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사장 “파병결정후 석방협상 악화”

2004.07.01 18:36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은 1일 기자회견을 갖고 김선일씨 피랍과 관련, 확인시기·석방협상·현지 대사관과 미군측 통보 여부 등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나 김사장의 회견에도 불구, 핵심 의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金사장 “파병결정후 석방협상 악화”

◇김사장이 밝힌 전말=김선일씨는 지난 5월31일 오전 11시쯤 운전사이자 경호원인 현지인 한 명과 함께 매장의 물품을 운반하기 위해 검은색 GMC 트럭을 타고 이라크 팔루자의 부대로 출발했다.

이후 김씨는 부대로 돌아오지 않았고 연락도 두절됐다. 김사장은 다음날부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현지 직원을 시켜 팔루자 인근 도로와 병원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평소 알던 미군 거래업체 AAFES 소속 미국인 매니저에게 피랍여부 확인을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 6월10일 현지인 직원 2명은 무장세력 일원으로부터 김씨로 보이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왔고, 김사장은 현지 변호인을 통해 무장세력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15일 변호사는 김씨를 납치한 무장세력 고위간부와의 접촉에 성공했고, 이틀 후 그들을 만나 “풀어줄 것이다.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다. 특별한 석방 요구조건도 없었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이라크 파병 공식 결정이 이뤄진 18일부터 상황은 갑자기 악화됐다. 19일부터 무장세력과의 전화연락이 두절됐다. 무장세력은 20일 현지인 변호사에게 “상황이 어려워졌다”는 통보를 해왔다. 회사 일로 모술에 출장을 갔던 김사장은 21일 한국대사관으로부터 김씨 살해위협을 알리는 알자지라 방송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바그다드로 돌아온 김사장은 22일 변호사로부터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고 파병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는 보고를 받았고, 몇 시간 후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팔루자에서 35㎞ 정도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여전한 의혹=우선 김사장이 한국 대사관에 김씨 피랍 내용을 전혀 알리지 않은 이유가 명쾌하지 않다. 김사장은 “일단 김씨 소재를 먼저 파악하고 싶었다. 대사관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협상이)계속 긍정적 분위기라고 해서 잘 될 것으로 믿었다”고만 설명했을 뿐이다. 특히 자신이 상황이 악화된 것으로 판단한 19일 이후 알자지라 방송이 나올 때까지, 또 그 이후에는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살해위협이 나온 상황에서조차 김선일씨의 안전을 위해서라거나, 대사관에 부담을 안 주려고 했다는 것은 설득력있는 이유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사관이 김씨 사건을 자체 파악했을 가능성도 여전히 제기된다. 김사장도 이날 회견에서 대사관이 교민사회에 파다했던 김씨 피랍 사실을 알자지라 방송 이전에 몰랐었겠느냐는 질문에 “그것은 나도 좀…”이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일단 대사관에 알리지 않았다”고 답했다.

또 김씨가 피살의 위기에 몰린 급박한 상황에서 매장을 옮기는 일을 하기 위해 모술로 출장을 간 부분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에 김사장은 “(모술쪽에서) 여러번 올라오라고 했는데 김선일씨 문제 때문에 많이 늦춰져 불가피하게 올라가게 됐다”고 말했다.

〈박영환기자 yhpark@kyunghyang.com〉

-金사장 일문일답-

김선일씨 피살 진상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은 1일 기자회견을 통해 “처음 협상이 잘 진행돼 대사관에 피랍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며 “협상과정에서 무장단체의 요구사항은 전혀 없었으며 납치한 무장단체는 하나”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왜 대사관에 실종 및 피랍사실을 알리지 않았나.

“협상을 회사가 직접 했고 긍정적인 분위기라서 잘 될 것으로 믿었다. 석방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알리지 않았다.”

-원청업체인 AFFES에만 알린 이유는.

“우리가 김씨 실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군무원 매니저 짐(Jim)에게 알렸다. 하지만 도와주기 어려우니 우리가 노력해서 찾아보라는 답변을 들었다. 미군과 AFFES는 관련이 없다.”

-(추가파병 결정이 난) 18일 이후에도 협상했나. 무장단체의 요구사항은 무엇인가.

“그쪽으로부터 19~20일쯤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 우리도 당황했다. 비협조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요구사항은 전혀 없었다. 본래 이라크 사람은 한국 사람에게 우호적이고 협상과정에서도 큰 어려움 없이 잘 진행되고 있었다. 처음 납치 목적은 한국사람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피랍시점에 대해 처음과 이야기가 달라진 이유는.

“당시 바그다드에 없었고 갑자기 방송이 터져나와 무척 당황했다. 언제 피랍됐는지 여부를 정확히 몰라 임의대로 말했다가 나중에 대사관에 정확히 알렸다.”

-교민들 사이에 피랍사실이 한동안 알려져 있었는데, 대사관이 간접적으로 알 수 있지 않았나.

“그런 소문은 없었다. 이라크에는 코이카·대사관 직원뿐 교민이 없다.”

-납치단체가 다르고 몸값 협상이 잘 안돼서 알 자르카위로 넘어갔다는 설은.

“그건 여러 사람의 추측일 뿐이다. 과연 직접 그 단체들을 만나거나 취재해서 그런 얘기가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김선일씨와 같이 납치됐다가 사흘 후에 풀려났다는 이라크 운전사의 행방은.

“운전사가 풀려나 바그다드 시내에 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김준일기자 ant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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