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엔 ‘건폭’, 교섭엔 ‘공갈’ 딱지…몰아친 정부 책임론

2023.05.03 06:00 입력 2023.05.03 06:01 수정

건설 현장 일용직 절규, 왜

<b>경찰 규탄하는 노조원들</b> 강원 춘천시 동내면 강원경찰청 앞에서 2일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 조합원과 시민단체 활동가 등이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간부의 분신이 정부와 검찰·경찰의 노조 탄압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 규탄하는 노조원들 강원 춘천시 동내면 강원경찰청 앞에서 2일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 조합원과 시민단체 활동가 등이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간부의 분신이 정부와 검찰·경찰의 노조 탄압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고용 불안정·불법 하도급 등 건설업계 현실 고려 않고
조합원 채용·전임비 지급 등 요구를 ‘협박’으로 몰아가
“일방적 주장만으로 노조의 정상적 교섭 자체를 범죄화”

노동절인 지난 1일 노조 활동에 대한 검찰 수사에 항의하며 분신한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간부 A씨(50)가 2일 오후 숨졌다. 노동계는 정부가 건설노조를 무리하게 탄압했기 때문에 일어난 죽음이라며 규탄했다. 조합원 채용과 전임비 등은 건설 현장의 실상에 맞는 요구사항인데, 정상적인 교섭에 ‘공갈’ ‘협박’ ‘건폭’ 등 꼬리표를 붙이며 과도하게 몰아갔다는 지적이 나온다.

A씨는 영장실질심사를 앞둔 지난 1일 오전 강릉시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A씨는 서울의 화상전문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경찰과 검찰은 A씨와 지부 관계자들이 강원지역 건설 현장 업체들과 교섭하며 소속 조합원의 채용과 노조 전임자 활동비 지급을 요구한 것을 ‘공갈’로 판단하고 수사를 벌여왔다.

“일용직이 대다수…당연한 요구”

노동·법률 전문가들은 수사기관이 건설노조의 정상적인 노조 활동에 대해 무리하게 범죄 혐의를 씌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건설업계 특성상 노조의 주된 요구는 ‘조합원 채용’과 ‘전임비’ 등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일용직인 건설노동자들은 1년에도 여러 차례 고용과 실업을 반복한다. 지난해 통계청과 건설근로자공제회의 조사결과를 보면 건설노동자 87.4%가 일용직 고용으로, 94.3%는 평균 근속기간이 1년 미만이었다.

팀장(오야지) 등을 통한 불법하도급 관행도 여전하다. 이 같은 일용직·불법하도급 구조는 건설노동자들의 고용불안과 저임금, 과로 등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건설노조가 ‘초기업 노조’ 성격을 갖고 각 현장에서 업체에 조합원 채용을 요구하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건설노조는 기업별 노조가 사측과 교섭하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에 현장이 섰을 때 해당 지역 지부가 현장 전문건설업체와 교섭을 한다. 조합원들이 개별 기업에 상시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고용이 주된 요구가 될 수밖에 없다.

강한수 민주노총 건설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건설노동자들은 1년에 많게는 5~6번 실업과 고용을 반복한다”며 “고용을 요구하지 않으면 가족들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는데, 그게 불법이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라고 밝혔다.

건설노조가 요구하는 ‘노조 전임비’도 현장이 몇 년씩 지속하지 않는 업계 특수성에 따른 요구라는 게 노동계의 설명이다. 고용노동부 장관 고시에 따라 조합원 99인 이하의 노조 전임자는 연 2000시간의 유급 타임오프(노동시간 면제)를 보장받는다. 하지만 건설현장 특성상 노동자와 연 단위로 계약을 맺는 경우가 거의 없고, 현장에서 노동자를 빼기도 어렵다. 그래서 건설업계 노사는 일반적인 타임오프를 운영하는 대신 전임자에게 통상 월 40시간에 해당하는 전임비를 지급하는 관행을 만들었다.

직장갑질119 대표 권두섭 변호사는 “건설 노사가 나름 합리적 기준을 만든 것”이라며 “수사기관과 법원이 이런 실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상시 고용이 가능한) 기업의 타임오프만 생각하고, 갈취라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수사기관, 노조 싸잡아 범죄 몰아”

정부가 노조의 교섭 자체를 범죄화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사 간의 교섭은 요구 조건을 둘러싸고 양측의 줄다리기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노조 측에만 ‘협박’ ‘공갈’ 등의 혐의를 붙인다는 것이다. 건설현장에 ‘노조 간판’만 달고 범죄에 가까운 행위를 하는 이들이 일부 있다는 이유로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노조까지 엮어 몰아세우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제시하는 증거 대부분이 ‘협박받았다’는 업체 관리자의 주장뿐”이라며 “교섭에서는 사측도 협박을 하는데 (노조 측만)공갈 강요로 몰아가고 있다”고 했다.

강 부위원장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며 노가다로 천대받던 건설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한 뒤, 노조법상 보장된 임단협을 통해 최소한의 임금인상과 휴식권 등 노동조건을 조금씩 만들어갔다”며 “조합원 한 명이라도 더 나은 조건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투쟁한 것에 대해 파렴치한 공갈갈취범이라고 하는 것을 (A씨는)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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