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②건물주의 물주가 되다]자영업자에 빨대 꽂은 건물주…알바생 등골까지 빨아들여

2016.01.31 22:36 입력 2016.02.02 18:56 수정

조물주 위에 건물주

임대료 상승 부추기는 ‘빨대들’

직장인들의 ‘노후 진로 선호도’ 조사에서 1위(23.1%)에 오른 직종, 언젠가부터 초·중·고교생이 적어낸 장래희망, 노동 없이 이익(임대료)만 가져간다고 해서 ‘현대판 지주’라고도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조물주 위의 건물주’라 일컫는 임대업자다. 국세청에 등록된 상업용 부동산(상가·빌딩) 임대사업자 수는 2014년 기준 134만456명, 이들이 신고한 상가 임대소득은 56조2383억원이다.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은 “상가 임대사업자들이 국세청에 소득액수를 정확히 제출하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받은 임대료는 더 많을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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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지주’가 있다면 ‘현대판 소작농’도 있다. 특히 소자본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청년들은 가장 위태로운 처지에 있다. 자신의 아이디어로 수익을 창출해도 ‘부르는 게 값’인 임대료로 토해내야만 한다. 그리고 건물주(임대업자)는 영세 자영업자들이나 고용된 청년들의 끊임없는 노동으로 만들어진 임대료를 ‘투자 수익’이라는 명목으로 빨아들인다.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청년 창업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중소기업청 통계를 보면 지난해 30대 미만 청년이 등록한 신설법인은 4986개였다. 2014년보다 28.3%나 급증해 전 연령대 중 가장 증가율이 높았다. 대부분 5000만원 이하 소자본 창업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석민씨(34·가명)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지난해 5월 서울 강서구에서 친구와 함께 33㎡(10평) 남짓한 카페를 차렸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 임대료 123만원을 냈다. 아직까지 김씨가 가져가는 한 달 순이익은 임대료에도 못 미치는 100만원 내외다.

6개월 정도 길게 다닌 시장조사는 말 그대로 ‘임대료 쇼크’를 생생하게 체험한 시간이었다. 김씨는 “임대료를 33㎡(10평)에 400만~500만원 부르기 일쑤고, 대로변 사거리는 3000만원도 넘더라”며 “새로 지은 건물을 처음 임대시장에 내놓으면서 ‘바닥권리금’으로 3000만원을 요구하는 건물주도 만났다”고 전했다. 그는 “신축 건물은 권리금이 없는 줄 알았다. 그렇게 받아내는 바닥권리금도 결국 임대업자 몫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며 “정부에서 청년들에게 창업하라고 말만 하지 말고, 처음부터 얼마나 숨이 막히고 무력감에 빠지는지 들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꼭 창업을 하지 않더라도 상가 임대료는 청년들의 노동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임대료는 장사가 안되더라도 내야 하는 자영업자의 고정비용이다. 고정비용이 상승할 때 자영업자가 곧잘 손대는 항목이 ‘인건비’다. 알바 노동자 상당수가 20대인 점을 감안하면, 높은 임대료는 자영업자와 함께 청년 알바 노동자의 삶도 짓누르는 셈이다.

박슬기씨(23·가명)는 17세 때부터 경기도에 있는 집에서 독립해 서울 연신내·연남동 근처에서 살았다. 음악을 하기 위해서였다. 알바와 공연을 해서 월세를 냈다. 박씨는 “스무 살 때 홍대 근처에서 바텐더로 일하며 최저임금보다 많이 받았지만, 다른 지역 바텐더보다는 시간당 1000원 정도 덜 받았다”면서 “당시 바 임대료가 엄청 비싸서 그만큼 ‘내 임금도 줄어드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알바해서 돈 벌면 월세 내는 게 우선이었다”며 “통장에 돈 몇 푼 들어왔는데 월세로 50만원씩 나가버려 잔액이 바닥을 보이면 너무 슬펐다”고 말했다.

이우진씨(30)는 임대료 때문에 무급 노동에 나선 경우다. 이씨 부모는 서울 성북구에서 프랜차이즈 편의점을 했다. 33㎡(10평) 남짓한 공간의 임대료는 부가가치세를 포함해 월 165만원. 인적이 드문 이면도로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싼 임대료였다. 부모는 임대료와 프랜차이즈 가맹비 부담을 이기지 못해 4명이던 알바 노동자를 창업 1년 만에 2명으로 줄였다. 그 빈자리는 이씨 형제가 무급으로 메웠다. 그럼에도 이씨 부모는 수익이 나지 않아 계약이 만료된 뒤 바로 편의점을 접었다.

■임대료 상승 부추기는 층층구조

사람이 몰리는 곳에 상권이 형성되면 임대료는 자연스레 올라간다. 이태원·홍대 등 서울의 주요 상권은 5년 전보다 업종별로 35~70% 임대료가 뛰었다.

급격하게 임대료가 오르는 데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건물·상가·주택 임대업자 말고도 ‘빨대’가 많다는 것이다. 서울 강북지역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유연우씨(47·가명)는 “일부 중개사는 건물주에게 전화해서 앞집이 임대료 올리는데 사장님도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다”며 “건물주를 부추기는 중개사들도 임대료 상승의 한 축”이라고 말했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임대료 정보를 더 빨리 알려주고, 더 높은 임대료를 받아주는 공인중개사를 선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공인중개사도 거래가 자주 이뤄지면 손에 쥐는 수수료가 늘어나게 된다.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도 임대료 상승을 이끈다. 서울 강북지역에서 편의점을 운영했던 김범석씨(58·가명)는 임대료로 월 170만원을 냈다. 그의 편의점은 3층짜리 신축 건물 1층에 자리 잡았다. 김씨는 “편의점을 하려고 알아봤을 때 이미 본사와 건물 주인이 월 임대료 170만원에 계약을 마쳐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갔다”면서 “사람도 별로 다니지 않는 곳이라 주변 건물 임대료는 대부분 80만원대였다”고 말했다.

중개업자들은 건물주의 ‘버티기’도 임대료가 올라가는 요인으로 꼽는다. 서울 신림동 대로변의 한 상가 건물 1층 매장은 1년째 비어 있다. 주변 자영업자들은 “임대료만 월 400만원”이라고 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높게 책정한 뒤 공실로 두더라도 세입자를 기다린다. 중간에 건물을 팔더라도 임대료가 건물가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임대료 내리면 청년소득 오를까

올해 초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흥미로운 논쟁이 일었다. 임대료 상승에 제한을 두면, 최저임금이 오르지 않겠느냐는 게시물이 올라온 것이다. 청년 시민단체와 자영업자 이익단체는 가능성을 주목했지만, 실현될지에 대해선 유보적 입장을 내놓았다. 정준영 청년유니온 사무국장은 “임대료 부담이 줄어든다고 자영업을 하는 분들이 자율적으로 임금을 올려줄 것인지 증명할 순 없다”며 “다만 임대료 부담이 줄어들면 임금이 오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임대료가 지나치게 높은 지금보다는 최저임금 인상을 받아들이기 수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임대료 감소가 큰 폭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달았다. 연합회 정효진 과장은 “자영업자에게 가장 부담되는 게 임대료다. 아무래도 임대료 부담이 크게 줄면 사람을 더 쓰고, 가게 주인은 보다 편하게 일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은 “임대료가 적정 수준으로 떨어져도 자영업자가 다 가져갈 수 있다”면서도 보다 낙관적이었다. 그는 “돈은 늘어났을 때 한쪽으로만 쏠리지 않는다. 강제할 수 없지만, 일정 부분은 임금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했다.

실제 서울 강서지역에서 프랜차이즈 피자점을 운영하는 성백준씨(37·가명)는 지난해 8월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 민족’이 수수료 폐지를 결정한 뒤 알바생 4명의 시간당 임금을 500원 올려 7000원씩 줬다. 성씨는 “내가 특별히 착한 사람이어서 선의를 베푼 것은 아니고, 단지 늘어난 이익분을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 나눈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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