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대상 김옥균씨 “딸이란 이유로 못배운 恨 이제야…”

2005.11.01 18:22

딸이라는 이유로 학업을 포기했다 40여년 만에 늦깎이 중학생이 된 50대 주부가 자신이 겪은 아픈 기억들을 담은 수기를 냈다.

광주의 평생교육시설 진명중학교 학생 김옥균씨(58)는 1일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학교 연합회’ 주최로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수기 공모전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진솔하게 적은 글 ‘내년에 보내주마’로 대상을 받았다.

김씨는 수기에서 “40여년 전 초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오빠들처럼 나도 당연히 중학교에 갈 줄 알았다”며 “하지만 ‘계집애를 무슨 중학교에 보내냐’시던 할머니 때문에 공부를 접어야 했다”고 밝혔다.

당시 김씨 부모는 어른의 말을 거스를 수가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집안의 7대 종손이었으며, 그의 집은 김씨 8남매는 물론 사촌들도 모두 모여 사는 ‘뼈대 있는’ 종가였다.

책 읽기를 좋아한 김씨는 오빠와 동생들의 교과서, 심지어 어머니가 생선을 사올 때 쌌던 비린내 나는 신문까지 모조리 읽곤 했다.

하지만 “내년에는 (중학교에) 보내주마”던 어머니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김씨가 “왜 나를 딸로 낳았어? 아들로 낳지”하며 투정부릴 때 어머니는 딸과 함께 눈물만 흘렸다.

그의 초졸 학력은 맞선 때마다 거절 사유가 되는 등 김씨를 두고 두고 괴롭혔다.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속이고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김씨는 “남편을 속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결혼 몇년 뒤 사실을 어렵게 고백했다”면서 “남편은 한참 혼자 생각한 뒤 ‘여보 기운 내, 당신 학력을 고졸로 인정하지’라며 오히려 위로해줬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30여년이 흐른 뒤인 6개월 전쯤 남편은 김씨의 손을 잡아 끌고 진명중학교로 향했다.

당시 남편은 “기회가 되면 언제든 당신을 학교에 보내주리라고 당신이 학력을 고백한 날 결심했다”며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당신에게 주는 상”이라고 말했다.

40년 만에 다시 시작한 공부는 쉽지 않았다. 수학 공식도, 밤새 외운 영어 단어도 아침에 일어나면 모두 잊어버렸다. ‘혹시나 나를 알아보는 학생은 없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러나 여섯 달이 지난 지금은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과 함께 자판기 커피를 나눠 마시며 수다를 떨 정도가 됐다.

김씨는 “살림을 맡을 테니 공부에 전념하라는 남편과 엄마 힘내라며 공부를 도와주는 세 아이들을 위해, 그동안 배우지 못해 아팠던 모든 기억들은 옛날로 묻어두고 최선을 다하련다”고 글을 맺었다.

〈장관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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