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애국’을 말하다

“난 촛불좀비였다” 현장스케치

2013.02.01 16:43 입력 2013.02.07 19:32 수정

“‘역적패당 김정은’님 오셨나요? ‘태극기 휘날리며’님은요?”

지난달 19일 서울 종로3가 인근의 한 세미나실에서 청소년 인터넷 커뮤니티 ‘대한청소년나라사랑연합(대청연)’의 오프라인 출범식이 열렸다. 인터넷에서 ‘종북척결’, ‘자유한국’ 등의 이름으로 활동하던 10대들이 오전 11시30분이 되자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대부분은 남자 중고등학생이었지만 한복 차림에 비비크림을 바른 여고생, 밤톨머리의 열세살 초등생 등도 있었다. 몇몇은 안양·남양주 등 인근 경기 지역에서 왔다. 부산에서 KTX(편도 요금 5만3000원)를 타고 온 회원들도 있었다. 부산에서 온 한 회원은 “엄마에게 카페 활동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서를 쓰고 왔다고 전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대한청소년나라사랑연합’ 오프라인 출범식 모습.

인터넷 커뮤니티 ‘대한청소년나라사랑연합’ 오프라인 출범식 모습.

대청연은 ‘청소년들이 실질적으로 사이버상에서 애국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커뮤니티 카페이다. 대청연 회원들은 해외 누리꾼들이 제작한 유튜브 ‘혐한’ 동영상 차단 요청, 공휴일 태극기 게양 운동, 독도 알리기 운동 등을 벌여왔다. 카페 내에는 친북 성향의 글을 국정원에 신고하는 게시판도 마련돼 있다. 회원들은 ‘종북 세력’에 대한 비판 글을 올리는 등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의견도 주고 받는다.

“모 단체에선 하지 않는 행사지만 우리는 합니다”

정오가 되자 한복 차림의 사회자 ‘코리아 홀릭’(18·여)이 연단에 올라섰다. “카페 회원 1253명 중 19명 참석했습니다” 개회사를 겸한 총원보고에 “1.2%네”, “젠장”이라며 실소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오프라인 모임이 성사됐다는 것 자체에 대한 안도감도 흘렀다. 사회자는 “모임이 어렵게 성사됐다.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30명 이상 나오면 한복입고 오겠다는 공약을 했었다”고 전했다.

행사는 국민의례부터 명예회장 축사, 선언문 낭독, 주요활동 보고 등 여느 성인단체 못지 않은 식순으로 진행됐다. 사회자는 국민의례에 앞서 “모 단체에선 하지 않는 행사지만 우리는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취재진에게 “평소 아버지로부터 통합진보당, 민주통합당의 문제를 많이 들었다”고 귀띔했다.

명예회장 ‘유비현덕’(18)의 발언이 이어졌다. 그는 “친애하는 애국동지 여러분, 그리고 외빈 여러분(외빈은 기자 2명이었다), 바쁘신 와중에도 귀한 발걸음 해주시어 자리를 빛내주시니 감사합니다”라며 축사를 시작했다. 그는 “우리 모임은 나라사랑 정신을 바탕으로 다양한 애국활동을 해왔다”며 “이제 오프라인으로 발족해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회장 ‘뫼비우스’는 무게 있는 주제로 발언을 시작했다. “현재 동북아 3국간의 외교 문제가 심각합니다. 미국과의 관계, 그리고 제일 중요한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 발언 도중 음향사고가 났다. 갑자기 노트북에서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음악이 흘러나왔다. 연설은 중단되고 장내엔 웃음이 터졌다. 회장은 약 2분 간 사태를 수습한 뒤 상기된 얼굴로 카페의 역사를 소개하며 발언을 이어갔다.

“우리 대청연 카페는 지난해 초 전 매니저 ‘유비현덕’이 대외교류부장 ‘비스마르크’의 쇄신안을 바탕으로 조직개편을 단행, 네이버 군사·안보 분야 카페 톱5위에 랭크되는 등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오프라인 확장 여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진 상황에서 유비현덕님이 학업 문제로 매니저직에서 사임, 위기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방학을 맞아 돌아온 유비현덕을 중심으로 회원들이 힘을 합쳐 오늘 첫 오프라인 모임이 성사됐습니다.”

회장은 대청연이 대한민국 대표 애국청소년단체로 거듭나는데 함께 해 달라며 축사를 마쳤다. 회원들의 선서가 이어졌다.

“하나.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단체로서 헌법의 가치를 훼손하고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해하려는 세력에 대항한다. 하나. 우리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왜곡하거나 이를 부정하는 세력에 대해 대응하는데 앞장선다. 하나. 우리는 앞으로의 모든 활동에 있어 특정 정파에 붙지 않고 나라사랑을 위한 행동만을 할 것을 명심한다.”

변성기 목소리의 외침이 장내에 울려퍼졌다.

“내가 선동당했다는 사실에 보수로 가게 됐죠”…“한국은 너무 정이 없어요”

쉬는 시간을 이용해 회원들을 만났다. 명예회장 ‘유비현덕’은 이날 ‘절대시계’로 불리는 국정원의 신고 포상용 시계를 차고 왔다. 아이들이 웅성거리며 몰려들자, 그는 “국정원에 ‘획기적 아이디어’를 제공해서 받은 것”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획기적 아이디어’의 내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닉네임 ‘유비현덕’이 차고 온 ‘절대시계’. 국정원은 친북 성향의 글을 신고한 네티즌들에게 이 시계를 선물한다. | 박용하 기자

닉네임 ‘유비현덕’이 차고 온 ‘절대시계’. 국정원은 친북 성향의 글을 신고한 네티즌들에게 이 시계를 선물한다. | 박용하 기자

유비현덕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구축하게 된 계기로 “선동되고 세뇌당했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가지면서 보수로 간 것”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교조 선생님을 만나 촛불집회에 참석할 뻔 했죠. 소위 ‘촛불좀비’였어요. 하지만 다른 매체들을 통해 광우병은 공기·물을 통해 전파되지 않는다는 등 진실을 알게 되니 소위 좌파에 대해 극도의 반감이 들었어요. 또 천안함·연평도 사건 당시 국내 종북세력들이 북한을 추종하고 나서니 화가 치밀었죠. 그래서 더 반감을 갖고 반북·반공투사가 됐어요.”

또다른 참가자 ‘재밌는 사회’(19) 역시 자신의 정치성향은 ‘북한과 관련해서는 극우’라고 소개했다.

“교회에서 존경했던 장로님이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한국전쟁 당시 남로당원들이 처들어와 동생들 보는 앞에서 부모님 목을 베었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때부터 종북세력이 너무 싫었어요. ‘5·18’도 솔직히 폭동이라 생각해요. 일베(일간베스트)에서 봤는데, 사망자들 시체를 부검해보니 70%가 오발사고로 죽은 것이라고 하더라구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팩트 같아요”

몇몇은 뜻이 맞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모임을 찾았다. 독특한 별명으로 주목을 받았던 ‘역적패당김정은’은 자신이 카페 활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애국심·단결력’과 더불어 ‘인맥’을 들었다. 그는 “요즘 우리나라에는 이웃 간에도 정이 너무 없어요. 외계인이 침공해야 정이 되살아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빗나가길 바라지만 현재 북한은 중국의 괴뢰정부가, 한국은 식민지가 될 지도 몰라 애국심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학교 친구들은 이런 데 관심이 없다. 얘기가 안 통한다”라고 말했다.

카페 활동 이유로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대답도 있었다. ‘코리아오브미라클’(17)은 “우리나라 역사가 기적 그 자체다. 민주화 정신과 새마을 정신으로 민주화와 산업화를 다 해낸 것은 자랑스러운 일 아니냐”고 말했다.

종북주의·국정원 댓글 논란…“어린 시절 확실한 정치색은 반대해요”

휴식 이후 2부 행사가 이어졌다. 일부 회원들이 늦게 도착해 참가자는 24명으로 늘어났다. 본격적 2부 행사에 앞서 한 회원이 애니매이션 ‘두치와 뿌꾸’ 음악에 맞춘 율동을 해 웃음을 자아냈다. 2부는 향후 계획과 관련한 질의응답과 토론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강의실 대여료 및 식사비용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카페 운영진들은 “항상 연락처를 바꿔 연락하는 ‘익명의 독지가’가 기부했다”고 답했다. 독지가로부터 최초 연락 받은 유비현덕은 “기부 및 비용 사용내역은 카페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기부자의 정체는 자세히는 모르지만 정부 관계자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몇몇 진보 매체들은 우리더러 ‘새누리당 돈 받은 알바’라 비판한다. 비열하다”고 불편한 심정을 내비쳤다.

오후 2시. 공식 행사를 마치고 식사시간이 이어졌다. 식당에서도 회원들은 토론에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재밌는사회’가 “민주통합당은 극좌”라 말하자, ‘에르윈요하네스롬멜’은 “민주당은 진보가 아닌 중간인데, 보수가 많아 좌파로 보이는 것”이라 반박했다. ‘코리아오브미라클’은 “종북주의자는 없다고 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탱크밀덕’은 “지하당이 무슨 영향이 있는가”라며 “종북주의자가 실제 있어도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페 회원 중에는 다소 ‘진보적’ 성향이라 밝힌 학생들도 있었다. 한 회원은 “다른 카페는 성향이 다르면 회원을 자르는데 우린 그렇지 않아요. 5·18 가지고도 정치적 성향이 다른 회원끼리 자유롭게 토론하죠”라고 말했다. 또다른 회원은 “대청연은 중립”이라며 “전라도 비방 인터넷 카페(대긍모) 등과 같은 극우카페로부터 공격받기도 해요”라고 전했다.

카페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논쟁도 있었다. 한 회원은 “나는 카페가 보수적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운영진은 중립을 추구해요.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죠”이라고 말했다. 다른 회원은 “결국 싸우게 돼 있어 중립은 힘들 것”이라며 “최근에 카페에서 박정희 친일문제로 논쟁이 있었는데 과격발언을 해 잘린 회원들이 있었어요. 그 사람들은 10대도 아니고, 카페를 특정 성향으로 몰아가려한 이들 같아요”라고 귀띰했다.

어린 시절의 정치적 편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반응이 뜨거웠다. “초등학생들은 선생님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 할머니가 보수였다. 그 때문에 나도 이렇게 됐는데 벗어나기 힘들다”란 대답이 돌아왔다. “어린시절 확실한 정치색은 반대해요. 100이면 100 모두 극단으로 치달을 겁니다” 한 회원은 덧붙였다.

식사는 오후 4시쯤 마쳤다. 공식적인 행사는 끝났으나 다수의 회원들은 인근 카페로 이동해 ‘국정원 직원 댓글’, ‘대한민국의 휴민트(인적 정보망) 붕괴’ 등에 대해 토론을 이어갔다. 날이 어두워지도록 이들의 토론은 끝나지 않았다.

오프라인 조직화를 선언한 대청연 회원들이 카페의 향후 활동과 관련 토론을 벌이고 있다.

오프라인 조직화를 선언한 대청연 회원들이 카페의 향후 활동과 관련 토론을 벌이고 있다.

10대들의 애국주의,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날 ‘대청연’ 모임에서 만난 청소년들은 천안함 침몰·연평도 포격 사건이 애국심에 눈뜨게 된 계기였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해외 누리꾼들의 혐한 게시물에 대응하고, 북한 추종 인터넷 게시물을 찾아 국정원에 신고한다. 행사 내내 대형 태극기 화면을 띄워놓고, 사회자는 한복을 입고 올 정도로 국가상징물과 전통에 대한 애착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10대들의 애국열기’를 어떻게 바라볼까.

정치학 박사인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애국과 안보도 중요한 정치의 주제”라며 “우리는 국가라는 체제 속에서 안전을 보장받고 살고 있는 만큼,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이 주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문제는 애국 자체가 아니라, 나와 국가를 동일시하면서 국가의 범주를 끝없이 과거로 확장하고, 이 모든 과거를 미화하려고 하는 것”이라면서 “‘건국의 아버지’라는 이유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미화하는 작업 등을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는 현재 한국 젊은층들의 대외 인식이 1930년대 일본 젊은층의 인식과 ‘유사점’은 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1920년대 말 정당정치에 대한 환멸과 더불어 장개석이 등장하면서 중국이 부상하자 이에 대한 과장된 위기의식이 태동하는 상황에서, ‘애국’을 선동하는 청년 장교들이 나타나면서 군국주의가 형성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젊은층의 감수성이 정치적 운동으로 확장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박 교수는 “애국주의적 열기가 실제 정치로 연결되려면 쿠데타가 발생하거나 외부 소요가 일어나야 한다. 현재 한국에서 이런 움직임이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이 같은 분위기를 이용하려는 매력적인 정치지도자가 나타나느냐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동일 정치성향을 지닌 청소년들이 단순히 인터넷에서 활동을 한다고 언론 등에서 극우, 파시즘 등을 거론하며 침소봉대 하는 대신 실제적 영향력과 내용을 두고 관찰해야 한다고 밝혔다. 신 교수는 “정보화와 뉴미디어화에 따라 청소년들의 ‘정치적 사회화’(political socialization)가 앞당겨지고, 동일 세대 간 광폭의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극좌와 극우를 모두 포함해 극단주의를 정의하는 핵심 요소는 헌법적 기본권과 민주적 원리, 정치적 다원주의를 긍정하느냐에 있다”고 말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들의 성향을 10대 전체의 성향으로 확대해석해 ‘새로운 세대론’이 나오는 것을 경계했다. 전 교수는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트라우마가 이들 또래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처럼 보여도 주로 남자 청소년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쳤다”며 “‘연평도세대론’ 등 쉽게 ‘세대’란 용어를 쓰면 핵심을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 [10대, ‘애국’을 말하다] 종북·국보법을 논하는 그들…전문가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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