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젊은 공무원의 죽음

민원에 치이고 상사에게 혼나고···벼랑끝으로 몰리는 신입

2024.06.16 15:12 입력 2024.06.17 08:58 수정

지난 1월2일 임용된 남양주시 신임 공무원 A씨(31)는 첫 출근 직후부터 개발 인허가 업무를 담당했다. 과도한 업무량과 스트레스로 힘들어했다. 임용 한 달쯤 지나 교육을 받기 위해 잠시 업무에서 벗어났는데, 복귀한 지 이틀 후인 지난 3월20일 목숨을 끊었다. A씨가 생전 휴대전화에 남긴 유서 형식의 메모에는 “업무가 많아 힘들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A씨 사례는 신임 공무원이 겪는 업무환경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대기업 신입 사원들이 받는 2~3주가량의 신입 교육은 지방직 공무원들에게는 먼 일이다. A씨와 괴산군청에서 일하다 숨진 최모씨 같은 지방직 공무원은 대부분 별다른 교육 과정 없이 바로 현업에 투입된다.

부산의 한 지자체에서 일하는 2년 차 공무원 B씨(31)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임용 직후 전임자였던 7급 공무원이 하던 업무를 맡았다. ‘공문에 쓰는 문장은 띄어쓰기를 두 번 하고 쓴다’는 식의 형식적 교육이 전부였다.

B씨는 “첫 근무 전 주말에 전임자와 만나 두 시간 정도 인수인계를 하고는 바로 실전이었다. 전임자는 쏟아내듯 (업무를) 물려주고는 갔다”며 “이 사정을 모르는 민원인들은 ‘무능하고 멍청한 공무원’ ‘그것도 못하냐’며 폭언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는 이 무렵 수치심과 부끄러움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고 말했다.

민원에 치이고 상사에게 혼나고···벼랑끝으로 몰리는 신입[어느 젊은 공무원의 죽음]

해마다 가팔라지는 ‘탈공무원’ 추세는 신임 공무원에게 과중한 업무가 주어지는 현상과 연관돼 있다. 재직 기간별 공무원 일반퇴직 현황을 보면, 2019년 6500명 수준이던 5년 차 미만 퇴사자는 지난해 1만3566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비교적 직장 생활에 안정을 찾는 5~7년 차 퇴사자 수도 같은 기간 684명에서 2050명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주된 퇴사 이유는 열악한 처우와 과도한 업무 부담이었다. 퇴직자 증가는 남은 이들의 업무량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공무원 퇴직을 유발하는 악순환의 동력이 된다. 그 공백을 메우면서 신임 공무원 개인이 짊어지는 업무 부담이 급증하고, 연이은 신입 직원의 비극적 사건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과중한 업무에 지친 신임 공무원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은 과도한 질책 등 ‘직장 내 괴롭힘’이다. 업무에 서툰 데다 할 일은 많으니 처리 속도가 늦을 수밖에 없다. 가르칠 기회도, 기다릴 여유도 없는 상사의 질책은 쉽게 업무적 허용 범위를 넘게 된다. 인사이동 범위가 제한적인 지방직 공무원은 직장 내 괴롭힘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박중배 전국공무원노조 대변인은 “과거 공무원은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선호하는 업종이었지만, 이제는 아무런 메리트가 없는 기피 업종”이라며 “젊은 공무원들이 계속 떠나면 민원 서비스의 질이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효성 있는 대책이 없으면 그 피해는 국민의 몫”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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