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카지노는 지금…다 털리고 자살

2002.05.01 18:51

지난달 26일 밤 11시. 강원 정선군 고한읍 함백산 자락에 환한 불빛을 드리운 강원랜드 카지노는 또 만원사례를 기록했다. 1층 내국인 전용 카지노에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 없었다.

이곳 직원은 “약 2,500여명 정도 입장했다”고 말했다. 1,500여평의 공간. 1인당 채 1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사람들은 ‘게임’에 몰두했다.

블랙잭, 룰렛 테이블에서 딜러의 손놀림을 주시하는 사람들의 눈은 충혈돼 있었다. 이들에게서 강원랜드가 표방한 ‘삶의 여가’는 찾기 힘들었다. 40대 초반의 한 여성은 슬롯머신 앞에서 은행통장을 펼쳐 놓고 담배를 연신 피워대며 “되는 대로 다 보내봐. 아 글쎄, 빨리 보내기나 해”라며 수화기 건너편 상대방에게 입금을 독촉했다.

카지노 안 화장실에서는 20대 초반 남성이 코피를 쏟고 있었다. ‘머리를 감지 마시오’라는 경고문구가 붙은 세면대 앞에서 이모씨(21·서울)는 “4백만원을 잃었는데 꼭 본전을 뽑고 갈 것”이라며 콧구멍에 휴지를 틀어막고 문을 나섰다. 수백만원 정도는 이곳에서 잃은 돈 축에도 못 낀다고 한다.

‘잭폿’의 짜릿한 성공담보다는 ‘쪽박’과 ‘패가망신’이라는 음울한 이야기로 뒤덮인 이곳에 올해도 자살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3월 말 공군대위 고모씨(33)가 부근 골프장 건설현장의 지게차에 목매달아 숨졌다. 고씨의 소지품에서 1천3백10만원 상당의 전당포 매출전표가 나왔다. 경찰관계자는 “딸아이 병원비 때문에 카지노를 찾았다가 다 털린 것 같다”고 전했다.

(주)강원랜드가 밝힌 지난해 입장객은 89만9천5백90명. 하루 평균 2,500여명이 찾아와 1인당 51만원을 썼다. 총매출액은 4천6백20억원. 이 덕분에 강원랜드의 수익증대와 도내 지자체의 세수 증대는 가져왔지만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취지는 장밋빛 약속으로 그치고 있다.

특히 ‘카지노의 고장’ 고한읍 주민 대부분은 ‘아무런 혜택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최종대씨(66·식당 운영)는 “지난해말 삼탄(삼척탄좌) 폐광 이후 손님이 반으로 준 데다 그나마 오는 카지노 손님들은 돈 다 털리고 빈깡통으로 와 밥값 떼먹고 도망가기 일쑤”라고 말했다. 고용 증대에 대해서도 주민들은 “강원도 전역에서 한 300여명 가량 뽑았지만 3분의 2 이상이 용역 업체 소속”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나마 장사가 되는 것은 전당포, 숙박업소, 몇몇 대형 음식점. 101개 업소 중 전당포는 28개. 하지만 대부분 외지인이 운영한다.

읍내 약국의 한 약사는 “돈 잃은 사람들은 십중 팔구 신경안정제를 찾는다”며 “한맺힌 사람들, 도둑질하는 사람들 때문에 분위기가 삭막해졌다”고 말했다. 3월 중순에는 6천만원을 잃은 한 영어강사가 전당포에서 강도질을 하다 붙잡혔다.

이날 오전 고한읍 주민 20여명은 읍사무소에서 “카지노가 생긴 뒤 도둑놈만 들끓고 아무런 혜택이 없다”며 한풀이성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고한역 앞 읍내 중심가에는 하루 온종일 인적이 드물었다. ‘도박은 당신과 가정을 파괴합니다’가 적힌 플래카드가 을씨년스럽게 펄럭거렸다.

〈특별취재팀〉

추천기사

기사 읽으면 전시회 초대권을 드려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