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저성과자 해고

2016.03.16 21:29 입력 2016.03.30 10:18 수정

“내가 겪은 저성과자 교육은 해고용…총선서 제대로 다뤄져야”

이남현 사무금융노조 대신증권지부장

“2012년부터 대신증권에서 진행된 저성과자 해고는 정부의 저성과자 해고 지침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미리 보여준 대표적 사례입니다. 회사가 저성과자로 선정된 직원을 현업에서 배제한 뒤 산 정상에 가서 인증사진을 찍어오게 하는 것에서 저성과자 해고 프로그램의 민낯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모든 노동자는 해고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이남현 대신증권지부장이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대신증권 앞 천막농성장을 나서고 있다. 이 지부장은 지난해 10월 해고 통지를 받은 이후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50일 가까이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이남현 대신증권지부장이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대신증권 앞 천막농성장을 나서고 있다. 이 지부장은 지난해 10월 해고 통지를 받은 이후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50일 가까이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대신증권 앞 천막농성장에서 만난 이남현 사무금융노조 대신증권지부장(44·해고자)은 “4월 총선에선 저성과자 해고 지침에 반대하는 정당에 투표를 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힘주어 말했다. 전체 임금노동자 1880만명, 그 가족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지부장은 고용노동부가 지난 1월 저성과자 해고 지침을 시행하는 것을 보면서 누구보다 불안했던 사람이다. 그는 원치 않게 저성과자 해고 분야의 ‘얼리어답터’가 돼 몸소 겪었던 경험이 있다. 이 지부장은 “지침 추진 소식을 접했을 때 ‘드디어 헬조선의 문이 열렸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권자들에게 저성과자 해고라는 개념이 알려지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해 초였다. 노사정 협상 과정에서 한국노총이 “저성과자 해고 지침은 절대로 받을 수 없다”고 버티면서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이전만 해도 해고라 하면 징계해고, 정리해고(경영상 해고)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았다.

이 지부장은 대신증권이 2011년 12월 노조 파괴 컨설팅으로 악명 높은 창조컨설팅으로부터 ‘고성과 조직 구축을 위한 전략적 성과관리 프로그램 매뉴얼’이라는 용역보고서를 제출받으면서 저성과자 성과관리 프로그램과 엮이게 됐다. 회사는 이듬해 5월 이 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2012~2014년 프로그램 대상자 139명 중 40명가량이 교육 수료 전 회사를 떠났다.

프로그램 도입 당시 이 지부장은 사내연수를 담당하는 역량개발부 교육팀장으로, 회사 지시로 이 프로그램 1~2단계의 교육 콘텐츠를 직접 만든 사람이다. 그는 “처음부터 비밀스럽게 진행되기에 이상하다고 여겼다. 2012년 9월쯤 3단계 프로그램 준비 과정에서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 직원을 괴롭혀 쫓아내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부서장과의 갈등으로 다른 부서로 옮긴 뒤 오랜 준비 과정을 거쳐 2014년 1월 무노조 사업장이던 대신증권에 노조를 만들었다. 회사는 이 지부장이 국회 토론회에 참석해 회사 내부 자료인 용역보고서를 유출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등의 이유로 지난해 10월 해고 통지했다.

[응답하라 4·13  이것이 민생이슈다]① 저성과자 해고 이미지 크게 보기

프로그램 대상자 13명이 2014년 11월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체불임금 소장에는 창조컨설팅 보고서 내용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외부적으로는 저성과자의 역량교육 프로그램으로 설계하되 내부적으로는 어려운 과제를 부여해 잔류 의지를 없앤다”는 것이다. “임의적 저성과자 선정기준 설정을 통해 대상자를 선발”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3단계에선 노동자에게 모멸감을 주는 방식도 동원됐다. 임모 차장(51)은 2013년 2월쯤 산 정상에서 인증사진 찍기, 강요된 봉사활동, 우편물 분류 작업 등을 해야 했다. 회사는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져 논란이 되자 3단계 프로그램을 수정했다. 회사는 또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저성과자 퇴출에 있지 않고 창조컨설팅 보고서가 그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서울고법은 지난해 9월 이 지부장이 회사를 상대로 낸 정직처분 무효확인 소송에서 “창조컨설팅 보고서에는 성과가 낮은 직원을 퇴출하는 방안도 있으나 실제 프로그램에는 이 내용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 지부장은 “회사를 떠난 분들은 단기 일자리를 전전하고 있고 아내들도 생계 전선에 같이 뛰어들었다”며 “특히 3단계 프로그램에서 모멸감을 느끼면서 자살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는 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저성과자 해고 지침에서 해고의 전제조건으로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사평가를 꼽고 있다. 하지만 이 지부장은 “기업의 직무가 복잡다단화하면서 로빈슨 크루소처럼 노동자가 고립돼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팀제로 일하므로 특정 노동자의 성과만 따로 측정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고령 노동자, 노조 간부 등을 표적 해고하는 데 이 지침이 악용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정부는 지침이 해고 예방대책이라고 하지만 기업들은 ‘쉬운 해고 사인’으로만 받아들일 것”이라고 했다.

이 지부장은 “성과주의 인사체계가 노동자 간 경쟁 유도, 저성과자 해고로 인한 인건비 감축 등으로 회사에 단기적 이익을 줄 순 있다”며 “하지만 국민경제 입장에서 볼 때 지나친 성과주의에 대한 집착은 노동자 간 협업을 해쳐 되레 효율성을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과 달리 해고 이후의 삶을 받쳐주는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한국 사회에서 쉬운 해고의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는 성과주의 문화는 사라져야 한다”며 “20대 총선이 저성과자 해고 문제를 제대로 거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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