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고용?” “새로운 계급이죠”

2014.01.05 21:37 입력 2014.01.05 22:39 수정
강진구 기자(공인노무사)

간접고용의 눈물 - 노무사들과 함께 쓰는 현장보고서

건설 일용노동자 송모씨(48)는 지난해 11월 인천 서구 검암역의 ‘KTX 환승’ 공사현장에서 고압전류에 감전됐다. 그는 중화상을 입고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감전사고는 송씨가 전철이 다니는 낮에 절연기능이 없는 안전화·안전모·야광조끼만 입고 플랫폼 홈지붕에 올라가 빗물막이 작업을 하다 일어났다. 선로구간 공사는 전철 운행이 끝난 야간에 잔류 전류까지 제거하고 하도록 한 안전규정은 지켜지지 않았다. 하늘에선 진눈깨비가 내려 감전사고 위험도 높을 때였다. 안전규정을 무시한 사용자는 법적·도의적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송씨의 산업재해 보상 문제는 시작부터 꼬였다. 노동자는 한 명인데 사용자가 4명이었기 때문이다. 원청업체는 대림건설, 그를 지휘감독한 1차 협력업체는 ㅁ공영, 그를 고용한 2차 협력업체는 ㅊ건설이다. ㅊ건설은 고용주, ㅁ공영은 사용 사업주, 대림건설은 산업안전법상 안전총괄책임자로서 저마다 사고에 책임이 있었다. 검암역 공사구간은 9개 공동도급사가 돌아가며 산재보험료를 내고 있어 사고 당시 산재법상 사용자는 쌍용건설이었다.

사고가 나자 네 사용자는 책임을 떠넘기기 급급했다. ㅁ공영은 안전관리자가 “공사구간에 고압전류가 남아 있는 줄 몰랐다”고 시인했지만 수술비를 부담할 법적 책임은 없다고 나왔다. 대림건설은 경위조사서에서 “안전거리를 지키지 않았다”며 사고 책임을 송씨에게 미루고 버텼다. 결국 송씨는 3도 화상을 입고도 고가의 인공피부 대신 허벅지 살을 떼어다 붙이는 자가피부이식 수술을 받았다. 1000만원이 넘는 수술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산재 판정 전 대출신청제도를 두드려봤지만 근로복지공단은 기금이 바닥났다며 대출을 거부했다. 송씨는 며칠 전 병원에서 ‘밀린 수술비를 내지 못하면 퇴원시킬 수밖에 없다’는 통지를 받았다. 노무법인 로맥의 문영섭 노무사는 “근로자가 병원에서 쫓겨날 상황인데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막다른 길에 갇힌 송씨는 다단계 간접고용 노동자의 눈물을 웅변하고 있다. 층층이 쳐 있는 ‘노동의 사다리’에서 그는 맨 밑에 매달려 있다. 원·하청업체 간 계약이 단절되면 그마저도 끊어질 처지다. 원청업체는 아래로 책임을 미루고 하청업체는 노동법을 외면하는 사이 그는 ‘산재의 답’을 못 찾고 해를 넘겼다.

“대기업에 있는 계약직과 간접고용은 정규직으로 가는 교두보냐, 아니면 새로운 계급으로 굳어지는 것이냐.”

서강대 경영학과의 한 교수가 지난해 여름 대기업 인사팀 책임자로 일하는 제자 3명과 저녁을 먹으며 “요즘 학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계약직, 인턴, 파견·용역직”이라며 던진 질문이다. 제자들은 “계급이죠”라고 말했다. 당시 모임에 참석한 한 인사팀장은 5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대기업은 소수의 로열패밀리 그룹, 신입사원으로 들어와 과장·부장까지는 승진이 보장되는 본사의 정규직, 나머지 계층 상승이 불가능한 계약직과 협력업체 직원들로 인적 구성이 고착화돼 그 흐름을 되돌리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2007년 기간제근로자법이 시행된 지 7년, 노동의 서열은 갈수록 공고해지고 있다. 비정규직도 기업이 직접 뽑은 계약직과 간접고용(파견·용역) 노동자로 나뉘고 있다. 2년이 넘으면 함부로 해고할 수 없도록 고용보호가 강화된 계약직과 달리, 간접고용은 원·하청 간 도급계약이 단절되면 해고 위험에 직면한다. 아무리 오래 근무해도 임금이 오르기 어렵고 사실상 임금인상 권한을 가진 원청업체와 단체교섭을 할 수도 없는 게 간접고용이다. 방송사에서는 이미 공채 사원과 직접 채용한 계약직을 합쳐 정규직으로 부르고 파견·용역·프리랜서 등 외부 업체에서 온 노동자들만 비정규직으로 부르고 있다. 백화점 사원 모집 광고에는 ‘파견 2년 후 본사 계약직으로 전환’을 우대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비정규직 속에서 계약직과 외부 용역업체 노동자 간에 또 하나의 층계가 생긴 것이다. 간접고용 노동자를 “21세기의 새로운 계급”으로 부르는 이유다.

급팽창하고 있지만, 간접고용은 아직 통계의 사각지대에 있다. 정부의 지난해 통계에서 간접고용 노동자는 88만1000명(파견 19만8000명, 용역 68만3000명)이다. 여기에는 보험설계사·화물트럭 운전사 등 100만명이 넘는 특수고용노동자와 중소제조업체에 만연한 불법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빠져 있다.

간접고용의 확산 속도는 공룡으로 커가고 있는 인력공급업체들이 보여준다. 경향신문이 대한상공회의소 기업정보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매출 500억원 이상 33개 인력공급업체의 총매출액은 4조2000억원, 소속 종업원은 12만7000명으로 집계됐다. 2003년 3만6280명, 기간제법 시행 직후인 2008년 6만4167명이던 종업원수가 4~5년마다 2배씩 커지면서 인력공급업은 거대한 산업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종업원들의 월평균 급여는 165만원에 불과했다. 공공기관·기업체 할 것 없이 저임금의 간접고용으로 계약직 인력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간접고용 차별 해소를 골자로 한 사내하도급법 제정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1년이 흘렀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간접고용을 보호하는 입법을 외면하고 있다. 정부가 코레일과 경쟁체제라고 포장한 수서발 KTX에도 간접고용을 늘려 인건비를 줄이겠다는 발상이 깔려 있다. 정부와 기업이 간접고용을 고용 유연성-비용절감-경영혁신의 중심에 놓지만, 노동자 입장에선 상시적 해고 위협-차별-근로조건 악화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간접고용의 무차별적 확대는 잦은 이직과 노동숙련도 저하를 낳고, 생산성 악화와 저임금은 내수기반을 약화시켜 기업 경쟁력을 흔드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노동시장에도, 한국 사회에도 지속가능성에 비상등이 켜진 것이다. 간접고용 노동자의 눈물이 그들만의 눈물이 아닌 이유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