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년 사회학자 윤여일 특별기고

물어야겠다

2015.04.13 21:49 입력 2015.04.13 21:51 수정
윤여일 | 해방촌주민·사회학자

물어야겠다. 유가족이 세월호를 인양하라고 절규하며 삭발했다. 1년 전 4월16일, 그리고 한 주, 또 한 달을 떠올린다. 그리고 묻는다. 대체 그 후 어떤 하루하루가 쌓여 지금 상황에 이른 것일까. 통곡이 고립당해 절규로 독해지는 동안 대체 유가족은 무얼 잘못했고, 유가족의 어떤 요구가 정당치 않았던 것일까.

[세월호 1년 사회학자 윤여일 특별기고]물어야겠다

“대한민국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한동안 그 말을 숱하게 접했다. 대통령도 아나운서도 그렇게 말했다. 대체 무엇이 달라졌는가. 달라지고 있는가. 세월호 참사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놓은 듯했다. 구조과정에서 철저히 무능했던 공권력, 이해관계로 얽히고설킨 관료집단,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보수언론, 노동 비정규직화와 위험사회의 일상화, 승자독식과 각자도생의 사회논리, 공공성을 저버린 국가. 그런데 이것들이 다 튀어나오는 동안 무엇을 붙잡았던가.

세월호에서 있었던 일만이 아니라 세월호 사고로부터 파생된 일, 드러난 일을 가리켜 세월호 사태라고 한다면 세월호 사태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매듭짓지 못한 채 1주기가 다가왔다.

1주기 이후는 어떤 시간대일 것인가. 지금 이대로라면 세월호 사태가 현안에서 지워지는 국면이 될 것이다. 정부가 1주기에 어떤 이벤트를 벌인 뒤 세월호 사태를 덮어두려 할지는 예상할 수 있는 바다. 결국 앞으로의 1년은 “이 사태도 결국 그리되더라”로 기우는 시간일 것인가. 판도라의 상자에는 희망이 남겨졌다지만, 이대로라면 세월호 사태는 거대한 체념만을 남길지 모른다. 그건 정말이지 재앙적이다. 이 사회에서는 대체 얼마나 많은 희생이 생기고 희생을 감수해야 진상에 다가설 수 있단 말인가.

“우리 모두의 비극이다.” 우리는 수차례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이 정부 측의 알리바이로 쓰이고 버려지는 동안 우리는 무얼 했던가. 그 많은 다짐과 각서는 어디로 갔는가. 시간이 지나자 세월호 피로감이 운운되며 “우리 모두의 비극이다”라는 말을 지워갔다. 대체 무엇을 했기에 피로한 것일까. 그리고 이 반복은 무엇인가.

달아오른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피해자와 당사자는 고립되고 괜한 소란을 피우는 사회 분란세력으로 매도당한다. 배제의 원리에 기반을 두는 통치를 대중이 승인한다. 그사이 모든 문제는 경제값으로 환원되고, 여론은 돈 문제에 따라 움직인다. 싸움을 그만둘 수 없는 자들은 권력만이 아니라 여론을 버겁게 상대해야 한다. 이번만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싸우려는 자들과 함께 묻는다. 길어지는 싸움을 어떻게 치러야 하는가. 진상을 밝히려면 무얼 해야 하는가. 특별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도록 어떻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가. 세월호 문제만이 아니라 세월호를 둘러싼 문제, 세월호를 통해 드러난 문제로 사회적 인식이 심화되어 세월호 사태가 이 사회 모순의 집약으로 자리매김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 저 대중감각과 어떻게 맞서야 하는가. 이를 위해 자기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지난 1년을 겪으며 내게는 분명해진 것이 있다. 한 사회의 진보 정도는 사회의 발전과정에서 생겨나는 사회적 타살을 최소화하는지로, 한 사회의 성숙 정도는 사회적 희생이 발생할 경우 그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고 희생의 하중을 사회 구성원에게 세분해 이식하는지로 측정할 수 있다. 지난 1년 동안 얻은 쓰라린 교훈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1년은 이 방향에서 저 물음들을 구체화하고 답을 찾아가는 시간으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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