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씨 크레인서 내려온 것 말고 달라진 것 없다”

2012.06.02 13:34

6월 11일이면 1차 희망버스가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를 찾은 지 1년이 된다. 희망버스 이후 1년,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온 지 6개월이 돼가는 지금 한진중공업은 어떤 모습일까. 5월 31일 영도조선소에서 차해도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53)을 만났다. 그는 “김 지도위원이 크레인에서 내려온 것 말고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10일 김진숙 지도위원이 고공농성을 끝내고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왔을 때, 정리해고에서 비롯된 한진중공업 사태는 해피엔딩을 맞은 듯했다.

한진중공업 사태는 정리해고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연대가 정치권을 압박해 사실상의 정리해고 철회를 이끌어낸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지금의 한진중공업은 해피엔딩이라는 게 동화 속에서나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차해도 금속노조 한진중 지회장이 인터뷰에 앞서 동료들에게 전화를 하고 있다. /정원식 기자

차해도 금속노조 한진중 지회장이 인터뷰에 앞서 동료들에게 전화를 하고 있다. /정원식 기자

영도조선소는 외부와의 차단이 강화됐다. 지난해 6월 11일 1차 희망버스를 타고 영도조선소를 찾았던 이들 중 일부는 담장을 통해 조선소 안으로 진입했다. 당시 2m 높이였던 담장은 두 배 이상 높아졌다. 차해도 지회장은 “희망버스가 다녀간 후 회사가 본래 있던 담장 위에 콘크리트 담장을 쌓아올렸다”며 “요즘은 언론이나 금속노조 관계자 등 외부인들은 조선소 안으로 못 들어간다”고 말했다.

공장 가동률은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2011년 11월 이후로 작업물량이 없는 데다 유럽발 금융위기 등으로 그리스 등 주요 고객들의 수요가 위축됐다. 한진중공업은 지난해 12월 1일부터 6개월 유급휴직을 실시하고 있다. 현장은 자연스럽게 비었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인력은 전체 인력 700여명 중 150여명에 불과하다. 한진중 작업라인은 크게 일반상선과 특수선 부문으로 나뉘는데, 현재 출근하고 있는 직원들은 특수선 부문 인력들이다. “회사는 노조만 없으면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회사는 방위산업인 특수선만 유지하고 상선에서는 손을 떼려는 것 같다.”

담장 높여 외부와의 차단 강화

노조는 둘로 갈라졌다. 지난 1월 김상욱 위원장 집행부 체제의 새 노조가 출범했다. 지난해 11월 차 지회장이 한진중 지회장에 당선된 지 불과 석달 만의 일이다. 새 노조는 산업별 노조인 금속노조 한진중 지회와 별개로 설립된 기업별 노조다. 새 노조 출범 후 조합원의 80% 가까운 550여명이 새 노조로 넘어갔다. “지난해 노사합의 이후에 한진중 지회에서 임단협이나 노동조건 개선과 관련해서 한 일이 많지 않았다는 데 대한 비판도 있지만, 생계문제가 가장 큰 이유다. 7개월 동안 파업을 하고 다시 휴직을 하게 됐다. 조합원들 사이에 미래 전망에 대한 불안이 있다.

회사가 복수노조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도 했고. 이런 상황에서 새 노조가 생기고 열흘 만에 40% 가까운 지회 조합원들이 새 노조로 옮겼다.” 새 노조는 5월 25일 새 노조 현판식에서 “영도조선소의 노사문화를 회사와 노동조합이 상생협력하는 노사문화로 바꿔나가고, 조합원의 실익과 고용안정을 이루는 데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새 노조 현판식에는 강정환 부회장과 이재용 사장 등 한진중 임원들이 참석했다.

노조 둘로 나뉘면서 노사협상 중단

노조가 둘로 갈라지면서 지난해 11월 이후 노사 교섭은 사실상 중단됐다. 현재는 교섭권을 여전히 금속노조 한진중 지회가 갖고 있다. 그러나 오는 7월이면 한진중 노동자들의 압도적 다수가 속한 새 노조로 교섭권이 넘어간다. “요즘은 노조사무실에 출근을 해도 컴퓨터나 책을 들여다보는 것 이외에는 특별히 할 일이 없다.”

한진중공업 노사는 지난해 11월 합의 당시 정리해고자 94명의 1년 내 복귀, 생계비 2000

5월 31일 부산광역시 영도구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직원들이 정문 앞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 정원식 기자

5월 31일 부산광역시 영도구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직원들이 정문 앞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 정원식 기자

만원 지급, 노사간 민형사상 고소·고발 최소화를 약속했다. 생계비는 지원됐다. 그러나 정리해고자들의 11월 복귀는 전망이 불투명하다. “조선소 일이란 게 11월에 일을 시작하려면 지금 계약된 물량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회사에 남은 인력들도 일감이 부족해서 휴직을 하고 있는 상태다. 복귀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쌍용차처럼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실제로 1차 휴직자들의 복귀 예정일 하루 전인 5월 31일까지도 회사로부터 복귀 지시가 나오지 않았다. 민사상 손해배상 최소화 전망도 불투명하다. 회사는 지난해 금속노조 한진중 지회와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를 상대로 158억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했는데, 손해배상 최소화와 관련된 별다른 후속조처가 없다. “조합비가 월 400만원 들어오는데 어떻게 다 갚나. 노동조합 하지 말라는 소리다.”

정리해고자와 휴직자들은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대부분 다른 회사 비정규직이나 일용직 일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그런다. ‘한진중에서 일할 때가 편했다’고. 비정규직으로 일하니 노동강도는 세고 임금은 낮은 데다 무엇보다도 모멸감을 견디기 힘든 거다.”

22명이 사망한 쌍용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정리해고와 파업 등이 겹치면서 생긴 심리적인 상처가 없지 않다. 금속노조 한진중 지회는 2월부터 8주짜리 조합원들과 조합원 자녀들을 상대로 심리치유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6월 초에는 2차 프로그램이 끝난다. 차 지회장은 1차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심리치유는 정신적으로 큰 문제를 겪은 사람에게만 소용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1차 프로그램 참석자들의 평가를 듣고 생각이 달라졌다. 지금은 2차 심리치유 마지막주 과정을 남겨놓은 상태다. “복수노조가 되기 전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현장을 돌았다. 새 노조가 생긴 후에는 지회 사람은 없고 새 노조 사람들만 있으니 잘 안 갔다. 정말 어려운 시기를 같이 보낸 이들까지 새 노조로 하나둘 넘어갈 때 가슴 속에서 불이 났다. 심리치유가 많이 도움이 됐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309일을 버틴 85호 크레인은 사라졌다. 차 지회장은 “김 지도위원이 내려온 후 회사에서 팔아버렸다. 새로 사려면 120억원인데 5억원에 팔았다고 하더라.” “김 지도위원이 내려온 것 말고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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