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비리·숭례문 부실 복원, 다단계 하도급 폐해가 원인

2014.02.03 06:00 입력 2014.02.03 06:02 수정
강진구 기자

문화재 안전, 원전 안전, 개인신용정보 안전을 위협하는 대형사건 뒤에는 ‘간접고용’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원청이 사업상의 책임과 부담을 떠넘기기 위해 외주화를 급격히 진행하면서 한국 사회 곳곳에서 그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숭례문 부실 복원공사는 간접고용이 문화재의 안전을 어떻게 위협하고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경찰에서 숭례문 기둥 일부가 국내 금강송이 아닌 러시아산 소나무가 사용된 의혹에 대해 조사하고 있으나 현 사태는 문화재청이 국보 1호의 복원까지 직영체제가 아닌 하도급을 주면서 어느 정도 예고됐다고 할 수 있다. 문화재청은 숭례문 복원공사에서 인건비가 많이 드는 전통 복원방식을 고집하면서 정작 공사는 직영체제가 아닌 명헌건설에 하도급을 맡겼다. 하도급을 받은 명헌건설은 다시 신응수 대목장 등을 비롯한 장인들에게 재하청을 줬다. 자연스럽게 다단계 하도급을 거치면서 목수의 품값은 내려갔다. 신 대목장은 경찰 조사가 시작되기 전 “목공사 노임으로 약 7억5000만원이 드는데 문화재청과 명헌건설이 계약하면서 목수 품값은 5억4000만원으로 책정됐고, 명헌건설은 설계 변경을 이유로 목공사 노임을 3억8500만원으로 감액시켰다”고 주장했다. 문화재청에서 공급한 금강송이 러시아산 소나무로 바꿔치기됐다는 의혹도 문화재청이 하도급을 주면서 현장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력을 상실한 데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원전의 안전성이 사회문제로 크게 부각된 2011년 3월 대우건설 고위 임원들이 경북 경주에 짓고 있는 신월성원전 1·2호기 공사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원전의 안전성이 사회문제로 크게 부각된 2011년 3월 대우건설 고위 임원들이 경북 경주에 짓고 있는 신월성원전 1·2호기 공사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난해 6월 전 국민을 충격에 몰아넣은 원전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사건도 따지고보면 복잡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비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원전의 핵심 부품인 열교환기(튜프시트) 제작은 두산중공업이 수주해 ㄱ업체에 하청을 주고, 이 업체는 ㄴ사에 재도급하고 ㄴ사는 또 다른 업체에 생산을 맡겼다. 무려 4단계나 하도급이 이뤄진 것이다. 한 단계씩 하도급이 이뤄질 때마다 통상 공사비가 당초 계약금에서 10% 정도 내려가는 점을 감안하면 다단계 하청의 맨 밑바닥에 있는 업체에서 단가를 맞추는 방법은 인건비 절감밖에 없다. 결국 하청업체는 날림으로 부품을 만들고 시험성적서를 위조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안산에서 시각장애인 자동신호기를 제작하는 중소기업 사장 한모씨(48)는 “자체 기술력 없이 대기업의 하청에 의존하는 중소기업들은 인건비를 후려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며 “하지만 임금을 깎아서 회사를 운영하면 제대로 된 물건이 나올 리 없다”고 말했다.

[간접고용의 눈물]원전 비리·숭례문 부실 복원, 다단계 하도급 폐해가 원인

최근 문제가 터진 은행과 신용카드사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도 원청이 고객정보 관리와 직결된 업무를 외주화하면서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지난해 말 국민·롯데·농협카드 고객정보 1억4000만건의 유출은 신용정보회사의 파견직원에 의해 이뤄졌고, 앞서 SC은행 고객정보 10만3000건의 유출도 IT센터 외주업체 직원에 의해 저질러졌다. 2011년 현대캐피탈 사건과 같이 해커에 의해 고객정보가 털리고 있는 것도 프로그램 개발과 유지·보수를 외주화하면서 시스템 보안이 허술해진 것과 무관치 않다. 고객정보 유출 사고의 배후에는 항상 대출모집인들이 존재했다. 금융권으로서는 프로그램 개발 및 유지·보수, 대출모집 업무를 경쟁적으로 외주업체에 넘긴 뒤 혹독한 후과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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