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아 ‘성장역사’ 담아주기

2005.11.01 18:22

곳곳에 흩어진 예쁜 색종이와 색연필, 사인펜. 아이 사진 옆에 붙여진 해, 달, 별 모양의 스티커는 사랑스러운 얼굴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 울음을 터뜨리는 아기들과 한 자리에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 때문에 가끔은 소란스럽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며 그림을 그리는 부모들의 손은 분주하기만 하다.

서울 동교동 동방사회복지관에서 1일 국내외 양부모들이 입양아들과 함께 ‘라이프 북’을 만들고 있다. /박민규 기자

서울 동교동 동방사회복지관에서 1일 국내외 양부모들이 입양아들과 함께 ‘라이프 북’을 만들고 있다. /박민규 기자

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동방사회복지회에선 벽안의 외국인 어머니와 한국인 부모들이 한 자리에 모인 이색 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해외 입양아를 위한 ‘라이프 북(life book)’ 만들기 모임이었다.

라이프 북이란 아동의 입양 과정을 사진과 함께 예쁘게 꾸미는 일종의 성장 앨범. 태어날 때 상황부터 입양기관의 보호를 받게 된 사정, 입양된 사연, 입양부모가 아이에게 보내는 사랑의 말들이 가감없이 담긴다. 나중에 입양아들이 성장했을 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고, 입양 부모들이 자신에게 보내는 사랑을 확인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라이프 북에는 입양아는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 아이를 원하는 가정에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이란 메시지가 책장마다 가득하다.

한국 아이 3명을 입양해 키우면서 미국 현지에서 입양 아동 돕기 활동을 벌이고 있는 비벌리 아인직(57). 그는 일찌감치 보급된 미국의 라이프 북 문화를 알려주기 위해 입양모 8명, 입양인 3명으로 구성된 ‘핸드 인 핸드 투어’ 자원봉사단을 이끌고 내한했다. 아인직은 “입양인들은 자신의 삶이 시작된 지점에 대해 궁금해 한다”며 “라이프 북은 가족의 사랑을 1권의 책으로 알려줌으로써 서로간의 사랑을 돈독하게 한다”고 말했다.

두 딸을 입양한 박현숙씨(38)는 “입양 전에는 주위의 편견 때문에 두려움이 있었지만, 막상 입양하니 누군가를 이보다 더 사랑할 수는 없을 것 같다”며 “라이프 북을 통해 아이가 성장한 후에도 자신을 더욱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입양기관을 통해 국내에 입양된 아이의 수는 지난해에만 3,899명에 이른다. 이 중 25%가 주위 사람들에게 입양 사실을 알리는 공개 입양이다. 복지회 관계자는 “라이프 북은 정체성 위기를 느끼는 입양아들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함으로써 혼란을 최소화하는 데 매우 유용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백승찬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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