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관이 저작권 침해 물의

2007.03.01 18:23

국가기관이 저작권 침해 물의

경기 양평에서 국악음반박물관을 운영하는 노재명씨(38)는 지난해 3월 우연히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다가 깜짝 놀랐다. 자신이 20여년간 쌓아온 자료가 인터넷의 각종 포털사이트에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추적해보니 정보통신부가 운영하는 국가지식포털(www.knowledge.go.kr)에는 국악음반박물관 자료 1만여건의 원문까지 떠 있었다.

이 자료들은 국악음반·국악기·국악 관련자료의 소개와 해제 등으로 그가 엄청난 노력과 비용을 들여 구축한 것. 그러나 국가 포털사이트에 올라가기 전 해당기관으로부터 어떤 사전통보나 동의절차도 받지 못했다. 더구나 국악음반박물관을 원문제공기관으로 명시해놓고 파란, 엠파스, 네이트 등 상업사이트들과 업무제휴를 맺어 원문자료를 여기저기서 사용할 수 있도록 돼 있었다. 그럼에도 원문은 중간에서 잘리거나 맞춤법·띄어쓰기마저 돼 있지 않아 오히려 국악음반박물관의 이미지를 훼손할 정도였다.

이 사실을 안 그는 국가지식포털을 구축, 운영하고 있는 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정보문화진흥원과 이 자료를 제공한 문화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정보센터에 지난해 6월부터 8개월에 걸쳐 항의했다. 그러나 국가기관은 그의 문제제기에 성의있게 대응하지 않았다. “원문 제공기관을 밝혔고 공익 목적이니 문제될 것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참다못한 그가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진정서를 넣자 지난달 초 두 기관은 그의 자료를 데이터베이스에서 아예 삭제했다. 그는 지난달 14일 서울중앙지검에 저작권법 위반으로 주무부처인 정보통신부를 고소했다.

국가기관이 저작권 침해 물의

이는 국악음반박물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남미문화원, 푸른아우성, 한국독립영화협회, 민족문학작가회의, 고구려연구회, 방송사료관 등 수백개 민간기관의 자료가 국가지식포털에 올라있지만 이들 역시 어떤 사전통보도 받지 못했다. 성상담 전문가인 구성애씨가 운영하는 푸른아우성의 경우 사이트를 통한 개인의 성상담 내용까지 국가지식포털을 통해 유포되는 형편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명백한 저작권법 위반이라고 지적한다. 이대희 성균관대 법학과 교수는 “해당기관의 자료가 저작물이냐 하는 문제는 따로 검토해야 하지만 일단 저작물이라고 할 때 사전동의 없이 포털사이트에서 단순 링크가 아닌 원문을 올리는 행위는 저작권법상 복제권과 전송권 위반”이라고 밝혔다.

국가기관이 저작권 침해 물의

정부는 올해 저작권법 제정 50주년을 맞아 캠페인과 학술대회 등을 개최하며 저작권 보호를 대대적으로 강조해왔다. 그런 정부가 스스로 어이없는 저작권 위반행위를 한 것은 시스템상의 허점과 사이트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욕심도 있지만 무엇보다 안이한 인식 때문이다.

1999년부터 구축된 국가지식포털은 국가기관과 주요 민간기관의 지식정보를 공유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이곳은 문화, 해양, 역사, 산업, 과학, 교육, 정보통신 등 11개 하위포털로 이뤄져 있으며 각각의 하위포털은 한국문화정보센터 외에도 국사편찬위원회, 정보통신연구진흥원, 한국교육학술정보원 등 해당 부처별 산하기관이 개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당초 이 포털은 각각의 하위포털을 연계해주는 방식으로 운용됐다. 그러나 검색속도가 느리고 이용자가 늘지 않자 직접 데이터베이스를 가져왔고 2005년부터는 요약보기 형태로 사실상 원문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러나 정부가 직접 구축한 데이터베이스가 아닌 민간자료가 일부 섞여 있는데도 이를 무시한 채 원문서비스를 하면서 이같은 문제가 빚어졌다.

국가지식포털에 자료를 제공한 한국문화정보센터 문화포털미디어팀 양행진 과장은 “당초 문화포털의 검색어를 뽑는 데만 쓰기 위해 민간기관의 원문을 가져왔는데 이 자료가 국가지식포털에 들어가 원문으로 검색되면서 저작권 침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감독업무를 맡고 있는 정보통신부 유비쿼터스정책팀 이상신 사무관도 “요약정보의 수집과정에서 사전동의 절차를 거치지 못한 점을 확인했다”고 인정했다. 일단 많은 자료를 확보하고 이용도를 높이자는 방침 때문에 저작권 문제를 소홀히한 것이다.

노재명 관장은 “정부기관뿐 아니라 국회 과학기술정보조사위원회에도 질의했으나 대개 국악음반박물관 자료가 홍보되니까 오히려 좋지 않냐고 할 뿐 저작권에 대한 인식은 거의 희박했다”고 말했다. 그는 “박물관 운영이 너무 어려워 국가지원을 받아보려고 했다가 절차가 너무 까다로워 포기한 적이 있다”면서 도움을 주기는커녕 아무렇지도 않게 자료를 가져가는 정부를 비난했다.

〈한윤정기자 yjh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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