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24시간 가동 “밥 먹을 시간도 없어요”

2009.09.01 01:49

‘신종플루 특수’ 체온계·마스크 공장 르포

구매자들 직접방문 주차장 문전성시

“주문 하도 밀려 연말공급도 장담못해”

31일 오후 경기도 안양의 한 전자체온계 제조공장. 굳게 닫힌 공장 문 앞에서는 체온계를 구하려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본사 5층 사무실 문에는 아예 ‘방문 사절’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었다.‘신종플루 관련, 체온계 문의로 방문해 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량을 최대한 확보해 공급해 드릴 예정이오니 내방해주신 고객님께서는 돌아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b>눈코뜰새 없는 생산라인</b> 31일 경기 안성의 한 마스크 제조 공장에서 직원이 라인에서 막 완성돼 나온 마스크를 대형 카트에 차곡차곡 쌓고 있다.  <안성 | 강윤중기자>

눈코뜰새 없는 생산라인 31일 경기 안성의 한 마스크 제조 공장에서 직원이 라인에서 막 완성돼 나온 마스크를 대형 카트에 차곡차곡 쌓고 있다. <안성 | 강윤중기자>

회사 앞 주차장은 차를 더 들이지도 빼지도 못할 정도로 만원이다. 택배회사 트럭, 전자제품 유통업체 이름이 쓰인 승합차, 학교·군에서 타고온 승용차까지…. 체온계를 사거나 수리를 받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차들이다. 시중에 체온계가 동나자 급기야 공장이 있는 본사까지 달려온 것이다.

초·중·고교에 문구류를 납품하는 김모씨는 한 중학교에서 “체온계를 구해달라”고 해 시내 의료기기 판매점을 모두 뒤졌지만 없어 공장까지 달려왔다고 했다. 9만원짜리 수입 체온계는 품절이고, 3만원짜리 국산제품도 ‘하늘의 별 따기’라고 했다. 김씨는 “잠시 기다려달라”는 회사 측 전화를 받고 2시간을 머물다 허탕을 치고 돌아갔다.

해군에서 체온계 10개를 들고 수리를 받으러 온 정모 중사는 “예하 부대에서 워낙 자주 사용하다 보니 쉽게 고장나는 것 같다. 확실히 고쳐지는 게 언제인지 내일 공장에서 연락을 받아봐야 알 수 있겠다”며 발길을 돌렸다. 건물 4층 조립공장 문 앞. 전국의 수령인 주소와 이름이 적힌 소형 택배박스 100여개가 쌓여 있었다. 공장 안에서는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 앞에 40~50대 여직원 10여명이 제품을 조립·검사했다. 한 직원은 기자의 질문에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일감이 5배는 늘었다”고 말했다.

멀리 아랍국가를 포함해 해외에서도 주문이 폭주하고 있지만 현재 출하는 국내 쪽으로 맞추고 있다고 했다. 조립라인 관리직원은 “식사도 자장면과 김밥을 배달해 때우고 있다. 이대로라면 올 추석 연휴에 하루라도 쉴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같은 시각, 경기 안성에 있는 장정산업의 마스크 제조공장. 2644㎡(800평)의 주차장에서는 지게차가 트럭에 물건을 줄지어 싣고 있었다. 이곳은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일반 소비자용 방역마스크를 만드는 곳이다. 하루 생산량의 80%를 수출해왔지만 지난 15일 국내에서 신종플루 첫 사망자가 발생한 뒤에는 대부분 국내용으로 출하하고 있다.

박상협 영업부장(37)은 “주야 2교대로 24시간 공장을 돌려도 주문량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며 “지금 주문하면 연말까지는 공급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짧은 인터뷰 중에도 그의 휴대폰은 쉴 새 없이 울렸다. 그는 “주문을 받기보다 왜 공급을 못하는지 설명해주는 것이 더 힘들다”고 말했다. 공장 안에서는 마스크 원단 두루마리가 끊임없이 기계로 빨려들어갔다. 직원이 고개를 잠깐 뒤로 돌리면 순식간에 마스크 10여장이 쌓일 정도였다. 하루 생산량만 100만개. 품질을 검사하던 박향숙 주임(44)은 “1997년부터 일했지만 이렇게 바빠보기는 처음”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생산관리과 유천수 과장(32)은 “인원을 30% 늘렸지만 추석도 쉬지 못할 것 같다”며 “신종플루 마스크가 잘 팔린다는 게 마냥 기쁜 일은 아니지만 확산 방지에 일조한다는 생각에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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