그 중 5개의 공정을 먼저 거쳐 반제품을 생산한 뒤 A사에 납품을 하고, A사는 나머지 5개 공정을 거쳐 완제품을 생산해 B사에 납품하는 식이다. 이 외주 하청업체들은 LG전자로부터 제품 생산과 관련한 승인을 받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A사와 이 업체들 간 거래는 비밀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영업 직원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이 업체들은 대개 20여명의 생산직 노동자를 고용하여 2013년도 최저임금인 시급 4860원을 지급하고 있으며, 노동자에게 1주일에 1회 이상의 유급휴일을 주도록 되어 있는 근로기준법 제55조를 위반했다. 여기에 일감이 없어 휴업하는 경우에도 이는 엄연한 사용자의 귀책사유에 따른 휴업에 해당함에도 근로기준법 제46조에 따른 휴업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A사는 무슨 이유로 이들과 비밀스러운 거래를 계속하던 것일까? 나는 10월에 퇴사를 앞두고 A사의 팀장에게 직접 물었다. 조금 더 넓은 곳으로 공장을 옮기고 설비와 채용을 늘리지 왜 구태여 LG전자 눈치를 보고 외주 하청업체의 반제품 조달 실적에 따라 제품 생산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는 복잡한 거래를 계속하느냐고 말이다. 팀장의 답변이 돌아왔다. “원청에서 발주를 줄이면 우리도 당장 일감이 없는데 설비에 채용만 늘리면 그 위험은 누가 감당하겠어. 위험을 분산하는 거지. 아웃소싱으로 사람 채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야. 일감 없을 때는 사람 몇 명 잘라달라고 전화 한통만 하면 돼.” 회사는 이처럼 다단계 하청, 근로자 파견 등의 고도로 유연화된 생산·고용 시스템을 통해 경영상의 위험을 분산하고자 했다. 그 분산된 위험은 고스란히 노동법 규율이 붕괴된 생산현장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가슴에 비수로 꽂히고 있었다.

[간접고용의 눈물]“일감 줄면 사람 몇 명 잘라달라고 파견업체에 전화만 하면 돼”

▲ 불법① 근로계약서 미작성
질문 몇 개 하고 출근 결정… 임금 등 근로조건 명시 없어

▲ 불법② 파견법 위반
생산직 60명 중 45명이 파견업체, ‘직접고용’ 이행 안 해

[간접고용의 눈물]“일감 줄면 사람 몇 명 잘라달라고 파견업체에 전화만 하면 돼”

▲ 불법③ 가산임금 지급 불이행
연장근로 합의 없이 강행… 야간노동 수당 제대로 안 줘

▲ 불법④ 연장근로 한도 초과
시급 4860원·식대 2000원… 장시간 노동해야 월 180만원


#A사의 업무시작 시각은 오전 9시. 첫 출근하던 날엔 15분 일찍 도착해 면접 때 방문했던 사무실로 갔었다. 어쩐지 현장에 아무도 보이지 않아 의아한 마음에 긴장을 풀기 위해 커피를 타 마시려고 했다. 그 순간 사무실 문이 열렸다. 한 남성이 들어와 대뜸 “누구냐”고 묻고는 “8시40분부터 조회다. 청소도 해야 하니 내일부터 늦어도 8시30분까지는 출근해”라고 퉁명스럽게 명령했다. 내가 도착한 8시45분은 모든 직원들이 이미 출근해 청소를 마치고 조회를 하던 시간이었던 것이다. 물론 조기 출근해 작업 준비를 하고 조회하는 시간은 모두 무급이었다.

장시간 노동은 일상화됐다. 보통 1일 8시간 근무를 모두 마친 뒤 오후 6시반부터 9~10시까지 잔업을 하고 매주 토요일에도 꼬박 8~9시간을 근무하는 게 일상이었다. 노동자의 건강과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연장근로 한도를 1주에 12시간으로 제한한 근로기준법 제53조 제1항을 위반하고 있는 셈이다. 가끔 물량이 폭증할 때에는 밤 11시에 퇴근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 경우도 연장노동에 대하여 통상임금의 50%를 가산 지급할 뿐 야간노동(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사이의 노동)에 대한 가산 임금은 중복 지급을 하지 않았다. 근로기준법 제56조를 위반한 셈이다. 1주 40시간, 1일 8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 요건에 대해 당사자 간 합의는 이곳에서는 그저 노동법 책에서나 볼 수 있는 글귀에 불과했다.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과 이를 견디지 못하면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분위기 속에서 부득이하게 조퇴·결근해야 하는 사람들은 매 쉬는 시간마다 사무실에 얼굴을 빼꼼 내밀고 관리자에게 갖은 핀잔을 들어가며 조퇴·결근을 신청해야만 했다. 한번은 아침부터 고열을 참고 일하다 오후 6시 정시 퇴근을 하려는 노동자에게 관리자는 “아파도 하필 결근자 많은 날 아파야겠어? 웬만하면 오늘은 참고 내일 가!”라며 윽박질렀다. 그 노동자는 다음날부터 회사에서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몸 아픈 것도 회사 사정 봐가며 아파야 하는 슬픈 현실이다. 반대로 원청의 발주가 없거나 자재가 모자랄 때면 회사는 반나절씩 휴업을 하기도 했다. 오전 업무를 마치면 곧장 퇴근을 시키거나 한밤중에 “물량이 부족한 관계로 내일은 13시까지 출근바랍니다”라는 문자 한통을 보내는 방식이었다. 물론 근로기준법 제46조에 따른 휴업수당은 지급되지 않았다.

#이처럼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저임금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첫 면접 때 임금 등 구체적인 노동조건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없었던 나는 입사 후 첫 임금을 지급받은 뒤에야 비로소 구직사이트에서 본 월 180만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A사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은 모두 시급 4860원에 점심식대 1일 2000원이 전부였다. 근로기준법상 연장근로 한도를 초과하는 장시간 노동 대가를 모두 포함한 금액이 곧 180만원이었던 게다. 불법과 유린의 현장에서 숨 죽이며 죽지 않을 만큼 꼬박 일해야 살아갈 수 있는 처참한 간접고용의 현실. 법 위반이 다반사인 현실을 바로잡고, 이들과 함께 따뜻한 봄을 맞이하기 위하여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180만원의 임금보다 더욱 값진 물음을 내게 던지며 두 달간의 휴대폰 부품 제조 하청업체 파견노동자 체험을 마쳤다.

※ 연재를 시작하며

경향신문은 지난해 9월 ‘500대 기업 고용과 노동’ 시리즈를 하면서 대기업들의 인건비에서 간접고용비 성격의 지출이 50% 가까이 된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했습니다. 전 사회적으로 간접고용 숫자가 그만큼 많은 것입니다.

현재 신뢰할 만한 정확한 간접고용 통계는 없습니다. 정치권·노동부·학계에서 비용 분석으로 간접고용의 전체 추이를 접근한 경향신문 보도에 많은 관심을 표시한 이유일 것입니다. 동시에 간접고용 규모뿐 아니라 그 구체적 실태 조명도 필요하다는 반향과 주문이 쏟아졌습니다.

그즈음 경향신문은 간접고용 현장을 몸으로 체험한 공인노무사들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확인해본 결과 ‘현장 속으로’ 들어간 5명의 노무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노동법 전문가이면서 현장도 체험한 그들로부터 살아 있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일터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는 수준을 넘어 노동법적 시각에서 그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도 고민해보고 있었습니다.

5명 중 3명은 노무사시험 합격 후 짧게는 2주간, 길게는 4개월가량 간접고용 노동자들과 어울려 눈물과 땀을 함께했습니다. 2명의 노무사는 노무사시험을 준비하는 계기가 됐던 간접고용 경험과 기억을 풀어냈습니다. 경향신문은 8회에 걸쳐 가명·실명으로 쓰는 노무사들의 현장보고서와 기자의 눈으로 간접고용의 실태와 문제점을 직접 분석한 기획기사를 시리즈로 내놓을 예정입니다.

※ 첫 체험기 쓴 강 노무사
“부대끼고 고민 듣던 경험, 노무사 활동 큰 자산”


첫 체험기를 쓴 강형도 노무사(33·가명·22기)는 4년간 노조에서 일해온 현장 활동가이다. 공장일을 직접 체험한 것은 처음이다. 그는 3학년 때 서울대를 중퇴하고 2008년부터 광주의 한 산별노조에서 노동 문제와 맞닥뜨리기 시작했다.

그는 경향신문에 체험기를 보낸 후 “노조에서 단지 전화로 상담하던 때와는 다른 느낌”이라며 “노동자들과 현장에서 최소 하루 8시간 이상 같이 부대끼고 고민 듣고 같이 밥을 먹었던 경험들이 노무사 활동에 귀중한 자산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도 길거리에서 휴대폰이나 자신이 일한 공장에서 생산된 화장품을 볼 때마다 함께 일 했던 공장 동료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간다고 했다.

강 노무사는 다음달부터 인천의 산별노조에서 상근 노무사로 활동할 계획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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