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고용, 스스로 체념 말고 행복해질 권리 요구해야 문제 해결”

2014.02.06 21:38
강진구 기자

(8) 노무사들, 간접고용을 말하다

경향신문의 ‘간접고용의 눈물’ 시리즈에 참여한 노무사들이 지난 5일 저녁 경향신문 편집국 회의실에 모였다. 이들은 “아픔을 공유하는 것의 중요성을 절감했다”고 입을 모았다. 간접고용 현장을 직접 체험하고 ‘노무사의 현장보고서’로 옮겨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면서 새로운 용기를 얻게 됐다는 것이다.

노무사들은 집담회에서 “간접고용은 우리 자신과 가족, 가장 가까운 이웃의 얘기”라면서 “여전히 나와 무관한 남의 일처럼 여기거나 개인이 감당할 고통의 무게로만 바라보던 익숙한 시선들이 이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주변에서부터 변화하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미 너무 만연해 무감각해진 간접고용의 ‘아픈 속살’을 생생히 드러내 보인 의미있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노무사들은 노동현장에서 직접 부딪치고 땀과 눈물을 나누면서 대화를 해 본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도 아쉬움은 있었다고 전했다. ‘언젠가 나아지겠지’라는 막연한 희망과 이건 못난 내 운명’이라는 체념 사이에서 하루하루 버티기만 할 뿐 스스로 현실을 변화시켜보겠다는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무사들은 “간접고용의 문제는 결국 노동자들 스스로 체념과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 행복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목소리를 조직화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집담회에는 지난해 초 창원공단 LG전자 냉장고 부품공장에서 한달간 파견직으로 근무한 배현섭(26·가명), 지난해 11월 부산의 현대카드 고객콜센터에서 상담사로 활동한 황연정(30·가명), 2008년 서울성모병원에서 간호보조원으로 일하다 해고된 김세영(34), 외환위기 후 시중은행 전산실에서 10년 넘게 전산프리랜서 노동자로 근무한 박권도(44·가명) 노무사가 참여했다. 지난해 11월 인천남동공단 화장품공장에서 파견직으로 근무한 강형도 노무사(33·가명)는 최근 취업한 인천지역 노조 업무가 겹치면서 참석하지 못했다.

콜센터, 병원, 화장품 하청업체, 은행 전산실, 냉장고부품 공장에서 직접 일하면서 노동법이 무시된 간접고용 현장을 지켜본 노무사들이 지난 5일 경향신문사 회의실에서 가슴속에 품었던 얘기를 나누고 있다. 얼굴이 보이는 두 사람은 ‘간접고용의 눈물’ 기사를 쓴 강진구 기자(왼쪽)와 실명으로 체험기를 보낸 김세영 노무사. 가명으로 체험기를 쓴 세 노무사는 뒷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다. |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콜센터, 병원, 화장품 하청업체, 은행 전산실, 냉장고부품 공장에서 직접 일하면서 노동법이 무시된 간접고용 현장을 지켜본 노무사들이 지난 5일 경향신문사 회의실에서 가슴속에 품었던 얘기를 나누고 있다. 얼굴이 보이는 두 사람은 ‘간접고용의 눈물’ 기사를 쓴 강진구 기자(왼쪽)와 실명으로 체험기를 보낸 김세영 노무사. 가명으로 체험기를 쓴 세 노무사는 뒷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다. |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 콜센터·파견업체 등서
어려운 이웃들의 아픔
공유해야할 중요성 절감

▲ 부당 대우·열악한 근무
바꿔야 한다고 생각뿐
권리 찾기 조직화 필요

- 이번 시리즈에서 각자 체험기가 나간 뒤 반응이나 소감을 말해달라.

황연정 = 댓글이 이렇게 많이 달릴 줄은 몰랐다. 인터넷 기사를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돌이켜보면 내 스스로 비정규직에 대한 일상화된 차별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것 같다. 솔직히 콜센터에서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고객들로부터 일상적인 폭언과 각종 부당한 처우에 시달리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상담사들을 보면서 ‘최소한 나라도 소리를 질러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댓글 중에 ‘그래 내가 하고 싶은 말 잘해줬어’라는 상담사들의 반응을 보면서 체험기를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현섭 = 내 글에 대한 댓글은 가슴 아파서 못 읽었고 다른 분들 댓글을 많이 봤다. 기업이나 노동자 모두 경쟁의 밑바닥에 깔린 수많은 사람들은 보지 못하고 있다. 계층이 고착화되고 올라갈 길은 안 보이고 뭘 먹고사는지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게 많은 사람들의 현실이다.

박권도 = 내 경우는 비정규직이지만 나름 화이트칼라 전문직이라 공감의 강도가 다른 제조업체 등에서 일한 노무사보다 덜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실제로 내 체험기가 나간 뒤 최초 반응은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프로그램 개발자들이 퍼가서 IT노동자들이 보는 블로그나 카페에서는 활발한 토론이 이뤄졌다. 개발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이게 우리의 현주소다’ ‘이런 막장구조가 고쳐지지 않으니 혹시 이 업종으로 들어오고 싶은 분들 있으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 등이었다. 다단계 하도급구조에서 일하면서 제대로 근로자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장기간 근로를 당연시해온 개발자들은 그동안 문제점을 알면서 다들 체념하고 살아왔다. 이번 기획이 뭔가 꽉 막힌 막장구조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김세영 = 파견직 전환 2년 만에 집단해고를 당한 서울성모병원 간호보조원들의 사연은 5년 전 얘기인데도 많은 댓글들이 달리고 자기일처럼 공분하는 반응을 보면서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2008년 해고무효투쟁 끝에 복직한 언니들이 혹시나 ‘해코지’ 당하지 않을까 걱정해서 기고하기 전에 물어보니 ‘괜찮다’고 했고 기사가 나간 후에도 ‘잘했다’며 응원해주었다.

- 간접고용 문제가 이제는 기업의 경쟁력, 고객정보 유출, 금융전산시스템의 안정, 환자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배현섭 = 기업들이 눈앞의 비용문제 때문에 장기적으로 안목을 못 키우고 있다. 경영합리화를 이유로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하면 가차없이 해고하거나 아웃소싱을 하고 있는데 핵심인재와 비핵심인재로 나누는 기업들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사상 최대의 흥행몰이를 하고 있지만 그쪽에서 일하는 동생 얘기를 들어보면 국내 애니메이션은 하도급에 다시 재하도급을 줘서 비용을 낮추는 데만 골몰하다 보니 국내 인력들은 단순 채색, 영상편집 등 점점 더 비핵심 업무로 밀려나고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미래가 없다.

박권도 = KT가 차세대 유무선통합시스템(BIT)을 도입하기로 하고 1조원을 투자한 프로그램이 구동되지 않고 있다. 초대형 프로젝트의 경우 프로젝트관리조직(PMO)이 있어야 하는데 KT는 프로젝트를 모두 잘게 쪼개서 외주업체와 계약하고 개발을 진행한 결과 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엄청난 돈을 투입하고도 다시 예전 프로그램을 그냥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무분별한 외주화로 인해 망가진 국내 IT업계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사례다. 이쯤에서 멈춰야 한다.

김세영 = 병원은 의료인력이 아닌 단순반복적인 업무만 아웃소싱을 허용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상을 모르는 얘기다. 파견이 전면 허용되고 있는 환자이송 업무만 보더라도 이송원들이 중증환자, 경증환자 골라서 운송할 수 없다. 실제로 내가 병원에 있을 때 환자가 이송 중에 쇼크가 와서 정신을 잃은 경우도 있었다. 내부지침상 가장 가까이 있는 간호사실에 데려가야 하지만 사전에 훈련이 안되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폐소생술을 위해 환자를 이동하는 경우에도 호흡기, 혈압체크기 등 4~5개 기계를 달고 가는데 중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소속업체가 서로 다른 직원들 간에 손발이 안 맞고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책임 소재도 애매해진다. 적어도 병동에서 일하는 인력은 파견이 전면 금지돼야 한다.

배현섭 = 우리 기업들은 법을 피하려고만 한다. 노동법을 만들어놓으면 기본취지는 어디 가고 어떻게 하면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한다. 원청 입장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하청에 모든 노동법상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책임의 외주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대기업은 책임을 떠넘기고 싶어하고, 하청업체는 위험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대기업으로부터 물량을 받아 돈을 벌고 그렇게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간접고용이 확대되고 있는 구조다. 그사이에서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회사에 아무런 애정도 없이 짧게 일하고 어느 정도 돈만 벌면 회사를 그만두려 한다. 장기적으로 기업에 경쟁력이 생길 수 없다.

- 현장에서 느낀 고민이나 대안에 대해 얘기해보자.

박권도 = 해답은 명확하다. 다만 실행이 어렵다. 첫째는 직접고용, 둘째는 다단계하도급의 제한, 셋째는 사회안전망 확충이다. 너무 당연한 것이다. 서유럽이나 북유럽에서는 이미 시행하고 있는 것들이다.

배현섭 = 대학 나와서 당장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면 ‘알바’를 할 수밖에 없는데 그 일이 장기적으로 경력에 도움이 되거나 개인적인 성장에 도움이 돼야 한다. 최소한 공장에서 소모품처럼 쓰고 버리는 식이 되어서는 안된다. 차곡차곡 올라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김세영 =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게 중요한 문제이긴 하나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행동해야만 현 상태를 바꿀 수 있다. 다들 뭔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냥 혼자만의 생각일 뿐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려는 노력은 안 한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누군가 ‘네가 능력이 없어서 그렇게 사는 거야’라고 하면 금방 움츠러든다. 노동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합의가 모아지려면 노동자들이 행동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져야 한다. 노조를 인정하고 노조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배현섭 = 정규직에 임금을 많이 올려주다 보니 비용을 메꾸려고 하청업체 노동자나 용역업체 노동자에게 그 비용의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김세영 = ‘파이를 하나 주고 너희들끼리 나눠먹어라’라는 프레임이다. 10개의 파이를 감추고 1개만 주면서 노동자 내부의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다.

박권도 = 산별노조의 교섭력 확장을 통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근로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황연정 = 대학이나 공공기관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항상 ‘유령’이 된 기분이었다. 같은 직장에 있으면서도 아무도 내 이름을 기억해주지 않았다. 남자친구를 소개할 때도 현대차, 1차 협력업체, 2차 협력업체 중 어디서 근무하느냐에 따라 반응이 확 달라진다. 주변에서는 부러우면 열심히 공부해서 너도 출세하라는 식이다. 많게는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간접고용 노동자라고 하는데 전체 인구의 절반이 있으나마나한 ‘비핵심’이라는 것이 말이 되나.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그나마 이 직장 덕에 먹고산다’고 말하는데 이제는 화를 조금 냈으면 좋겠다.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자리를 못잡고 있는 친구들도 자기가 부족해서 비루한 삶을 산다고 생각하고 끝없이 스펙 쌓기에 열중한다. 개인이 열심히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 모르지만 사회는 그렇게 열심히 사는 개인을 위해 뭘 해줄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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