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뭘 하든…북한의 ‘마이웨이’

2020.06.14 20:57 입력 2020.06.14 22:23 수정

뉴스분석 - 위기의 남북관계

<b>한반도 평화…</b> 북한이 남측과의 “확실한 결별”을 선언하고 무력대응에 나설 것임을 시사하면서 남북관계가 위기에 몰린 14일 판문점으로 가는 길목인 경기 파주시 통일대교 입구에 차량을 통제하는 바리케이드가 놓여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한반도 평화… 북한이 남측과의 “확실한 결별”을 선언하고 무력대응에 나설 것임을 시사하면서 남북관계가 위기에 몰린 14일 판문점으로 가는 길목인 경기 파주시 통일대교 입구에 차량을 통제하는 바리케이드가 놓여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북한이 남측과 “확실한 결별”을 선언하고 무력대응에 나설 것임을 선언하면서 남북관계가 파국위기에 몰렸다. 정부가 전단 살포 문제에 강경 대응하고 있음에도 북한은 “대적 행동을 결행할 것”이라며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 2년간 이룬 남북 간 신뢰구축 성과와 평화체제에 대한 기대가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은 지난 13일 담화에서 “이제는 연속적 행동으로 보복해야 한다”며 “확실하게 남조선 것들과 결별할 때가 된 듯하다”고 밝혔다.

전단 살포 제지 등 대책 발표해도
북 “확실한 결별” “무력 행동” 엄포
24시간 동안 ‘3차례 비난’ 쏟아내
남측에 여지 안 주고 계획대로 진행
체제 불신 위기 속 내부 결속 의도

김 제1부부장은 “곧 다음 단계의 행동을 취할 것”이라면서, “머지않아 쓸모없는 북남 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대적 사업 연관부서들에 다음 단계 행동을 결행할 것을 지시했다”며 “대적 행동의 행사권은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조만간 9·19 남북군사합의를 파기하는 무력 행동에 나설 것임을 사실상 선포한 것이다.

장금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도 12일 밤 “남한 당국에 대한 신뢰가 산산조각 났다”며 “이제부터 흘러가는 시간들은 남조선 당국에 참으로 후회스럽고 괴로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장 부장은 11일 청와대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에서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엄정 대응 방침을 밝힌 것을 거론하며 “자기가 한 말과 약속을 이행할 의지가 없고, 무맥무능했기 때문에 북남관계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라면서 평가절하했다.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도 14일 오후 담화를 내고 외교부가 ‘북·미 대화의 조속 재개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데 대해 “비핵화라는 개소리는 집어치우는 것이 좋다”며 “조미(북·미) 사이의 문제, 핵 문제에 있어 논할 신분도 안 되는 남조선 당국이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를 치는데 참 어이없다”고 비난했다.

북한이 24시간 동안 3차례나 담화를 쏟아내며 우리 정부 입장에 즉각 대응하고 있는 것은 남측에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정부가 ‘대북 저자세’라는 비난을 감수하고 북측 문제 제기에 호응하고 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획한 수순대로 가겠다는 의미다.

북한이 표면적으로는 최고지도자를 비난한 전단을 문제 삼고 있지만, 그 속내에는 북·미 협상의 장기 교착에 대한 불만과 대북 제재의 틀을 뛰어넘지 못하는 남측 정부에 대한 실망, 코로나19 위기를 무마하기 위한 내부 결속 필요성 등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내외에 걸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남측을 ‘적’으로 삼아 의도적으로 긴장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약한 고리’ 남측 상대 벼랑 끝 전술 구사…트럼프 압박하려는 의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세 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신뢰를 쌓고 문 대통령에 기대 미국과의 핵 협상에 나섰음에도 하노이 회담이 결렬되면서 누적된 실망감과 배신감이 폭발하는 양상이라 할 수 있다. 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과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북·미 협상을 외면하자 ‘약한 고리’인 남측을 상대로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해 트럼프 대통령이 움직이도록 압박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노동당 창건 75주년인 올해 김 위원장은 약속했던 경제적 성과를 보여줘야 하지만 대북 제재는 그대로이고 코로나19까지 불거지면서 내부 사정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북한 주민들의 반발이 체제 불신으로 이어질 것에 대한 위기감도 북한이 강경 모드로 선회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북한이 문재인 정부의 성과로 꼽히는 사안들을 모두 무위로 돌리겠다고 경고하고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까지 철거에 나설 것임을 시사하면서 문재인 정부가 지난 2년간 쌓아온 남북관계의 성과물도 빛이 바래게 됐다.

정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현재로선 상황 타개의 여지가 보이지 않아서다. 청와대는 이날 새벽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긴급 화상회의를 개최했다. 회의 후 통일부는 “정부는 현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한다”며 “남과 북은 남북 간 모든 합의를 준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방부도 “우리 군은 모든 상황에 대비해 확고한 군사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입장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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