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가 사라져버린 고용 급증… 노동자 절반이 간접고용직

2014.01.05 21:33 입력 2014.01.05 21:41 수정
강진구 기자

(1) 간접고용 위험수위 넘었다

한국 사회의 간접고용은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대기업들이 핵심 사업만 남기고 외주화를 남발하면서 양질의 일자리는 갈수록 협소해지고 있다. 그 자리에 다단계 하청의 틀로 간접고용된 근로자들이 대기업에 헐값으로 노동력을 제공하는 악순환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일자리의 수가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된 일자리 창출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라 있다.

경향신문이 5일 공인노무사 5명이 작성한 간접고용 체험 실태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간접고용은 정부나 노동계의 예상과 체감도를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 대기업 핵심만 남기고 대부분 외주업체 위탁
질 좋은 일자리 줄고 노동력 ‘헐값’ 악순환

▲ 협력사 다단계하도급 불법파견 구조 고착화
노동부선 근로감독 방치

[간접고용의 눈물]사용자가 사라져버린 고용 급증… 노동자 절반이 간접고용직

정부의 공식 조사 결과에는 2007년 기간제 보호법 및 파견근로자 보호법 시행 후 간접고용 근로자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고용노동부의 사내하도급 실태 조사에서는 300인 이상 기업의 사내하도급 근로자는 2008년 36만8000명에서 2010년 32만5000명으로 다소 줄어든 것으로 나온다. 이 기간 사내하도급을 둔 해당 업체 수도 1만717개에서 8529개로 감소했다.

하지만 정부의 수치는 불법적인 제조업체의 사내하도급이 빠져 있는 통계치다. 노무사들의 체험기를 보면 정부의 관리·감독이 미치기 어려운 종업원 20~50명 규모의 대기업 제조 협력업체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불법파견이 이뤄지고 있다. 대기업들이 인건비 절감과 사용주로서의 노동법상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능한 한 대부분의 생산공정을 아웃소싱하면서 부품의 외주화뿐 아니라 불법파견의 위험까지 외주화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인천의 휴대폰 2차 협력업체와 경남 창원의 냉장고 부품 제조업체에서 근무한 노무사 강모씨(34)와 배모씨(26)는 “노동부에서 근로감독 나오면 한눈에 봐도 불법파견인 것을 알 텐데 근무하면서 한번도 근로감독 나왔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휴대폰과 냉장고의 원청회사인 LG전자 관계자는 “휴대폰이나 가전제품의 모델이 워낙 다양하고 시장 상황도 유동적이라 모든 생산을 본사에서 할 수는 없다”며 부품의 외주화는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그는 협력업체들이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가격단가를 맞추기 위해 불법파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서는 “협력업체 경영에 우리가 개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대표적인 전문 브랜드숍 화장품인 ‘더페이스샵’ ‘네이처리퍼블릭’ 등은 아예 생산직 사원이 한 명도 없다. 100%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화장품 브랜드숍 업계 1위인 더페이스샵의 2002년 매출액은 3553억원이지만 종업원 급여는 169억원, 숫자는 330명에 불과했다.

네이처리버플릭은 매출액 1284억원에 종업원은 고작 185명이다. 종업원들에게 지급한 총급여(73억원)보다 광고비(113억원)가 거의 2배에 달했다.

더페이스샵 홍보팀 관계자는 “화장품 브랜드숍은 고품질에 가격경쟁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2003년 출발할 때부터 제조 설비나 R&D연구소를 갖추는 대신 전문적인 OEM 업체에 맡겨서 생산하고 원료도 외주업체에서 제공받고 있다”며 “1069개의 매장 소속 직원들도 가맹점주와 고용을 맺고 있을 뿐 우리 직원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대기업이 직접고용을 피하는 사이 그 빈 공백은 영세한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이 잔업과 특근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원청업체인 대기업에서 정해주는 납품 물량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협력업체는 고용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불법인 줄 알면서도 파견직이나 일용직 인력을 쓰는 것이다.

간접고용은 비용 절감을 위한 기업의 전략적 선택 문제를 넘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과거 현대자동차·한국지엠·금호타이어 등 제조업체에 주로 집중됐던 간접고용이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공공서비스, 신세계·이마트·삼성전자서비스 등 민간 서비스, 병원의 간호업무, 원자력발전의 주요 부품 납품 과정, 숭례문 복원 과정 등 안전·문화재 업무까지 무차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노동시장에서 실제 간접고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정부 조사 결과와 달리 한국비정규직센터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원자료를 재분석한 결과를 보면 간접고용 근로자는 2008년 3월 75만6000명에서 지난해 3월 88만1000명(파견 19만8000명, 용역 68만3000명)으로 5년 새 12만5000명 증가했다. 여기에 간접고용의 또 다른 형태인 특수고용 근로자와 불법적인 사내하청 등 과소 추청된 인원을 감안하면 간접고용은 최소한 2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국내 주요 그룹의 IT·물류·수리(AS) 등 업무를 아웃소싱하기 위해 설립한 자회사와 이들과 다단계 하도급으로 연결된 협력업체 직원,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 정규직원도 넓게 보면 간접고용 근로자의 범위에 포함시킬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간접고용은 전체 근로자(1700만명)의 거의 절반 가까이 혹은 그 이상으로까지 확대됐다고 볼 수 있다. 경향신문이 지난해 9월 ‘500대 기업 고용과 노동’(9월24일자 1면 보도)을 분석할 때 전체 인건비 중 간접고용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47.9%였다.

※ 연재를 시작하며

경향신문은 지난해 9월 ‘500대 기업 고용과 노동’ 시리즈를 하면서 대기업들의 인건비에서 간접고용비 성격의 지출이 50% 가까이 된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했습니다. 전 사회적으로 간접고용 숫자가 그만큼 많은 것입니다.

현재 신뢰할 만한 정확한 간접고용 통계는 없습니다. 정치권·노동부·학계에서 비용 분석으로 간접고용의 전체 추이를 접근한 경향신문 보도에 많은 관심을 표시한 이유일 것입니다. 동시에 간접고용 규모뿐 아니라 그 구체적 실태 조명도 필요하다는 반향과 주문이 쏟아졌습니다.

그즈음 경향신문은 간접고용 현장을 몸으로 체험한 공인노무사들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확인해본 결과 ‘현장 속으로’ 들어간 5명의 노무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노동법 전문가이면서 현장도 체험한 그들로부터 살아 있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일터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는 수준을 넘어 노동법적 시각에서 그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도 고민해보고 있었습니다.

5명 중 3명은 노무사시험 합격 후 짧게는 2주간, 길게는 4개월가량 간접고용 노동자들과 어울려 눈물과 땀을 함께했습니다. 2명의 노무사는 노무사시험을 준비하는 계기가 됐던 간접고용 경험과 기억을 풀어냈습니다. 경향신문은 8회에 걸쳐 가명·실명으로 쓰는 노무사들의 현장보고서와 기자의 눈으로 간접고용의 실태와 문제점을 직접 분석한 기획기사를 시리즈로 내놓을 예정입니다.

※ 첫 체험기 쓴 강 노무사
“부대끼고 고민 듣던 경험, 노무사 활동 큰 자산”


첫 체험기를 쓴 강형도 노무사(33·가명·22기)는 4년간 노조에서 일해온 현장 활동가이다. 공장일을 직접 체험한 것은 처음이다. 그는 3학년 때 서울대를 중퇴하고 2008년부터 광주의 한 산별노조에서 노동 문제와 맞닥뜨리기 시작했다.

그는 경향신문에 체험기를 보낸 후 “노조에서 단지 전화로 상담하던 때와는 다른 느낌”이라며 “노동자들과 현장에서 최소 하루 8시간 이상 같이 부대끼고 고민 듣고 같이 밥을 먹었던 경험들이 노무사 활동에 귀중한 자산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도 길거리에서 휴대폰이나 자신이 일한 공장에서 생산된 화장품을 볼 때마다 함께 일 했던 공장 동료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간다고 했다.

강 노무사는 다음달부터 인천의 산별노조에서 상근 노무사로 활동할 계획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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