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고용·임금’ 논의 올인하다 취약계층 점점 소외

2020.06.17 21:35 입력 2020.06.17 21:36 수정

‘사회적 대화’가 놓치고 있는 것

쟁점 5가지로 줄여 협상 ‘속도전’…실행 가능성은 ‘글쎄’
“정부, 고용보험료율 인상 등 노사 합의 통해 고용안정을”

코로나19 고용위기 극복을 위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가 ‘빈 구호’에 발이 묶였다. 노동계가 ‘임금 동결 혹은 삭감’에 동의해주면 경영계는 ‘총고용 보장’을 해주는 식으로 양보안을 주고받는 것이 합의 도출의 핵심 과제처럼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합의는 이뤄진다 한들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고, 오히려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노동 취약계층에게 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지금 코로나19 취약계층에게 필요한 것은 ‘상징적 선언’ 수준의 노사정 합의가 아니다. 고용보험료율 인상 등 안전망 확대를 위한 노사의 결단을 양분 삼아 정부가 보다 책임 있는 고용안정의 큰 틀을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코로나19를 계기로 21년 만에 성사된 완전체 사회적 대화가 18일 총리 주재 대표자 회의로 전환점을 맞는다. 그간 노사정은 쟁점을 5가지로 압축했는데 최대 쟁점으로는 ‘고용유지를 위한 정부 지원 및 노사 협력’이 떠올랐다.

노동계는 ‘총고용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경영계는 임금삭감 내지 동결을 의미하는 ‘임금조정’을 내세웠다. 결국 노사의 공방은 ‘고용’과 ‘임금’의 교환, 더 나아가서는 ‘노동계가 임금을 양보할 수 있는가’로 압축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위기 상황을 ‘고용보장’과 ‘임금조정’으로 잠재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나온다. 통계청의 5월 고용동향을 보면 실업자 수는 127만8000명으로 집계됐다. 상용노동자가 39만여명 증가하는 동안, 임시·일용직 노동자는 65만여명 감소했다. 일자리 100만개 이상은 이미 사라졌고 고통은 취약계층 노동자에게 집중됐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코로나19 이후의 사회적 대화를 ‘전통적 노사관계 패턴(고용과 임금의 교환)’으로 진행하는 게 맞느냐”며 “그사이 해고된 사람들에게는 (고용유지를) 적용할 방법도 없다”고 했다. 이미 일자리를 잃은 100만명에게는 총고용 보장이 공허한 구호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설령 합의가 이뤄진다 해도 고용보장과 임금조정의 집행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기업별 노조가 중심인 한국 상황에서 임금 협상의 주체인 개별 사업장에 임금삭감 수용을 강제할 방도는 없다. 게다가 주요 대기업은 이미 올해 임금협상을 마친 상황이다. 오히려 기대와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정규직·공공부문 중심으로 임금을 조정해 기업의 여력을 확보하자는 취지와 달리, 사용자에 대한 대항력을 갖추지 못한 취약계층 노동자에게 ‘임금조정’의 파고가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이 때문에 논의의 초점은 취약계층 노동자들이 새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고용안전망 확립에 맞춰져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조사한 결과, 회사가 해고·권고사직·희망퇴직을 요구할 경우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면 수용하겠다’는 응답이 46.3%로 ‘거부하겠다’(29.0%)는 답변보다 많았다. 그러나 5월 기준 전체 취업자 2693만명 중 고용보험 가입자는 1382만명에 불과하다. 고용보험 가입대상인 임금노동자(2024만명)만 놓고 봐도 가입률은 70%에 미치지 못한다. 한시적 안전망이라도 마련이 시급하다.

예산과 정책을 관장하는 정부가 사회적 대화를 노사의 ‘주고받기’에만 맡기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이대승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장은 “‘고용보장’이라는 것은 노동계의 이익이 아니고 공동체의 이익인데 참여 주체가 서로 더 많이 가져가려는 협상의 형태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며 “정부가 모든 것을 책임져서 안을 만들고 그 안을 노사에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과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도 “임금과 고용이 거래되는 프레임은 낡은 것인 데다 실효성도 없다”며 “노동계가 고용보험료율 인상을 언급했듯이 사용자도 상응해서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내놓아 정부에 재정 집행의 명분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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